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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관 주저앉힌 박지원의 '힘'

아들 결혼식 청첩장까지 구해 인사청문회 준비... 이명박 독주에 '일격'

등록|2009.07.15 13:02 수정|2009.07.15 14:32

▲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13일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동료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14일 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전격 사퇴함으로써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천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얼굴도 모르는 검찰총장을 발탁한 것은 내가 처음"이라고 만족해 했다지만, 결국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청와대의 '작품'으로 발탁된 천 후보자가 임명장도 받지 못하고 낙마하게 된 데는 민주당 법사위원들의 파상 공세 효과가 컸다. 그 중에서도 박지원 의원의 힘은 단연 빛났다.

위장전입-아들 호화결혼-동반 골프여행... 박 의원이 직접 찾아내

지난 13일 인사청문회에서 박 의원은 시종일관 천 후보자를 빠져나갈 수 없는 코너로 몰아갔다. 정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한 박 의원의 날카로운 추궁에 천 후보자는 결국 위장전입 사실을 시인했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의 도움으로 서민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던 시도도 물거품이 됐다.

천 후보자는 자신의 아들 결혼식을 '조그만 교외'에서 치렀다고 말했다가, "6성급 W호텔이 조그만 교외냐"는 박 의원의 지적으로 또 한 차례 망신을 당했다.

박 의원이 밝혀낸 '15억5000만원 채권자' 박경재씨와 '밀착 관계'는 천 후보자를 떨어뜨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박 의원은 2004년, 2008년 두 차례 천성관-박경재 부부가 일본으로 동반 골프여행을 갔다는 사실을 처음 폭로했다. 또 천 후보자 부인이 해외여행 때마다 고급 명품을 사들이는 등 호화 생활을 했다는 사실도 박 의원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민주당은 이런 박 의원의 '활약'에 힘입어 발탁 인사를 자랑하던 청와대와 이 대통령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었다.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빛난 박 의원의 힘은 '정확한 정보'에서 나왔다. 알려지다시피 법무부와 검찰은 여야 의원이 요구한 85건의 자료 중 단 2건만 제출하는 등 사실상 인사청문회 무력화를 시도했다. 박 의원의 정보가 없었다면, 자칫 인사청문회는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정보력의 출처는 베일에 싸여 있다. 박 의원실 보좌관조차 천 후보자 부부의 골프여행과 명품 쇼핑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 모를 정도다.

'마당발'로 알려진 박 의원은 대체로 모든 정보를 각계에 퍼져 있는 지인들로부터 얻는다고 한다. 개인 모임에 나갈 때는 수행비서나 운전기사도 미리 장소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잠행하기로 유명하다. 인사청문회 같은 중요 사안이 있을 경우, 직접 발로 뛰어 자료를 찾아낸다.

천 후보자 사퇴 안했다면? '과거 교통사고 처리 의혹'도 준비

▲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1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 박지원 민주당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 남소연


천 후보자의 골프여행을 폭로한 일이 대표적이다.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12일 일요일 밤, 박 의원은 청문회를 준비하는 보좌관들 앞에 불쑥 나타나 자료를 하나 툭 던졌다고 한다. 그 속에는 천 후보자의 출입국 기록 등이 담겨 있었다.

박 의원 보좌관들은 밤새 자료를 분석해 인사청문회를 준비했다. 인사청문회 당일 천 후보자가 거짓말을 하게 된 '박경재 부부와 동반 골프여행' 폭로는 이렇게 나왔다.

천 후보자 아들의 호화 결혼식도 사실상 박 의원이 스스로 만든 작품이다.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던 보좌진이 "지난 5월 천 후보자 아들이 결혼식을 올렸다"는 단순한 보고를 올리자, 박 의원은 "언제, 어디서 결혼식을 했고, 누가 참석했는지 다 알아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결국 보좌관들은 천 후보자 아들 결혼식 청첩장까지 구해와야 했다. '조그만 교외 결혼식'이 사실은 연예인, 유명인사들이나 애용하는 'W호텔 결혼식'이었다는 사실도 이렇게 밝혀졌다.

만약 천 후보자가 사퇴하지 않았다면, 박 의원은 더 많은 추가 사실을 폭로했을지도 모른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박 의원측은 천 후보자의 지난 85년 교통사고 전력까지 검토해 자료를 준비했다고 한다.

박 의원 주변에서는 이런 정보력이 '성실함'에서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박 의원은 언제 어디서나 '김대중 평화센터' 로고가 박힌 조그만 수첩을 들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의원총회나 회의 때 발언을 하러 나서는 박 의원의 손에는 항상 이 수첩이 들려 있다.

이 수첩 속에는 박 의원이 갖고 있는 정보와 일정, 메모, 단상 등이 깨알같은 글씨로 촘촘히 박혀 있다. 틈날 때마다 메모를 잊지 않는 박 의원의 이 '수첩' 속에서 천 후보자를 낙마 시킨 정보가 흘러나왔다.

'장내투쟁' 희망 본 민주당... 등원 투쟁 탄력 받을 듯

이번 인사청문회로 박 의원은 '청문회 스타 의원' 반열에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인사청문회를 지켜 본 수많은 네티즌들이 박 의원의 홈페이지를 찾아 격려의 글을 남기고 있다.

민주당도 적지 않은 이익을 얻었다. 박 의원의 '선전'으로 민주당의 등원론은 더 탄력을 받게 됐다. 지난달 26일 6월 임시국회가 열린 뒤에도 장외투쟁에 집중하던 민주당은 지난 12일 전격 등원을 결정했다. 하지만 당내 강경파들은 지도부의 등원 결정에 반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준 박 의원의 활약은 '등원론'에 큰 힘을 실어줬다. 장내에서도 효과적인 투쟁이 가능하다는 적절한 사례를 보여준 셈이다.

정세균 대표도 15일 의원총회에서 "천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이끌어낸 민주당 법사위 위원들에게 국민 여러분께서 큰 박수를 보내시는 것 같다"면서 "소수지만 정말 잘 해줬다는 평가를 받아서 민주당의 신뢰를 쌓는 데 크게 기여하신 법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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