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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법부, 아프리카 르완다와 고대의 재판에서 한 수 배워야 한다

한자로 보는 세계(8)

등록|2009.07.16 11:41 수정|2009.07.22 16:49

▲ [그림1] 아프리카 르완다의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재판, "내 아들은 돌아오지 않지만 참회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한겨레> 2007.09.18) ⓒ 새사연



흔히 속설로 法(법 법)을 물(氵)이 흐르는(去)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法(법)이라 하는 데 이는 본래 法자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다. 法의 본디 자는 灋으로 해태라고 하는 동물 廌(치)이 원래 들어가 있다. 중국 후한 때 王充(왕충)이 쓴 <論衡(논형)>에 "개호라는 짐승이 있는데 이 짐승은 뿔이 하나밖에 없으며 죄를 지은 사람을 찾아내는 신통한 재주가 있다. … 죄가 있는 사람이면 뿔로 받고 죄가 없는 사람이면 받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 한나라 때 楊孚(양부)가 지은 <異物志(이물지)>에 보면 "동북 지방의 거친 곳에 사는 짐승을 해치라고 한다. 뿔이 하나에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옳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고, 사람이 논란을 벌이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물어 뜯는다"고 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獬廌(해치)는 불의를 물리치고 정의를 지키는 신성한 동물이다. 그래서 과거 조선의 사법기관인 사헌부 관리들은 해태로 장식된 모자나 옷을 입었으며 지금도 검찰청 앞에 해태상이 있다.

고대의 재판은 사람이 재판을 하지 않고 신의 대리인인 神獸 해태를 통해 이뤄지는 神判(신판)이었다. 미신적인 요소가 있지만 사람의 사사로운 이익이 개입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 [그림2] 法(법) 去(거) 却(각) 獄(옥) 善(선) 詳(상) 慶(경) 獄(옥) 讐(수)의 옛 자형 ⓒ 새사연




灋(법)은 氵+廌+去로 구성되어 있다. 원고와 피고가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고 축문 그릇 앞에서 서약하고 각각 산양 비슷한 해치를 바치고 재판을 진행한다. 바르지 못한 사람(大)을 해치가 받아서 물에 빠뜨리고 그 사람의 축문 그릇도 뚜껑을 떼버리고 강물에 던진다. 이것이 法자의 기원이다.

신판의 형식으로는 엽기적인 것들도 있는데 몇 가지 소개하겠다. 불에 달군 쇠를 쥐게 하여 데이면 유죄 그렇지 않으면 무죄, 체중이 변하는 지의 여부로 판단하는 저울 신판, 독극물에 대한 반응을 살피는 독물 신판, 끓고 있는 기름이나 독사가 들어있는 그릇에 손을 담그게 하는 신판 등이 있었다(시라카와 시즈카의 <한자의 세계> 참고). 중세 마녀 재판에서는 강물에 빠트려 가라 앉으면 유죄, 떠오르면 무죄로 판결하는 방법도 있었다.

去(갈 거)는 재판에 진 사람과 그가 서약한 그릇을 강물로 빠뜨린다(보내다)는 의미였다. 去來(거래)

却(물리칠 각)은 卩(절)이 꿇어앉은 사람의 형상인 데 재판에 진 사람을 물리친다는 의미이다. 却下(각하)

脚(다리 각)은 却에 肉(月)을 더하여 꿇어앉은 사람의 다리를 강조한 자이다. 馬脚(마각)

재판에 임하여 서로 양을 바치고 언쟁하는 모습의 자는 譱(선)인 데 언쟁에서 이긴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 자가 善(착할 선)의 본디 자이다. 善行(선행)

詳(자세할 상)은 양을 바치고 재판에 임하여 자기의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詳細(상세)

慶(경사 경)은 재판에 이긴 사람의 해치의 가슴에 심장 모양의 문신을 해서 축하해준다는 뜻이다. 慶祝(경축)

개를 바치고 재판을 행한 경우도 있는 모양인데 이 때는 譱(선)과 달리 재판에 진 사람의 상황을 표현한다. 양쪽에 개를 바치고 다툰 자는 獄(감옥 옥)이다. 投獄(투옥)

새를 바치고 한 경우가 있는 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있다면 讐(원수 수)이다. 재판의 양 당사자 관계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는 새(隹)와 관련하여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怨讐(원수)

그림1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인종 청소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와 그 아들을 죽인 가해자가 재판을 하는 모습이다. 전통 방식의 마을 재판을 통하여 가해자는 당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참회하는 가해자를 용서한다. 검사와 변호사도 없다. 재판은 처벌과 보상이 목적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가 목적이다. 문명 국가의 재판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다.
고대의 신판에서 해치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의의 편에 서서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하는 신의 대리자였다. 이견이 있겠지만 여기에는 사사로운 이익이나 감정이 들어설 틈이 없다.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검찰, '광우병'을 방송한 PD를 기소하는 검찰, 삼성 앞에서 무력한 법원, 다른 판사의 재판에 참여하는 대법관, 검찰총장이 아니라 감옥에 가야 할 검찰총장 후보 등등 – 우리나라 법의 현주소다. 정의를 기반으로 용서와 화해가 넘치는 한국의 법률 문화를 고대한다. 저 아프리카 르완다의 전통적인 재판 방식과 고대의 신판에서 한 수 배웠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김점식 기자는 새사연 운영위원이자, 현재 白川(시라카와) 한자교육원 대표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자 해석은 일본의 독보적 한자학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문자학에 의지한 바 큽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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