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호의 '국세청호'가 넘어야 할 3가지 파도
정치적 독립성 확보가 개혁의 성패... '빅3 인사'가 첫 가늠자
▲ 백용호 국세청장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세청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16일 백용호의 '국세청호'가 닻을 올렸다.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있었던 부동산 투기와 탈세 등에 대한 각종 논란과 야당의 반대에도 백용호 청장이 결국 국세청의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이날 아침 서울 종로구 국세청 본청 강당에 모인 국세청 주요간부들의 표정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앞으로 닥쳐올 국세청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와 혁신의 회오리가 어디로, 어떻게 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세청의 지휘봉을 잡은 백용호식 개혁은 어떻게 진행될까. 과연 성공할까.
폭풍 속 전야... 대대적 인적 쇄신 눈앞
우선, 전임 국세청장 3명의 잇단 불명예 퇴진으로 추락한 국세청의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 국세청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개혁은 이미 이명박 대통령이 백 청장을 내정했을 때부터 예상됐던 부분이다. 백 청장도 이날 취임식에서 직원들에게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마라"고 특별히 당부하기도 했다.
이 같은 변화의 첫 단추는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조직 혁신이다. 특히 국세청 고위간부를 중심으로 한 인사 태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인사의 방향은 최대한 조직의 안정에 염두를 두면서도 도덕성과 청렴성, 전문성을 갖춘 능력도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백 청장은 "인사는 오직 성과와 능력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며 "학연·지연·줄대기·인사청탁 등이 더이상 국세청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세청 안팎에선 백 청장의 인적 쇄신을 가늠할 수 있는 인사로 '빅3 인사'를 주목하고 있다. 국세청장을 제외한 '국세청 빅3'는 국세청 차장을 비롯해 본청 조사국장, 서울지방국세청장을 말한다.
주목받는 '국세청 빅3 인사'... 이현동 현 서울청장 주목
현재 국세청 차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사람은 이현동 현 서울지방국세청장이다. 이 청장은 행시 24회로 경북 청도 출신이다. 작년 초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청와대에 파견되기도 했었다. 국세청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본청 조사국장과 서울청장 등 승진 코스를 밟았다. 국세청 내부 간부 가운데 현 정부의 경제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이른바 'TK(대구경북)' 출신인 이 청장이 백 청장과 함께 차장으로 승진할 경우 국세청 고위 간부진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예상된다.
행시 22회와 23회인 국세청 본청 간부들과 지방청장 등의 퇴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허병익 현 국세청차장(행시 22회)이 이미 사의를 표명했고, 허 차장과 행시 동기인 김창환 부산지방국세청장, 이승재 중부지방국세청장도 퇴진을 밝힌 상태다. 이밖에 광주와 대구지방청장, 국세공무원교육원장 등도 이미 명예퇴직했다.
행시 23회인 본청 국장은 채경수 조사국장을 비롯해 모두 4명. 이들 역시 어떤 식으로든 인사이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백 청장은 작년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2개월 만에 일부 임기가 보장된 계약직 간부를 제외한 국장들을 대거 교체했었다.
국세청의 한 간부는 "백 청장이 조만간 단행할 '빅3' 인사를 보면 향후 국세청 내부의 조직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만 명 넘는 방대한 조직 어떻게 장악할까... '작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 백용호 국세청장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세청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인적 쇄신과 함께 방대한 국세청의 조직을 혁신하는 것도 백 청장의 중요한 과제다.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2만 명이 넘는 방대한 국세청 조직을 어떻게 혁신하고 장악하느냐에 따라 향후 백용호식 국세청 개혁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일단 백 청장이 구상하는 국세청은 '작지만 효율적인 조직'이다. 그는 "세계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작고도 강한 조직'을 추구하고 있다"면서 "이런 흐름은 정부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작지만 효율적인 국세청'을 만들어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작고 효율적인 국세청'은 어찌 보면 금융을 전공하고 국세청 경험이 전무한 백 청장 입장에선 당연한 조직개편의 밑그림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조직 혁신이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조직개편과 인력 재배치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저항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백 청장은 이미 청와대 등에서 마련한 '국세행정선진화방안'을 토대로 근본적인 국세청 조직 개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방안에는 현행 본청-지방청-세무서(3단계)로 돼 있는 구조를 지방청을 폐지해 본청-세무서(2단계)로 축소하는 방안 등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방청 폐지 여부는 아직 최종 결론이 내려지지는 않았다.
또 국세청 내부에 별도의 국세행정위원회를 통해 국세행정 운용방향을 제시해 나가고, 세무조사 등에 대한 투명성과 공정성도 제도적으로 담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백 청장은 "국세청 내부에 국세행정위원회를 설치해 주요 세정운영에 대해 심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면서 "전반적인 국세행정 운영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확보 여부가 개혁의 성패
마지막으로 백용호식 국세청 개혁의 핵심으로, 정치권으로부터 국세청의 정치적 독립과 중립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다.
백 청장은 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이자 'MB 정부의 경제철학 전도사'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1년 2개월의 공정거래위원장 시절에도, 39회에 걸친 강연에서도 '감세와 규제완화, 친기업'으로 대표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적극 설명했었다.
특히 국세청은 현 정부 들어 참여정부와 직간접적인 기업에 대해 정치적 목적을 띤 세무조사를 벌여 정치적 중립성이 크게 훼손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백 청장은 지난 청문회 답변에서도 "대통령에게 세무조사를 별도로 보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대통령의 측근이기 때문에) 소신과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백 청장은 이날 취임식에서도 세무조사를 언급하면서 "세무조사는 어디까지나 법과 원칙에 따라 운영할 것"이라며 "세무조사에 따른 어떠한 오해도 불식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세청의 전직 고위인사는 "그동안 많은 청장이 개혁과 조직 혁신을 추진해왔으며, 실제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임청장이) 정치권으로부터 얼마나 국세청의 조직을 독립적으로 이끌어가느냐에 따라 개혁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할 경우, 자칫 백용호식 국세청 개혁은 현 정권의 국세청 조직 장악을 위한 도구로 변질될 가능성도 크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가능성이 현실이 될지, 아니면 백 청장의 말대로 '국민이 국세청을 신뢰할수 있는 진정한 개혁'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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