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바보가 되기로 결심했다
[서평] 김준기의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김준기 지음. 시그마북스 ⓒ 윤석관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 하나씩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현재의 나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어쩌면 미래에까지 영향이 미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완벽한 인간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는 강점은 그것이 그 사람의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를 항상 가슴에 숨기고 화장으로 감추며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서 '나는 아닐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이 세상을 하루하루 견뎌나가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하는 이 세상 또한 마음의 문을 닫고 갑옷을 입고 생활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질병인 성장의 늪에서 좀 더 빠르고 많은 양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을 '적자생존'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며 존경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던 황상이 그의 스승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자.
"선생님! 제가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꽉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만약 자기 앞에서 어떤 사람이 대뜸 위와 같은 말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솔직히 우리 사회에서 위와 같이 자신의 치부를 타인에게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람이 있을지 의심스럽지만 만약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하찮게 여기고 바보라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의 어리석은 성격을 자신의 이득에 맞게 교묘하게 이용할지도 모르겠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그 비웃음을 마주하기 싫고 남에게 이용당하기 싫어서, 몰라도 아는 척, 없어도 있는 척 하는데 너무 익숙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는 이런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말이 우리의 가면을 벗기기 어렵게 만들어주는 동인이 되어준다.
"가만히 있으면 이등이라도 하지…….쯧쯧쯧"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자. 이 말을 믿고 있는 사람은 이등이라도 하기 위해 그 순간의 부끄러움을 모면하기 위해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갈 것이다. 그렇게 이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서 어느 사회에서나 이인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등이 되었다고 치자.
이렇게 이등이 된 사람은 일등은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 그 상황에서 또 다시 이인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신을 치고 올라와도 그는 이인자에 만족할 것이며 이와 같은 과정은 그의 밑에 아무도 없게 될 때까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으면 이등을 하는 사람보다는 이의를 제기하고 모르는 것은 끝까지 질문하고 설사 그것이 틀리더라도 엉뚱한 대답을 하면서 꼴찌가 되고 싶다. 그래서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알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끝내는 일등이 못 되더라도 이 사람은 결코 꼴찌는 되지 않을 것이 아닌가?
인생을 많이 살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나는 항상 내가 가진 그 하찮은 지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남들에게 바보인 척 할 수 없었다. 아주 뛰어난 엘리트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학교 시절에는 반에서 항상 5등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고, 시에서는 알아준다는 비평준화 고교를 3년 동안 다니면서 나는 조금씩 이인자의 인생을 살아갔다.
모르는 것이 있어도 그것이 부끄러워서 질문을 하기가 두려웠고 창피했다.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 같은 그 분위기가 싫었다. 그리고 이러한 습관은 대학에 가서도 지속되었다. 남들보다 실력은 안 되면서 남들에게 약한 척하기 싫어 일부러 말끔하게 입고 돌아다니고, 몰라도 아는 척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내가 가지고 있던 근원적인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끄집어내기 위해 수도 없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리고 그것을 더욱 생생하게 그려내기 위해서 영화라는 시각적인 도구를 사용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영화들 중 내가 보았던 영화들을 타깃으로 삼아 기억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스크린 속에서 고통스러워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저자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도 영화 속 주인공들과 다를 바 없어 너도 분명히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어", "포레스트 검프의 포레스트처럼 너도 바보야", "그래도 걱정하지마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을 받아들여. 치료는 그것에서부터 시작이야!"라는 말을 귀에 다가 속삭였다. 그래서 나는 결국 저자의 끊임없는 공격 속에서 한 가지의 트라우마를 토해내고야 말았다.
새벽에 이 책을 읽으면서 어두컴컴한 조용한 방에서 하나씩 내가 잊고 있던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들을 끄집어 낼 때마다 답답해지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지금 현재의 부족한 내 모습에서 더 이상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먼저 바닥까지 떨어지자는 심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야 말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현재는 오히려 무덤덤하다. 왜냐하면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이 사실 그대로의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무의식적으로 행해왔던 것들을 제대로 고쳐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정약용 선생님이 제자 황상이 했던 물음에 대한 답을 들어보니 오히려 내가 바보였던 것이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에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기쁜 생각이 들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다.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는 외우는 데 민첩한 사람은 소홀한 것이 문제다. 둘째, 글 짓은 것이 날래면 글이 들떠 날리는 게 병통이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친 것이 폐단이다. 대저 둔한데도 계속 천착하는 사람은 구멍이 넓게 되고,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진단다. 답답한데도 꾸준히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하게 된다. 천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뚫은 것은 어찌하나?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네가 어떤 자세로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한다."
여러분! 저는 모르는 것이 남들보다 열배 아닌 백배 많은 그저 이름 없는 백치입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 때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라는 선조들의 말씀을 가슴에 품으면서 부지런히 하나하나 알아나가고야 말겠습니다.
나는 이렇게 다짐한다. 그리고 조금씩 내가 가진 부정적인 감정들을 제거하기 위해 앞으로 더 많이 이 책에 의존하고 싶다. 하나가 해결되었다 싶으면 또 다른 트라우마를 찾아서 이 책을 여행할 것이다. 처음에는 "뭐 이리 같은 말만 반복해놨어?"라고 투덜거렸지만 오히려 반복적으로 깨달음을 주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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