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물 쓰듯' 쓰라고 부추기는 세상
가까운 물 버리고 먼 물 끌어가는 물정책에 생명은 없다
▲ 바다에서 '민물'을 찾아 발버둥치는 붕어떼. 이들이 바다로 내려간 이유는 뭘까요? ⓒ 하병주
'물은 생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당연하고 단순한 듯 들리는 말이지만 이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주는 표현이나 비유는 미처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물은 생명을 키워내는 바탕인 셈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물이 우리가 사는 이 지구에 무척 많습니다. 지구 표면의 71%가 물이고 그 양이 13억8500만㎦이라고 하니, 보통사람의 머리로는 상상으로도 가늠하기 힘들 만큼의 양입니다.
▲ 사천만에는 크고 작은 11개의 하천이 흘러듭니다. 그 중 하나는 남강댐 물이 빠지는 인공방수로 입니다. ⓒ 하병주
그 중 97%가 짠물, 그러니까 바닷물이고, 2%는 빙하나 빙산 형태로 있다고 하네요. 결국 1%만이 강과 호수 등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담수로 존재하고, 또 그 중 대부분도 지하수로 존재한다고 하니, 담수를 먹고 살아야 하는 인간으로서는 정말 귀하고 또 귀한 '물'인 셈입니다.
물이 담수를 먹고 살아가는 많은 생명들에게 다가가는 주된 방법은 '비'가 되어 떨어지는 것입니다. 도랑물도 계곡물도 강물도 지하수도 모두 '빗물' 아닌 것이 없으니, 풀도 나무도 산짐승도 물고기도 비가 내려야 살 수 있지요.
인간에게 이 '빗물'은 더욱 중요합니다. 농사도 지어야 하고 밥도 지어 먹어야 합니다. 목욕하고 빨래하고 공장도 돌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아무 물이나 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안심하고 쓸 수 있을 만큼 수질이 깨끗해야 '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빗물'은 아주 양호한 편입니다.
▲ 최근 비가 많이 내리자 남강댐에서 사천만 쪽으로 물을 방류하는 일이 잦았다. ⓒ 하병주
그런데 비도 적당히 내려야 '생명수'라 부를 텐데, 요즘처럼 너무 많이 내릴 때는 오히려 공포로 다가옵니다. 산을 무너뜨려 집을 덮치고 성난 물길이 마을을 덮치기도 해 생명을 앗아가는 수가 많습니다.
때로는 비가 너무 내리지 않아 애를 먹기도 하지요. 빗물이 없으면 당장 마실 물을 구하기도 힘들지만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야말로 큰 난리가 나겠지요.
그래서 인간은 빗물을 가뒀다가 적당한 때에 쓰기로 하고 저수지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큰 효과를 봤지요. 비가 한참 내리지 않아도 저수지 아래 몇 개 마을이 넉넉히 쓸 수 있었습니다.
▲ 20일 저녁 무렵 경남 사천의 한 바닷가 진풍경. 붕어떼가 짠물을 피해 작은 하천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 하병주
하지만 인간의 생활환경이 달라져 물 씀씀이가 헤퍼지니 저수지만으론 부족했습니다. 점점 더 큰 저수지를 만들었고, 결국 몇 개의 도시가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큰 '댐'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물을 더 헤프게 쓰고 더럽혔습니다. 또 그럴수록 더 물을 독점했습니다. 다른 많은 생명들의 사정은 무시됐지요.
맑은 물을 찾아 댐은 더 깊은 계곡으로 들어갔고 지하로 흐르던 물도 억지로 세상 구경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강과 하천은 죽어 갔습니다. 먹는 물에는 신경을 많이 쓴 반면 버린 물에는 신경을 덜 쓴 결과였지요.
▲ 민물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 몸무림 치는 모습이 눈물겹습니다. ⓒ 하병주
경남 서부지역에서 최근 겪고 있는 '댐 논란'은 이런 맥락 속에 진행되는 일입니다. 낙동강이 주는 크나큰 축복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는 물을 두고 멀리 있는 지리산 계곡물을 먹겠다는 생각이 그 출발점입니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낙동강 상류에서 진행된 각종 개발과 그로 인해 수질이 나빠졌던 점이 배경으로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강을 포기하면 안 되겠다는 뼈저린 반성 아래 '낙동강 수질 개선 사업'이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과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MB정부가 '낙동강 살리기 사업'을 새롭게 꺼냈습니다. 이쯤 되면 '이번에야 말로 낙동강이 정말 살아날 수 있겠구나'하고 기대를 걸 수 있어야 마땅합니다.
▲ 물고기들이 오르려는 곳은 경사가 낮음에도 물이 적고 물살이 센 곳입니다. ⓒ 하병주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낙동강을 포함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놓고 요즘 말들이 많지요. '진짜 강을 살리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가' 의심이 깔려 있는 탓이 큽니다. 아마도 대규모 보를 많이 만들고 강 주변을 개발하는 내용이 중심이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산광역상수원사업'을 목표로 '남강용수증대사업'이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부산으로 물을 끌고 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남강댐 물이 부족했기에 '댐에 물을 더 가두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홍수위험에 대비해 사천만으로 물을 더 내려 보내겠다'는 계획이 이들 사업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남강댐 상류인 함양이나 산청에 댐을 하나 더 짓겠다는 계획도 담고 있습니다.
▲ 마치 달리기를 위해 출발선에 늘어선 선수들 처럼 한 곳만 응시하는 물고기들. ⓒ 하병주
이러니 누가 봐도 현 정부의 '낙동강 살리기'는 그저 '사업'일 뿐, 그 결과로 '진짜 낙동강이 살아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서부경남 주민들과 환경단체에서 이런 주장을 펴니까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예비타당성 연구용역조사를 진행하고 있던 '남강댐용수증대사업'은 쏙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 대신 '남강댐치수증대사업'이 불쑥 태어났습니다.
▲ 몸집이 큰 놈은 오르기에 더욱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얼마 못가 드러눕고 말았네요. ⓒ 하병주
이를 '배 다른 형제'로 봐야 할지 아니면 '배아 복제품' 쯤으로 봐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기존의 사업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경 설명이 조금 다른데, '접시모양으로 생긴 남강댐이 갑작스런 폭우에 홍수조절기능이 취약하므로 사천만 쪽으로 비상방수로를 하나 더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그 가정이 또 한 번 웃깁니다. '1만 년 빈도'에 대비하겠다는 게 수자원공사와 국토해양부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1천 년도 아니고 1만 년이라니, 많은 사람들이 "그 정도 비면 댐은 남아 있을지 몰라도 사람은 아무도 안 남아 있을 것"이라며 혀를 찹니다.
▲ 바닷물이 점점 차오르니 도전에 성공하는 물고기도 간혹 눈에 띕니다. ⓒ 하병주
흔히들 "수요가 공급을 낳는 시대를 지나 공급이 수요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다"며 시장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곤 합니다.
이것의 바탕에는 성장 중심, 경쟁 중심의 사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고가 국가경영철학에까지 영향을 준다면 '사회기반구축'이란 이름으로 얼마든지 공급이 수요를 부추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지쳐 쓰러진 녀석들도 보입니다. 저들은 누군가의 밥이 될 운명이겠지요. ⓒ 하병주
그곳에서 문득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물고기들을 만났습니다. 붕어를 비롯한 담수성 어류가 짠물을 피해 민물이 흘러드는 좁은 어귀에 몰려 있었습니다.
아마도 남강댐물이 방류될 때 함께 떠내려 왔을 이들은, 작은 물줄기를 찾아 여기로 모였나 봅니다. 물줄기를 타고 오르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힘을 쓰기에 물은 너무 얕고 세차 보입니다.
▲ 사진을 찍는 동안 만찬을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왜가리와 백로들. ⓒ 하병주
이들에겐 정말 물은, 더 정확히는 '민물은 곧 생명'입니다.
정말 물을 아껴 쓰고 싶습니다. 또 가까이 있는 물을 쓰고 싶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겉으론 물을 아껴라 하면서도 물을 많이 쓰라고, 더구나 멀리서 보내주는 물을 쓰라고 끊임없이 부추기지는 않는지요.
▲ 그럼에도 목숨건 사투는 계속됩니다. ⓒ 하병주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