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눈에 정장 한 중년을 사모하는 젊은 백수가 말하길...
[서평] 이상섭 소설집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
▲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이상섭/ 실천문학사 펴냄)겉그림. ⓒ 실천문학
국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치고 박는 모습을 보아도 막상 내 주변을 보면 그 시끄런 국회와는 전혀 다른 평범한 일상이 이어진다. 어쩜 저리 태평할까, 하는 뜬금없는 궁금함이 몰려들면서도 삶이란 그런 건가 보다 한다. 하지만 그건 늘 해왔던 대로 살아가는 것일 뿐 세상 돌아가는 일에 아무 관심도 없다는 것을 뜻하진 않을 게다. 왜냐면 알게 모르게 '너'와 '나'는 늘 무언가로 연결되고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이상섭이 그간 발표한 소설들을 모아 내놓은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실천문학사 펴냄, 2009). 그 안에 담긴 소설들은 마치 크고 작은 여러 터가 셀 수 없이 많은 실핏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사회라는 좀 더 큰 터에서 생기는 일과 가족이라는 아주 작은 터를 배경으로 삼아 벌어지는 일이 정말 자연스럽게 만난다. 저 멀리 국회에서 벌어지는 시끄러운 소리들이 알게 모르게 어느덧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드는 것처럼 말이다.
'바닷가에 그 집에서, 이틀'은 사실 꿈도 꾸기 어려운 숨가쁜 일상과 드러누운 꿈들이 소설에 아니 세상에 차고 넘친다. 그리고 지금 우릴 불러 세워 말문을 연다.
꿈을 활짝 피워보지 못하고 한정된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젊은이 일상이 비정규직 문제와 마주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여러 엄마가 거쳐 간 한 가정에서 경찰 아빠는 가정사 문제 뿐 아니라 '촛불'들에 주의를 기울여 살피느라 고민에 빠져 산다.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은 서민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일품이다. 화려한 영상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보다 더 적나라할 수 없겠다 싶은 말들이 잔치라도 벌이는 양 쏟아내는 말, 말, 말을 이어 들려준다. 삶이란 그런 거야, 라고 말하는 이야기꾼 한 사람을 제대로 만난 것 같아 알게 모르게 스쳐가는 투박한 사투리를 미처 확인하지 못할 정도다.
"새똥만 한 식당 홀에 남자 하나만 달랑 앉아 있다. 첩첩 사람에 첩첩 그릇이 쌓이는 백 여사의 꿈은 오늘도 무너질 모양이다. 괜히 남자에게 눈길이 쏠린다. 양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근처의 직장인인 모양이다. 갑자기 양복 때문에 남자가 부럽게 느껴진다. 백 여사 광내기 위해서라도 나도 저렇게 정장을 한 채 피곤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아, 나에게는 정녕 달콤한 피로는 꿈이란 말인가. 와 이리 늦노? 동남해운에 퍼뜩 가라. 안 온다고 계속 전화질이다. 흡, 거기라면 남항? 이건 곤란하다. 거리도 거리지만 거리에 깔린 게 줄동창이기 때문이다. 혹시 길거리에서 초등학교 동창 하나만 만나도 내 처지, 대놓고 공개방송 하는 격이다. 거긴 너무 멀어, 그리고 나 지금 내부 사정이 안 좋아. 부러 아랫배를 싸쥔다. 미친놈, 지랄도 곱게 해야 봐주제. 얼른 갔다 와, 밥 묵고 싶으몬! 공짜밥 먹는 게 미안해 양심수 같은 마음으로 몇 번 도왔더니 이젠 아예 종업원 취급이다. (…) 국숫발 붓기 전에 나서는 게 몸에 이롭겠다. 이럴 때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신 아버지는 왜 안 보이는 거지?"(<그 집에서, 이틀>에서 '플라이 플라이', 15)
엄마, 아빠가 없는 상황은 아예 기본 배경인데다 늙으신 할머니뿐 아니라 언제 세상과 이별할지 모르는 남동생을 돌봐야 하는 한 여자 이름은... 묻지 말자. 그런 젊은 여자가 한 사람 있다. '그녀'를 소개하는 작가의 말을 넘나드는 '그녀'의 말과 삶이 매우 거칠다, 아니 투박하기 그지없다.
마야 누나인 그녀는 역사 속 이야기로만 남은 마야문명을 살려내겠다는 것처럼 마야를 살려내기 위해 바쁘게 산다. 제 몸도 아끼지 않은 덕에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지독한 세상만 경험하게 되었지만 그런 것들은 마야를 돌보는 일로 가득한 일상에 서둘러 파묻힌다. 마야를 위해서, 그래서 다른 이를 위해 허락하던(?!) 것을 '마지막 순간'에... '마지막 길'을 가게 된 동생과 그녀가 서로 깊은 눈길로 마주한다.
'사라지는' 마야와 '살아가야만 하는' 마야 누나가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생각해본다. 삶이란 그런 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나. 그렇고 그런 삶을 다 어쩌겠나, 하고 푸념하고 싶었나. 설명도 해명도 거부하고 무엇보다 잘 알지도 못하고 서둘러 내뱉는 해설을 절대 거부하는 그녀의 몸짓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조용한 내 주변 어딘가에서 세상을 향해 거칠게 내뱉는 신음소리들이 오늘도 분명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을 안다.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
빌린 돈 받아 휴가를 보내고자 친구를 찾아간 상만과 여자친구 혜주. 친구 동만 집에 간 이 두 사람은 정작 만날 사람은 만나지 못한 채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다 그 집 할머니와 간간히 드나드는 사람들을 만나 두서없는 말을 나누기 시작한다. 집안 구석구석을 주인처럼 살펴보고 바닷가도 다니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휴가를 보낸다. 이 둘이 나누는 거친 입담은 서로 다르면서도 같아 보이는 가정사를 주고받는 사이사이에서 대책 없이 툭툭 튀어 오르면서도 어느새 그 사이로 자연스레 스며든다. 바닷가 그 집에서 며칠 보내는 그 짧은 시간동안 둘은 거친 삶을,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을, 그 둘만이 기억할 거친 경험을 남긴다. 삶이란 그런 거다, 라고 말하고 싶은 이들 중에는 이 둘도 포함될 듯하다.
쓰리고 아파 더욱 애달픈 가족이 있고, 거칠고 암담한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 '법대로'를 들이대며 사람을 떠밀고 내달리는 세상이 있고, 부러 온몸으로 반대를 표시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을 드러내는 몸짓이 있다. 바닷가 냄새 짙게 나는 배경들이 두루 퍼진 이상섭 소설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은 '작은' 가족과 '큰' 세상, '작은' 사람과 '큰' 사회가 맞물린다. 드넓고 거친 바다는 삶을 일구는 터이면서도 동시에 가늠할 수 없는 개개인의 삶과 복잡한 세상을 대신하기도 한다.
잡을 틈 없이 거세지는 빈부격차를 걱정하는 '작가의 말'을 남긴 지은이는 그의 세 번째 소설집인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을 세상에 내어놓고 아픈 가슴을 틀어쥐었는지도 모른다. 뭐라 달리 설명할 길 없는 여러 모습을 또 서로 얽어맨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자니... 소설은 그렇게 여기 이곳 거칠고 아린 삶을 그대로 이어받고 또 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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