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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높이 구두'를 파는 부부

전주 모래내 시장 이정숙 유양종 부부

등록|2009.07.23 16:32 수정|2009.07.23 16:32

▲ 전주 모래내 시장에서 키높이 구두를 판매하는 이정숙(좌) 유양종(우) 부부 ⓒ 박창우


일명 '키작남(키 작은 남자의 준말)'의 필수 아이템은 뭐니뭐니 해도 키높이 구두. 굽이 높은 신발에 깔창까지 더하면 5~10cm 는 기본이다. 단지 신발하나 바꿨을 뿐인데 숨 쉬는 공기마저 달라지고,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샘솟는다. 키높이 구두는 이른바 '호빗족'에게 생명연장, 아니 키 연장의 샘물과도 같은 존재다.

바로 이들을 위한 곳. 전주시 모래내 시장에 가면 '5~7cm 키 커지는 구두'라는 투박한 간판을 내건 아주 조그마한 신발집이 있다. 건물 외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로 봐서는 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가게로 보이는데, 도대체 누가 '키높이 구두'를 팔고 있는 것일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정말 '키작남'일까. 지난 17일 궁금증을 한아름 안고 가게 문을 노크했다.

10년 전 호황... "지금은 어려워"

키높이 구두5~7cm 커지는 키높이 구두 ⓒ 박창우


"한 10년 됐어요. 그 땐 이런 구두를 파는 곳이 거의 없었죠. 그러니 장사도 꽤 됐고요. 하루에 열댓 켤레는 팔려서 수익도 30만 원 정도는 됐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영…."

'5~7cm 키 커지는 구두'를 운영하는 이정숙(52), 유양종(53)씨 부부는 이곳에서만 30년 가까이 장사를 해오고 있다. 원래는 남편되는 유양종씨가 양복점을 약 20년간 운영해 왔는데 기성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가게 경영이 어려워졌고, 새로운 사업아이템으로 '키높이 구두'를 선택한 것이었다.

시작은 좋았다. 이른바 '대박' 까지는 아니었어도, '키 높이 구두'가 희소하던 터라 가게 운영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구두 장사를 통해 아들과 딸을 다 키우고 대학까지 보낼 정도의 풍요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2~3년 전부터 어려움이 찾아왔다. 전반적인 경기불황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지만 무엇보다 대형마트에서 동일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불황도 불황이지만 대형마트에서 키높이 구두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려워졌다고 보면 돼요. 그때부터 매출이 눈에 띄게 줄었죠. 게다가 인터넷 사이트나 쇼핑몰 등에서 저가 정책으로 물량을 쏟아내니 상대가 안돼요. 물론 제품의 질은 다르겠지만, 일단 가격 경쟁에서 밀리니…."

이곳에서 판매되는 구두는 한 켤레에 약 6만원.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두 켤레를 묶어 8만원에 판매를 하니 경쟁이 안된다. 그나마 10년 전부터 꾸준히 가게를 찾아주는 단골 손님 덕에 가게를 유지해 나가는 상황이다. (이들 부부는 오래된 건물이라는 특성상 가게 임대료가 낮다는 것 역시 가게를 유지하는 또 다른 이유라고 덧붙였다.)

40~50대 중년 남성이 주요 고객…"비전 없다"

서울에서 택배로 물건을 공급받아 판매하는 이들 부부의 가게를 찾는 주요 손님은 중년 남성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젊은 계층은 인터넷을 통해 구매를 하고 재래시장을 잘 이용하지 않기 때문인 거 같다.

"당연한 얘기지만, 키가 작으신 분들이 많이 사러 오세요. 아무래도 키가 작으면 위축되는 그런 게 있으니까, 자신감? 그런 걸 키우기 위해서 구매하시는 거 같습니다."

이들 부부는 10년 동안 계속해서 가게를 찾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한 두 번 들렸다 가는 뜨내기 손님은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늘어나는 손님은 없고, 갈수록 이곳 가게를 찾는 단골은 줄어가니 이들 부부의 걱정도 점점 깊어지는 상황. 특히 8년 전 유양종 씨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혼자서 가게를 꾸려온 이정숙 씨는 더욱 고민이 많다.

"전망이 없잖아요. 그래서 업종을 바꿀까 생각도 많이 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정한 아이템은 없지만, 지금 이것저것 구상 중에 있어요."

어려운 재래시장 내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지만, 10년 전, 선구자적 시각으로 '키높이 구두'를 아이템으로 정했던 이들 부부라면 30년을 지켜온 이곳 가게에서 혹시 또 다른 희망을 찾을지도 모르지 않을까.

갑자기 찾아가 취재를 요청한 기자에게 "그냥 있는 그대로만 써 달라"며 웃어 보인 이들 부부의 미소와 희망도 키높이 구두만큼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선샤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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