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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만에 뒤집힌 '반대표' 발언... 박근혜, 소신 어디갔나

야당 "원칙 버렸다"-"기회주의적 처신"... '언론악법 7적' 규정

등록|2009.07.23 18:31 수정|2009.07.23 19:33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 남소연


여당의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전후로 한 박근혜 전 대표의 처신이 도마에 올랐다. 23일 야당은 박 전 대표를 "기회주의자"(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 "무책임 정치의 전형"(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이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지난 19일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준비하자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그는 한 측근 의원의 입을 통해 "(본희의) 참석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며 "만약 참석한다면 반대표를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반대표' 발언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 15일에도 "미디어법은 가능한 여야가 합의해 처리하는 게 좋겠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이 알려지자 한나라당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당내 적지 않은 '지분'을 가진 박 전 대표가 등을 돌린다면 미디어법 통과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충격을 받은 한나라당 지도부는 박심(朴心)을 얻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곧바로 박 전 대표가 제의한 사후규제(가구구독률+시청점유율 30% 미만) 방안을 수정안에 포함시키고, 친박계 의원들과 일대일 접촉에 나섰다.

'반대표' 발언 사흘 뒤 국회 나타난 박근혜 "당에서 노력 많이 했다"

"박 전 대표도 표결에 참가할 것"이라는 발언으로 심기를 건드린 안상수 원내대표는 '박근혜안'이 수정안에 포함됐음을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언급했다. '반대표' 발언은 20일 표결처리를 강행하려던 한나라당의 계획마저 연기시켰다. '박근혜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불과 사흘 만에 '반대표' 발언을 뒤집었다. 여야가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과 본회의장 안에서 '전투'를 벌이던 때 유유히 나타난 그는 표결에 참석하려 했으나 농성중인 민주당 당직자들에 막혀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실로 들어간 박 전 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합의처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노력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여야가 주먹다짐까지 벌이게 된 책임을 야당에 돌리면서, 여당에는 힘을 실어준 셈이다.

박 전 대표로부터 'OK' 사인을 받은 한나라당은 거침없이 야당을 밀어붙였고, 불과 30여분 만에 미디어법을 원하는 대로 처리해 버렸다.

야당 "원칙 버린 박근혜, 국민 배신했다"

야당이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의 주범 중 한 사람으로 박 전 대표를 꼽는 이유는 평소 그가 즐겨 주장하던 '원칙'을 저버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박 전 대표의 "합의처리" 발언이 나올 때만 해도 두 손을 번쩍 들고 환영했다.

하지만 야당은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뒤집으면서 한나라당에게 강행처리 명분을 줬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김형오 국회의장, 이윤성 국회부의장,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고흥길·나경원 의원,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과 함께 박 전 대표를 '언론악법 날치기 7적' 중 하나로 지목했다.

유은혜 부대변인은 "(박근혜 의원이) 국민의 뜻과 여야합의 처리를 강조하더니 어느새 원칙을 버리고 날치기 공조 지휘자가 됐다"면서 "훈수정치의 귀결이 결국 대세 편승정치임을 입증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이강래 원내대표도 "말을 꺼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했다"며 "한나라당 내부에서 최선을 다해 강한 목소리를 냈다면 (미디어법도) 협상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또 "박 전 대표의 태도는 너무나 기회주의적이었다"면서 "결국 국민들의 여망을 저버리고 국민을 배신했다"고 주장했다.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도 "박 의원은 기회주의적 처신에 대해 국민 앞에 해명하는 것이 도리"라며 "늘 원칙론을 내세웠던 박 의원이 이번 '무책임 정치'를 만회하려면, 당장 불법, 탈법으로 통과된 언론악법에 대해 무효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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