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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의 내리막길에 피어 있는 꽃, 허치팡

[데일리차이나] 허치팡(何其芳) 사망 32주년에 부쳐

등록|2009.07.24 14:37 수정|2009.07.24 14:37

허치팡감각적이고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작품이 현실적인 굴곡과 제도적 완력에 의해 조금씩 손상되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 바로 '허치팡현상'으로 불려지고 있다. ⓒ 인민문학출판사


민감한 촉수로 세계의 변화를 감지하고 섬세하면서도 응축된 언어로 다양한 메타포를 지닌 글을 쓰던 작가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감수성을 소진하고 지식인으로서의 비판의식마저 상실한 채 점점 대중선동의 험악한 구호를 외치거나 둔탁한 글쓰기로 전락해 가는 양상을 중국문단에서는 '허치팡(何其芳)현상' 이라고 부른다.


1977년 7월 24일 작고한 허치팡은 국내에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현대문학 1세대  시인이자 수필가이고 문학평론가였다. 정치적으로, 문학적으로 지도자적 역할을 수행하며 다방면에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한 비중 있는 작가가 왜 중국문단에서 '아쉬운 변절'의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는 것일까?

1912년 도도히 흐르는 창장(長江) 인근인 완저우(萬州)에서 태어난 허치팡은 베이징대학 철학과 재학 시절 프랑스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아 섬세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환상과 고뇌의 세계를 작품화하기 시작했다.

"난 다만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싶다. 그 빗소리가 초췌한 내 꿈을 적시면 그 꿈이 언젠가 무성한 녹음으로 자라 나를 포근히 덮어주리니. (我仅只希望听见一点树叶上的雨声。一点雨声的幽凉滴到我憔悴的梦,也许会长成一树圆圆的绿阴来覆荫我自己。)"

1933년 작품인 <비 오기 전(雨前)>에서 허치팡은 사회적인 분위기와 자신의 심리적인 기후상태를 흐린 하늘과 비로 상징화하여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시기의 산문시집 <화몽록(畵夢錄)>으로 제1회 대공보문학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1938년 옌안(延安)으로 가면서 그의 문학은 더 이상 순수한 문학일 수 없었고 다만 정치를 위해 복무해야 하는 도구여야 했다. 1942년부터 1947년까지 저우언라이(周恩來)를 도와 함께 일을 하는데 이때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한밤중의 일(一夜的工作)>이라는 글은 중국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검소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차 한잔과 땅콩 몇 개를 먹으며 밤새 보고서류를 읽으며 일하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아직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한 정치인의 모습을 이렇게 우상화하듯 가르친다는 것이 조금은 놀랍다.

이 밖에도 허치팡의 산문 <가을(秋天)>과 시 <삶은 얼마나 드넓은가(生活是多么廣闊)>, <난 소년 소녀를 위해 노래하려네(我爲少男少女們歌唱)> 등이 국어교과서에 실려 애국적이고 열정적인 삶에 대한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는 허치팡의 작품이 그만큼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신화일보(新華日報)사장, 인민해방군 총사령관 주더(朱德)의 비서, 정협위원, 인민대표,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소장 등을 역임하며 그의 작품이 제도권의 입맛에 맞는, 교과서적이고 다소 교조적인 방향으로 흘렀다는 역설적인 반증이기도 하다.

제국주의 침략과 그에 맞선 항전, 국공내전의 혼란, 건국과 사회주의 개혁의 소용돌이 그리고 10년동란 문화대혁명! 이 요동치는 역사의 탁류 속에서 한 개인이 자기만의 감각적인 색을 지키며 순수하게 살아남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허치팡현상'은 그가 지녔던 초창기의 뛰어난 예술성이 현실적인 필요와 제도적 완력들에 의해 조금씩 손상되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중국문단의 아쉬움의 표현이 아닐까 보인다. 높은 예술적 경지를 이룩하고 이후 점점 세속화의 내리막길을 걷는 이들에 대한 경구로  '허치팡현상'은 여전히 살아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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