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 북산면 '오빛뜰 마을'에서 맞은 아침은 상쾌했다. 거실의 마룻바닥 위에 이부자리를 깔고 잠을 잤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지만, 약간 춥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산골의 여름밤은 시원했다.
내 옆에 누워있던 연우는 약간씩 춥다는 표정으로 간혹 잠에서 깨었고, 간간히 개짖는 소리가 들려 정취는 더했다. 김 선생 부부는 6시에 일어나 산책을 하기도 하고 마당을 가꾸고 계셨다.
서울에서 온 게으른 우리 부부는 8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우리도 마당을 거닐다가 9시에 아침식사를 했다. 나물요리와 김으로 맛있게 먹었다. 김치도 남달랐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 부부와 연우는 '1011 1년 길' 산책을 나서고, 김 선생 부부는 교회로 갔다.
7월 말, 오전 10시의 햇살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집 사람은 모자를 준비했지만, 나와 연우는 그냥 털레털레 모자도 없이 걸었다. 사실 100% 신작로를 걷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을 했지만,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것도 재미는 있었다. 산과 호수가 절경을 이루고 있고, 나무가 좋았기 때문이다.
북산면 오항리에서 추전리까지 왕복 7KM를 걷는 길은 포장도로 70%에 비포장 도로가 30% 정도로 소양호를 바라보면 임도를 걷는 길이라 무척 재미있었다. 단, 날 파리가 너무 많아 반드시 선글라스를 써야할 것 같고 입에도 마스크가 필요할 것 같았다. 특히 여름에는 말이다. 날 파리가 두 시간 내내 연우와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연우랑 나는 그냥 걸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연우는 마구 달리며 앞서 갔고, 나는 천천히 뒤를 따랐다. 집사람은 카메라를 들고서 길옆의 나무와 풀을 찍으며 더 천천히 걸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이라 그런지 왕복 2시간을 오갔지만, 사람은 어느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그런지 앞서 달리던 연우는 "아빠! 빨리 와"를 몇 차례 외치더니 이내 앞서는 것을 포기하고는 나와 손을 잡고 걸었다. 아직은 무서운 것이 많은 나인가 보다.
포장도로를 걸을 때는 약간 무릎이 아프고, 더웠다. 복사열이 많이 올라오는 계절이라 힘들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비포장도로를 걸을 때는 시원하기도 하고 몸이 편했다. 돌아오는 길 위에서까지 생각을 하니 비포장도로로 보존을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바꿀 수 없다.
일부 주민들이 포장을 원했다고 하니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가기는 한다. 갈 때는 좌측이 산이고 우측이 호수다. 산은 높지 않고 나무가 많다. 우측의 호수도 바로 보이는 곳은 많지 않다. 나무가 많아 간간히 호수가 보이고, 확 트인 곳에 가면 호수를 넓고 크게 보는 것이 가능하다.
물을 보는 것 이외에 길섶에 시냇물이라도 흐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중간 중간에 호수가 잘 보이는 정자를 2~3곳 짓거나 원두막 같은 것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것도 아니면 호수를 바라보며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를 곳곳에 5~6개 정도 설치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남자들은 별 상관없지만, 여성들을 위해 화장실도 1~2곳 정도 마련해두는 성의도 필요할 것 같았다. 나와 연우는 1년 더 살 수 있다는 말에 무조건 열심히 걸었다. 더웠다. 목도 말랐다. 아무 것도 준비한 것이 없어서 더 빨리 걸었다. 추전리에 가서 계곡 속으로 들어가 물도 한 모금 마시고, 찬물에 머리도 감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우랑 신나게 걷다보니 50분 만에 추전리에 닿았다. 5농가가 있는 작은 마을인 이곳은 외지인이 들어와 지은 것 같은 별장형 주택 1채와 농가주택 4채가 있다. 밭에서 고구마 순을 정리하는 아주머니와 말을 몇 마디하고는 어제 갔던 물가로 내려가 연우랑 잠시 놀았다.
너무 더워 이내 포기하고는 계곡으로 급히 갔다. 물을 마시고 머리를 감았다. 여름 계곡은 무척 서늘하고 물도 차가웠다. 목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준비된 수건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다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집사람은 사진을 찍으며 오는지 뒤처져서 돌아갔는지, 보이지도 찾을 수도 없다. 나는 연우랑 젖은 머리를 털면서 다시 길 위를 걸었다. 어린 연우는 벌써 힘이든지 투정을 약간씩 부린다. "엄마는?" "아직 멀었어?" 몇 번을 물어보지만 시계를 보니 아직 11시 20분, 반 정도 밖에 오지 않았다. 젖은 머리는 벌써 말랐다. 덥다.
돌아오는 길의 반을 지나는 시점에서 연우가 참나무 아래에 있는 '큰갓버섯'을 발견했다. "아빠! 버섯이야" 나는 냄새를 맡고나서 버섯을 갈라 보았다. 색깔도 평범하고 잘 갈라지는 것이 먹는 버섯이 틀림없다. 냄새는 표고버섯과 비슷하다. 참나무 아래 땅 위에 자라는 큰갓버섯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4개의 버섯이 더 있다. 전부 사진을 찍고 조심스럽게 채취했다. 호박잎으로 싸서 숯불에 구워먹거나 된장국에 넣어 먹으면 맛이 있는 버섯이다.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돌아와 김 선생 부부에게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라고 버섯을 드렸다.
버섯을 조심스럽게 캐고 나서 다시 길을 재촉했다. 연우가 자꾸 보채는 것이 싫었고, 나도 힘들었지만 아빠로서의 책임감이 앞서 힘차게 걸었다. 시계를 보니 11시 50분이다. 이제 언덕 하나를 넘으면 바로 집이 보일 것 같다. 연우에게 "다 왔다"라고 외쳤다.
녀석은 이내 언덕을 뛰어 올라 "집이다"라고 외치며 달려갔다. 집사람은 역시나 다를까 덥기도 하고 날파리가 너무 많아 걷는 것을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와 있었다. 나는 버섯을 건네고 손을 씻었다.
교회를 다녀온 김 선생 부부는 감자로 점심을 준비하고 계셨다. 삶은 감자로 점심을 하게 되는가 보다. 나는 찐 감자를 보면 봉화군 상운면의 농사꾼 故전우익 선생이 떠오른다. 어느 날 누런 종이봉투에 조그만 감자를 십여 개 정도 쪄서 내 사무실에 가지고 오셨다.
"아니 왠 찐 감자입니까?" 라고 내가 물었다. 전우익 선생은 "이거 10개 팔아서는 점심 값이 나오지 않지만, 쩌서 먹으면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지"라고 대답을 하셨다. 우리의 농촌 문제와 농산물 가격에 대한 복합적인 생각을 한 마디로 정리해 주는 것 같은 전 선생의 표현이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다.
나는 5개, 집사람은 3개, 연우는 2개, 김 선생 부부는 4개씩으로 점심 감자식사를 전부 마쳤다. 다 팔아도 2천원이 안될 것 같은 양으로 다섯 명이 한 끼 식사를 해결한 것이다. 놀랍다.
사실 도시인이 하루 종일 먹는 쌀의 양을 원가로 계산하면 300원을 조금 넘는다고 하니, 껌 한 통보다 못한 농부의 땀방울 가치인 쌀의 낮은 가격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찐 감자로 점심을 마친 우리 가족은 오는 길에 시간이 되면 잠시 들리려 했던 춘천과 가평군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남이섬으로 길을 잡았다.
내 옆에 누워있던 연우는 약간씩 춥다는 표정으로 간혹 잠에서 깨었고, 간간히 개짖는 소리가 들려 정취는 더했다. 김 선생 부부는 6시에 일어나 산책을 하기도 하고 마당을 가꾸고 계셨다.
▲ 춘천 오빛뜰 마을 김상현 전 이장님의 황토한옥 ⓒ 김수종
서울에서 온 게으른 우리 부부는 8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우리도 마당을 거닐다가 9시에 아침식사를 했다. 나물요리와 김으로 맛있게 먹었다. 김치도 남달랐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 부부와 연우는 '1011 1년 길' 산책을 나서고, 김 선생 부부는 교회로 갔다.
▲ 춘천삼림욕장 ‘1011 1년 길’ ⓒ 김수종
7월 말, 오전 10시의 햇살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집 사람은 모자를 준비했지만, 나와 연우는 그냥 털레털레 모자도 없이 걸었다. 사실 100% 신작로를 걷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을 했지만,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것도 재미는 있었다. 산과 호수가 절경을 이루고 있고, 나무가 좋았기 때문이다.
북산면 오항리에서 추전리까지 왕복 7KM를 걷는 길은 포장도로 70%에 비포장 도로가 30% 정도로 소양호를 바라보면 임도를 걷는 길이라 무척 재미있었다. 단, 날 파리가 너무 많아 반드시 선글라스를 써야할 것 같고 입에도 마스크가 필요할 것 같았다. 특히 여름에는 말이다. 날 파리가 두 시간 내내 연우와 나를 괴롭혔다.
▲ 춘천삼림욕장 ‘1011 1년 길’ ⓒ 김수종
하지만 연우랑 나는 그냥 걸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연우는 마구 달리며 앞서 갔고, 나는 천천히 뒤를 따랐다. 집사람은 카메라를 들고서 길옆의 나무와 풀을 찍으며 더 천천히 걸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이라 그런지 왕복 2시간을 오갔지만, 사람은 어느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그런지 앞서 달리던 연우는 "아빠! 빨리 와"를 몇 차례 외치더니 이내 앞서는 것을 포기하고는 나와 손을 잡고 걸었다. 아직은 무서운 것이 많은 나인가 보다.
▲ 춘천삼림욕장 ‘1011 1년 길’ ⓒ 김수종
포장도로를 걸을 때는 약간 무릎이 아프고, 더웠다. 복사열이 많이 올라오는 계절이라 힘들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비포장도로를 걸을 때는 시원하기도 하고 몸이 편했다. 돌아오는 길 위에서까지 생각을 하니 비포장도로로 보존을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바꿀 수 없다.
일부 주민들이 포장을 원했다고 하니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가기는 한다. 갈 때는 좌측이 산이고 우측이 호수다. 산은 높지 않고 나무가 많다. 우측의 호수도 바로 보이는 곳은 많지 않다. 나무가 많아 간간히 호수가 보이고, 확 트인 곳에 가면 호수를 넓고 크게 보는 것이 가능하다.
▲ 춘천삼림욕장 ‘1011 1년 길’ ⓒ 김수종
물을 보는 것 이외에 길섶에 시냇물이라도 흐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중간 중간에 호수가 잘 보이는 정자를 2~3곳 짓거나 원두막 같은 것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것도 아니면 호수를 바라보며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를 곳곳에 5~6개 정도 설치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남자들은 별 상관없지만, 여성들을 위해 화장실도 1~2곳 정도 마련해두는 성의도 필요할 것 같았다. 나와 연우는 1년 더 살 수 있다는 말에 무조건 열심히 걸었다. 더웠다. 목도 말랐다. 아무 것도 준비한 것이 없어서 더 빨리 걸었다. 추전리에 가서 계곡 속으로 들어가 물도 한 모금 마시고, 찬물에 머리도 감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우랑 신나게 걷다보니 50분 만에 추전리에 닿았다. 5농가가 있는 작은 마을인 이곳은 외지인이 들어와 지은 것 같은 별장형 주택 1채와 농가주택 4채가 있다. 밭에서 고구마 순을 정리하는 아주머니와 말을 몇 마디하고는 어제 갔던 물가로 내려가 연우랑 잠시 놀았다.
▲ 춘천삼림욕장 ‘1011 1년 길’ ⓒ 김수종
너무 더워 이내 포기하고는 계곡으로 급히 갔다. 물을 마시고 머리를 감았다. 여름 계곡은 무척 서늘하고 물도 차가웠다. 목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준비된 수건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다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집사람은 사진을 찍으며 오는지 뒤처져서 돌아갔는지, 보이지도 찾을 수도 없다. 나는 연우랑 젖은 머리를 털면서 다시 길 위를 걸었다. 어린 연우는 벌써 힘이든지 투정을 약간씩 부린다. "엄마는?" "아직 멀었어?" 몇 번을 물어보지만 시계를 보니 아직 11시 20분, 반 정도 밖에 오지 않았다. 젖은 머리는 벌써 말랐다. 덥다.
돌아오는 길의 반을 지나는 시점에서 연우가 참나무 아래에 있는 '큰갓버섯'을 발견했다. "아빠! 버섯이야" 나는 냄새를 맡고나서 버섯을 갈라 보았다. 색깔도 평범하고 잘 갈라지는 것이 먹는 버섯이 틀림없다. 냄새는 표고버섯과 비슷하다. 참나무 아래 땅 위에 자라는 큰갓버섯이다.
▲ 춘천삼림욕장 ‘1011 1년 길’ ⓒ 김수종
주위를 둘러보니 4개의 버섯이 더 있다. 전부 사진을 찍고 조심스럽게 채취했다. 호박잎으로 싸서 숯불에 구워먹거나 된장국에 넣어 먹으면 맛이 있는 버섯이다.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돌아와 김 선생 부부에게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라고 버섯을 드렸다.
버섯을 조심스럽게 캐고 나서 다시 길을 재촉했다. 연우가 자꾸 보채는 것이 싫었고, 나도 힘들었지만 아빠로서의 책임감이 앞서 힘차게 걸었다. 시계를 보니 11시 50분이다. 이제 언덕 하나를 넘으면 바로 집이 보일 것 같다. 연우에게 "다 왔다"라고 외쳤다.
▲ 춘천삼림욕장 ‘1011 1년 길’ ⓒ 김수종
녀석은 이내 언덕을 뛰어 올라 "집이다"라고 외치며 달려갔다. 집사람은 역시나 다를까 덥기도 하고 날파리가 너무 많아 걷는 것을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와 있었다. 나는 버섯을 건네고 손을 씻었다.
교회를 다녀온 김 선생 부부는 감자로 점심을 준비하고 계셨다. 삶은 감자로 점심을 하게 되는가 보다. 나는 찐 감자를 보면 봉화군 상운면의 농사꾼 故전우익 선생이 떠오른다. 어느 날 누런 종이봉투에 조그만 감자를 십여 개 정도 쪄서 내 사무실에 가지고 오셨다.
"아니 왠 찐 감자입니까?" 라고 내가 물었다. 전우익 선생은 "이거 10개 팔아서는 점심 값이 나오지 않지만, 쩌서 먹으면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지"라고 대답을 하셨다. 우리의 농촌 문제와 농산물 가격에 대한 복합적인 생각을 한 마디로 정리해 주는 것 같은 전 선생의 표현이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다.
▲ 춘천삼림욕장 ‘1011 1년 길’ ⓒ 김수종
나는 5개, 집사람은 3개, 연우는 2개, 김 선생 부부는 4개씩으로 점심 감자식사를 전부 마쳤다. 다 팔아도 2천원이 안될 것 같은 양으로 다섯 명이 한 끼 식사를 해결한 것이다. 놀랍다.
사실 도시인이 하루 종일 먹는 쌀의 양을 원가로 계산하면 300원을 조금 넘는다고 하니, 껌 한 통보다 못한 농부의 땀방울 가치인 쌀의 낮은 가격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 춘천삼림욕장 ‘1011 1년 길’ ⓒ 김수종
찐 감자로 점심을 마친 우리 가족은 오는 길에 시간이 되면 잠시 들리려 했던 춘천과 가평군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남이섬으로 길을 잡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