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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보다 차라리 도시락 싸 주세요"

<PD수첩> 경기도 무료급식편 보며 떠올린 딸의 한 마디

등록|2009.07.29 10:47 수정|2009.07.29 10:47
지난 28일 방송된 MBC <PD수첩>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는 '미디어법'사태와 경기도 교육청의 '무료급식'논란을 다루었습니다. 그 중 '무료급식'부분의 보도는 하마터면 잊어버렸을 과거를 떠올려주었습니다.

논란은 진보성향의 김상곤 교육감이 내 놓은 '초등학교 무료급식'에 대해서 교육위원들의 반대와 도의회 의원들이 예산삭감을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사실 많은 부모들은 자식들이 학교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 잘 모릅니다. 특히 엄마도 아닌 아빠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학교 선생님께 전화 한 번 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선물을 하려해도 혹시 부담을 느낄까봐 못 합니다. 또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아이들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는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가 전부입니다.

이번 <PD수첩>보도는 이제 중학생이 된 저희 두 딸이 초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게 해 줘서 무척 당황했습니다.

방송에서도 소개됐지만 초등학교 학생들은 '무료급식'대상자 기준이 있습니다. 매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담임 선생님께 신청을 하고, 필요한 증빙서류를 제출하게 됩니다.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이나 장애인부모의 자녀 등 몇 가지 기준이 있는데, 문제는 한 학급 또는 학교별로 그 숫자가 한정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기를 놓치거나 신청자가 많아지면 학교로서도 예산문제 때문에 선별할 수 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아빠 선생님이 이번에는 어렵대요... 차라리 잘 됐어요"

아이들이 저학년 때까지 고정적인 수입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혹시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아내가 학교에 신청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기초수급자는 아니지만 차상위계층에 해당되고, 또  다행히 학급당 배분 된 숫자가 남아있어서 두 딸이 해당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매월 7만 원 조금 더 되는 금액의 급식비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아빠인 제가 몰랐던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방송에서도 보도됐지만 사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는 '무료급식'을 받는 친구가 누군지 모른답니다. 이 학교만 그런 건지 아니면 모든 학교가 그런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무료급식'이라며 눈치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갈수록 늘어나는 무료급식 대상자들을 더 이상 학교와 교육청에서 감당할 수 없었다는데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부모들이 지난 몇 년 사이에 급증하고, 부산과 경남지역의 경기침체가 장기화 되면서 대량 실직사태와 이혼이 늘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각 지역 초등학교들에는 새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무료급식'신청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부득이 학교에서는 기준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기초수급대상자가 아니던 저희 아이들은 제외됐습니다.

아내는 걱정이 커졌습니다. 매월 7만 원이면 큰 부담이었고, 그렇다고 급식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더 놀란 것은 큰 딸의 말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차라리 전 잘 됐어요, 그냥 도시락 싸 주세요"랍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무료급식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는데, 그재서야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친구들끼리 눈치보는 사례가 많아, 차라리 돈 내고 먹는게 편해

학교에서는 친구관계를 생각해서 무료급식 대상 학생들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아이들 스스로 눈치를 보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부모는 몇 만 원 절약되지만 정작 아이들은 이 문제 때문에 점심시간이 무서워지는 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고, 친구들도 눈치를 주거나 하지 않지만 정작 '무료급식'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들은 그 시간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1년 가까운 시간을 매일 이런 부담속에 눈칫밥을 먹었을 두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경남도교육청에서는 방송에 보도된 것처럼 군 단위의 지역부터 차례대로 전체 무료급식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친구들 틈에서 눈칫밥을 먹는 경우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한창 많이 먹고 맛있는 반찬을 더 먹고, 투정을 해야 할 아이들이 왜 눈치를 보면서 밥을 먹어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경기도 교육위원회와 도의회, 아이들 현실 모르는 추태

이런 점에서 보면 지금 경기도 교육위원들과 도 의회의원들이 주장하는 '선별급식'이니 '차등지급'이니 하는 말은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입니다.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밥 전쟁'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무료급식에 반대하는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절대로 아이들에게 불편한 밥을 먹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몇 끼를 굶어도 상관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특히 한창 커야 할 아이들은 한 끼를 굶으면 영양분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먹고싶어도 먹지 못하는 '자괴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모른 체 해 주고, 친구들이 서로 모르면 우리 아이가 눈칫밥 안 먹겠지"라며 가볍게 생각했던 부모들이 계신다면, 정작 당사자들은 차라리 줄 서서 먹는 '무료급식'보다는 도시락을 싸서 먹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 문제는 '예산'타령이나 '선거공약'따위의 입씨름이나 하고 있을 문제가 아닙니다. 하루빨리 우리 자녀들을 그 지긋지긋한 '눈칫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문제입니다.

<PD수첩>은 국회가 이 문제를 다룬다며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국회 상황으로 봐서는 '제2의 경기도의회'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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