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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넘는 전세금도 부모가 해줘야 하나요?

[결혼 전세금 논란①] 아들 장가 보내는 데 대출 받고, 퇴직금 쓰는 친구들

등록|2009.08.10 09:31 수정|2009.08.10 09:31
최근 한 결혼정보회사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혼 남성의 45%, 여성의 37%가 '자택의 유무가 결혼 걸림돌이 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또 최소 전세자금으로 1억5천만원을 준비해야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최근 결혼한 남성과 여성, 결혼 적령기 아들을 둔 시민기자들에게 결혼 전세자금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 2단지 ⓒ 권우성


"아들 결혼해서 살 집은 어떻게 됐어?"
"광명시에 있는 주공 12단지에 1억3천만원 주고 얻었어. 거기가 13단지보다 3, 4천만원 싸서." 
"전세금을 자기가 다 해줬니?"
"그럼 어떻게? 우리 아들은 봄부터 돈 벌기 시작해서 저축해 놓은 돈도 없는데."

난 '억'이 넘는 전세금까지 친구가 해주었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가을에 아들을 결혼시키는 친구 A는 한동안 아들 전셋집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결혼 날짜를 잡은 뒤 막상 전셋집을 얻으러 다녀보니, 집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이다. A는 평소 아들 결혼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예단과 예물 등 해줄 것은 해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 한다"고 말해 왔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매우 서운할 것 같다면서.

하지만 비싼 전셋집을 얻느라, A의 바람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하물며 전세금 보태느라 자신의 비상금까지 모두 내놓았다고 한다. 그의 아들은 올해 졸업했고, 취업은 했지만 직장에 근무했던 기간이 짧아 저축해 놓은 돈이 많지 않다고 했다.

A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 B는 "난 집 담보대출 7천만원 받고 아들이 저축해 놓은 돈 합해서 얻어줬어"라고 말했다. 결국 B는 아들 장가 보내느라 받은 대출금 7천만원을 남편 퇴직금을 타서 갚았다. 친구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혼기가 찬 우리 아들도 혹시 전세금이 없어서 장가를 안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됐다.

아들에게 1억3천만원짜리 전셋집 얻어준 친구

말이 좋아 1억3천만~1억 5천만원이지, 아이들 대학까지 가르치면서 빚 안 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자식들한테도 조금은 덜 미안해 했었는데 이젠 그런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다. 결혼하는 데 전세금까지 보태줘야 한다니, 정말 큰 걱정거리가 새로 생겼다.

2008년 통계청이 혼인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결혼식비용과 신혼집 마련에 드는 비용을 79.3%가 부모의 지원과 자신의 저축으로 충당한다고 했다. 그런가 하며 부모가 전적으로 보태는 경우 9.5% 자신의 저축으로만 결혼한 경우는 11.3%에 해당한다고 했다.

행여 아들아이가 결혼비용 때문에 연애도 안하는 거라면 그것은 또 보통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 정도(1억3천~1억5천)의 전셋집 얻어 주기가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가 말이다. '직장만 얻으면 자기가 알아서 돈 벌어 결혼하겠지'라는 기대도 이젠 할 수 없는 시대가 된 듯하다.

내 주변 친구 아들들도 졸업하고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오르는 전세금을 당할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취업을 했다고는 하지만 회사 한 달 월급이 수백만원에 이르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부동산 투기든 주식이든 재테크를 하지 않고 월급만 꼬박 모아서는 재산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게 요즘의 현실이고, 내게 그런 재주가 없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졸업 후 바로 취직해도, 자력으로 전세 얻기 힘들어

주말에 아들아이가 왔다. 난 마음먹고 아들에게 물었다.

"너 혹시 결혼비용 때문에 결혼생각 안 하는 거니? 그래도 어떻게 되겠지. 나이 더 먹기 전에 결혼해야지 않니?"
"엄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 32살이면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니에요. 그렇지만 35살은 안 넘길 생각이니 걱정마세요."

"왜 35살은 안 넘길 생각이야?"
"35살 넘어서 아무 것도 없으면 여자들이 어디 눈길이라도 주겠어요. 35살이 넘으면 내 집도 한 채 있어야 하고, 좋은 차도 한 대 있어야 하고,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도 받아야할 것 같아서요."

"그래도 네가 결혼해서 아이를 안 낳는다면 몰라도 한 명 정도는 낳아야 하는데 아이가 너무 늦지 않니?"
"엄마, 자꾸만 그런 말 하면 나 독립한다."

다행히 아들은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해 3년6개월 정도 직장생활을 했다.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저축을 했지만, 전세금은 생각도 못하고 겨우 결혼비용으로 쓰면 딱 맞을 정도의 돈을 모았다.

자기들 살 건데, 왜 부모가 전세금을 대줄까

지난 2월에 결혼한 조카는 우리아들과 동갑이다. 그 아이도 취업을 한 후 저축을 열심히 했지만 결혼비용 정도밖에 못 모았다고 한다. 하여, 전셋집 얻는 데 들어간 전세금 9천만원 모두를 언니가 부담하게 됐는데 당시 나와 언니는 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크게 싸울 뻔 하기도 했다.

"언니, 며느리 될 아이에게 혼수 덜 해오라고 하고 전세금에 보태라고 하지. 우진엄마(우리 딸)도 그랬잖아."
"애, 그런 건 여자애가 먼저 그렇게 말해야지. 시어머니인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먼저 꺼내니?"
"아니, 왜 못 꺼내. 자기네들 살 집이고 결국 자신들 재산이 될 건데."

하지만, 언니는 그것이 용납되지 않는 듯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올케도 한 마디 거들었다.

"우진 엄마는 지금 생각해도 참 지혜로왔던 거지. 그러니까 그 나이에 벌써 자리를 잡았잖아요. 그 시절에 그렇게 하기 힘든데. 우리 아이들도 우진이 엄마하고 생각이 비슷해요."

그러나 언니는 그 말에 더욱 기분이 상한 듯했다. 지금 생각하니, 시어머니가 먼저 그런 말을 하긴 쉽지가 않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전세금을 어찌 부모가 다 감당할 수 있으랴.

아무래도 아직까지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개념이 우리 사회에 '콕' 박혀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8년 전에 결혼한 우리 딸은 그 통념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결혼 당시 당장 필요한 살림살이만 장만하고 혼수는 거의 하지 않았다. 또 양가 부모님에게 옷 한 벌 씩만 해드리고 남은 돈을 모두 집 구하는 데 보탰다. 둘이 모은 돈에 융자를 받아 작은 아파트를 마련했고, 그렇게 조금씩 모아 지금은 평수를 넓혀 아파트를 장만했다. 물론 지금보다 그 때는 부동산 가격이 낮아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아들아이가 결혼을 한다고 해도 1억이 넘는 전세금을 해줄 여력이 현재로선 없다. 그렇기에 딸아이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며느리가 들어왔으면 하는 희망을 간절히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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