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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이 숨 쉬는 함양군 옥환마을 계곡

더위는 물론, 역사도 느끼고, 건강도 챙기는 피서지

등록|2009.07.31 10:30 수정|2009.07.31 10:30
기상청 발표에 의하면 장마가 끝났다고 하는데요. 북쪽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한반도 상층에 머물면서 남쪽의 고기압 확장을 차단하는 바람에 한여름의 단골손님인 불볕더위와 열대야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작년 여름에는 전국의 10대 도시에서 밤(오후 6시-다음날 9시까지) 최저 기온이 25도를 유지하는 열대야 현상이 32일이었는데 올해는 11일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복이 남아 있고, 5월이 윤달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무더위는 아직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게 정답일 것입니다. 

▲ 남덕유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 물이 무척 시원한데요. 그 옛날 빨치산들의 생명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역사의 현장에 와있는 기분이었습니다. ⓒ 조종안


여름방학과 더불어 사랑하는 자녀와 휴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민하는 분들이 상당할 것 같은데요. 피서는 물론 다양한 유적과 명승지를 둘러보며 역사의 숨결도 느껴보고, 건강도 챙길 수 있는 경남 함양군 서하면 운곡리 옥환마을 텃골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옥환마을 텃골은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공기가 맑고 산수가 뛰어나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데요. 30-40명도 숙박이 가능한 돌집과 통나무 옥탑 집을 이용할 수 있는 '홍솔산장'이 부근에 있어서 가족이 함께 즐기면서, 알뜰한 휴가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옥고리터(玉環)로 불리던 옥환마을

손아래 동서가 옥환마을 텃골에 일곱 평 정도의 스틸하우스를 짓고 여름이면 친척들이 피서지로 이용하고 있다고 해서 다녀왔는데요. 괘관산(1251m)과 백운산(1278m)이 앞뒤로 버티고 있고, 더덕, 산미나리, 취나물, 두릅, 다래, 우산나물 등 산나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가끔은 산삼이 발견되기도 해서 심마니들이 자주 찾는 산골이라고 합니다.

▲ 계곡 입구에서 바라본 스틸하우스, 스님들이 빨래도 하고 옷감을 염색하는 데 쓰이는 솥이 걸려 있던 말사 터였다고 하더군요. ⓒ 조종안


남덕유산(1507m) 자락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백두대간 중간지점에 자리한 텃골 계곡은 1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해발 600m가 넘는 고랭지이고, 작년에는 3월 중순까지 눈이 쌓여 있었고, 4월에도 계곡에서 얼음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무더위가 시작되는 5월 말이었는데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2분을 버티지 못하겠더군요.

옥환지(池)를 낀 옥환마을은 우리나라 4대 수달서식지로 지정받고 있으며 오소리 너구리 등이 서식하는 청정지역이고, 층층나무와 홍송(紅松) 숲이 장관을 이루고, 돌미나리로 불리는 '산미나리'가 지천으로 깔렸습니다.

텃골 계곡이 있는 경남 함양군 서하면은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황석산, 괘관산, 거망산, 백운산이 주위를 감싸고, 사이사이에 맑은 하천이 흘러 산자수명(山紫水明)하고 인심이 좋은 고장으로 알려졌습니다.

▲ 층층나무 숲에 가린 돌 축대. 정유재란 등 전략적 요충지이자 함양군민들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황석산 성의 일부로 보였습니다. ⓒ 조종안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거연정, 동호정, 군자정, 송강정, 관운정 등은 옛 선비·시인 묵객들의 정취를 느끼게 하며, 운곡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06호로 보호받고 있는데요. 순국선열의 얼이 묻힌 황석산 성과 추모 사당 황암사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전라북도와 이웃하는 괘관산은 6·25때 빨치산 여장군 정순덕이 활약했다는 거망산(1184m)과 함께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백운산의 동쪽 지맥선 상으로 소백산맥의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데요. 함양군의 뒷산으로 불리며 빨치산들이 활동거점으로 이용했던 산이었다고 합니다.

옥고리터(玉環)로 불리어 오던 옥환마을은 고려 말경 분성 배씨가 진주 근처 어느 마을에서 이곳으로 들어왔고 이어서 청주한씨가 충청도에서 이곳으로 옮겨와서 같이 마을을 개척하여 농경 촌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태백산맥'을 떠오르게 했던 울창한 숲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돌 하나를 얹어놓은 무명 묘비가 있다는 동네 사람들 얘기는 마음을 스산하게 했는데요. 숲이 답답할 정도로 우거진 남덕유산 줄기를 보니까, 강대국의 힘으로 남북이 분단되면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빨치산들의 고달팠던 삶과 소설 태백산맥이 떠올랐습니다.

▲ 한국전쟁을 전후해 일어났던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괘관산 숲. ⓒ 조종안


굽이굽이 이어지고 줄기차게 뻗어나가는 산줄기들, 그것은 소백산맥이 일으키고 있는 산물결이고 산파도였다. 덕유산까지의 길은 그 억센 물결과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는 행군이었다. 수많은 산들은 가지가지 초록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고, 북으로 올라갈수록 봄은 더딘 걸음을 걷고 있었다···. (태백산맥 9권 36쪽) 

전북도당 사령부가 있는 남덕유산 송치골에서 열리는 '남반부 6개 도당위원장회의'에 참석하려고, 왜놈들에게 고문을 당해 절룩이는 다리로 험준한 산악을 행군하던 전남 도당위원장 박영발이 나무 그늘에서 염상진과 얘기를 나누다 "참으로 만산에 진달래고, 꽃잎마다 뻐꾹새 피울음이요!"라며 죽은 어머니를 생각하던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배고파 죽은 자식들을 찾아다니는 어머니의 환생이 뻐꾹새 울음'이라는 전설을 알고 있던 염상진이 한탄을 시 읊듯 하는 박 위원장에게 어머니는 일찍 사별하셨느냐는 말도 물어보지 못하고 집에 두고 온 아내 '죽산댁'과 아들 '광조', 딸 '덕순이'를 생각하며 아파하는 마음도 그려졌습니다.

박 위원장이 "염 동지, 나한테도 자식들이 있소. 그 아이들이 진달래꽃을 따 먹게 하는 건 우리 대에서 끝나게 해야 되는 것 아니겠소"라고 묻는 대목과 염상진이 목이 메어오는 것을 느끼며 "예 그래야지요. 꼭 그래야지요!"라고 힘주어 대답하면서, 박 위원장이 자신에게 무슨 이유로 새삼스러운 질문을 했는지, 그 뜻을 깨우치는 대목도 빠뜨릴 수 없었습니다.  

나뭇잎들이 짙다 못해 검정빛일 정도로 숲이 우거졌는데도 제2 제3의 이동통로나 예비거점에 매복이 처져 있고, 토벌대들이 사령부의 비트 지점을 공격해오는 것이 자수자나 포로들의 정보 누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싸워야 했던 전북 도당의 고충도 그려졌습니다.

전북 도당위원장이면서 사령관인 방준표가 이끄는 돌격대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몇 개의 조로 분산되어, 산에서는 보통사람보다 3배가 빠르다는 빨치산의 장점을 살려 이쪽 숲에서 불쑥 나타나 총을 쏴대고는 사라지고, 저쪽 바위 뒤에서 나타나 노래를 부르고 사라지는 전술로 맘껏 화력을 퍼부어대는 토벌대를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삼십 중반을 넘긴 방준표는 작전을 지휘하며 총을 쏘아대며 전투에도 참가해 대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소년전사가 죽자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울었다는 것이 알려져 대원들을 감동시킵니다. 그는 당 이론이 누구보다 강하면서도 연설할 때는 말 씀씀이가 쉬워 존경을 받아오던 인물이었지요.

토벌대에게 쫓기던 박난희가 손승호에게 "과연 당원답네요!"라고 하자,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고서도 '너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던 염상진 선배의 초인적인 인내에 고마움과 존경심을 느끼는 대목과 남쪽으로 끝없이 뻗어나간 산줄기를 바라보며 염상진을 그리워하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울창한 숲에서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소리는 가슴 속까지 파고들었는데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던 민족이 강대국의 횡포로 남북으로 갈라진 가슴 아픈 역사와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희생된 넋들의 피맺힌 원성으로 들리더군요. 그래서인지 계곡물도 더욱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텃골

ⓒ 조종안


덧붙이는 글 옥환마을 텃골 가는 길: 선비의 고장 함양은 자연이 비교적 잘 보존된 곳으로 통영-진주-함양-대전을 잇는 고속도로와 익산-장계 고속도로, 88고속도로와도 연결되며, 서상IC에서 빠져나와 서하면사무소-‘백전’마을 방향 우회전해서 약 6km 지점이 텃골. (국도 26호선, 37호선도 연결됩니다)

'2009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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