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칸트는 그의 산책 시간이 시계처럼 정확했다는 것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고 할 수 있겠다. 사유 깊은 철학자의 심오한 산책의 흉내를 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새벽 4시면 눈이 절로 뜨인다. 그리고 하루도 새벽 산책을 하지 않으면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신경증까지 생긴 것이다.
사실 시간은 인간이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만들어진 시간에 따라 우리의 삶은 늘 반복이다. 반복되지만, 매일 새벽이 되면 삶은 새로운 출발이 시작된다. 그래서일까. 새벽 산책 시간은 가장 신성한 나로 돌아오는 시간 같다. 가만히 생각하면 새벽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자연의 축복같기도 하다.
더구나 대문만 나오면 바다가 보이는 동네에서 산다는 것 청복(淸福)이다 싶다.
나는 아파트 단지의 잘 조성된 산책로를 걷기보다, 벽돌담장이 안내하는 바다로 통하는 골목길이 좋다. 이 골목길은 '삼포(미포. 청사포. 구덕포)'가는 도중에 있다. 이 길은 도로와 떨어져 있다. 아직 기와집이 많고 이즘에만 볼 수 있는 능소화가 흐드러진 사람 사는 냄새가 풋풋한 골목길이다.
새벽은 계절 관계 없이 좋지만, 여름 새벽만큼 신선한 새벽은 없다. 골목길에 낮게 깔리는 은빛 안개도 좋지만 낮은 담장 울타리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능소화, 칸나,해바라기, 붓꽃 등 그리고 딸기 재배 밭에서 만나는 아침 이슬의 영롱함도 좋다.
전설에 의하면 새벽의 여신은 매일 아침 장미 빛 손가락으로 밤의 장막을 접는다고 한다. 그러나 새벽의 여신은 하얀 백합의 손가락을 빌려 밤의 휘장을 접기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스 신화의 새벽의 여신은 새벽마다 '티토노스'의 침대를 살그머니 빠져나와 하늘로 올라가 새벽을 연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의 그림을 살펴보면 새벽의 여신의 모습은 항상 새벽의 이슬을 담는 단지를 들고 있다.
새벽이여 너희들은 우리들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봄 여름철의 새벽이여 !
나타날 봄 새벽이여
무지개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달을 볼 수 있을 만큼
저녁 늦도록 일어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상의 양식> 중 'A. 지드'
우리의 일상적인 삶 또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어제 못한 일을 정리한다. 새벽은 오늘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어제의 시간을 접는 시간이기도 하다. 새벽 산책은 그런 시간의 연장선에서 나에게 오늘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좁다란 골목길을 통과한 길은, 기찻길을 지나 여명이 움트는 바다에 닿는다. 아침 노을 바다가 곱게 물들어 있다. 마치 새벽 여신들이 그린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 지상의 모든 아침의 아름다운 양식들을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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