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 그리고 바다 ⓒ 송유미
해풍은 살랑살랑 불었다. 잠시도 잠들지 못하는 파도는 철썩 철썩 선미의 빰을 후려쳤다. 새하얀 포말이 부서지고 다시 부서지길 반복했다. 간간이 이는 하얀 물보라가 브리지 창에 후두둑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뭉게구름 사이로 태양이 얼굴을 빠끔히 내밀고 있었다. 갑판은 조용했다. 모두 선실로 들어가 버렸는가. 쥐새끼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이 갑판을 돌아 다녔다. 마스트 꼭대기에 날개를 접고 앉은 철새들도 조는 듯 조용했다. 도수철은 줄담배를 피워댔으나 갑갑한 속은 달래지지 않았다. 담배를 끊어야지 하면서도 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또 줄담배를 태워대는 것이다. 브리지 바닥에는 아무렇게나 끈 꽁초가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 바다에는 어군이 없다. 이런 식으로 어군이 제 마음대로 이동한다면 더 이상 고깃배를 탈 수 없는 것이다. 도수철은 바닷속으로 풍덩 뛰어 들어 깊은 용궁속으로 헤엄쳐 들어가서 용왕에게 내 간을 떼어가고 고기 좀 많이 풀어놔달라고 빌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다. 바람은 마술피리 같이 잔잔한 바다에 파도를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일기예보대로 폭풍이 올 것인가. 폭풍전야 같이 조용했던 바다가 허옇게 눈을 까뒤집기 시작했다. 그래, 기다리고 기다리던 절호의 기회가 이제야 또 다가 오는가… 도수철은 가슴 속에서 쿵쿵 빨래 방망이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큰 마음을 먹고 나니 이제 무궁화호도 겁 안났다. 북한 경비정도 겁이 안 났다. 이판사판이다, 뭐 죽기 아니면 살기밖에 더 하겠나? 아니다. 그래도 그렇지 않다. 무궁화호에게 걸리면 적어도 삼 개월 동안 출항 금지에 면허 취소가 된다. 거기다 벌금 4-5 천은 물어야 할 것이다. 자칫 북한 경비정에게 나포되면 영영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 모른다. 아니다. 나포돼도 몇 개월 잡아 두었다가 골치 아파서라도 그냥 남한 측에 넘길 것이다... 아니다...북한 경비정에 끌려가서 풀려나온 동료 말로는 말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혈혈단신 나는 상관이 없다. 그래 뭐... 뱃놈이 고기 잡겠다는 데 그게 무슨 큰 죄인가…
▲ 바다 ⓒ 송유미
▲ 바다 ⓒ 송유미
"도선장 나오라 오바 ! 도선장 ! 나오라 오바 !" 무선 통신기에서 흘러나온 맹 석출 선장의 목소리가 길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수철은 맹석출의 교신을 묵살했다. 괜히 폰을 잡았다가는, 인천 항 티켓 다방 아가씨들 돈이면 거지 앞에서도 옷 벗는다, 우리 영숙이는 그치들과 다르다……등등 헛소리를 늘어놓을 게 뻔해서다. 사실 맹 석출 선장은 인천항 뿐만 아니라 부산항 목포항 등 전국 곳곳에서 가장 실적 높은 어획고를 자랑하는 능력 있는 선장이다. 그러면서도 어부들의 수당을 슬쩍 빼돌려 얻는 부수입도 여느 선장보다 월등했다. 뿐만 아니다. 사생활도 숨기는 것이 없어서 좁은 인천항에서 맹 석출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 듣는다. 그래서일까. 상대에게도 사생활 보호 따위의 개념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목욕탕에함께 들어왔으니 뭐 가릴 거 있냐는 식이다. 그래서 더러 민망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도수철은 일말 같은 남자로서 맹 석출을 동정치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제 마누라와 피 한방울 한 섞인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복수의 제물로 삼는 짓거리에 분노치 않을 수 없었다. 그 제물의 리스트에 영숙이 올라 있는 것이다. 도수철은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심정이었다. '안된다. 하늘이 둘로 쪼개져도, 절대 그녀가 맹선장 제물이 되면 안된다...' <계속>
▲ 바다 ⓒ 송유미
덧붙이는 글
월간, '법연원'에도 송고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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