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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90세 할머니들, 목사님께 한턱 쏘다

등록|2009.08.01 11:36 수정|2009.08.01 21:52
"목사님, 오늘은 내가 한 턱 쏘겠습니다."

꼭 이렇게 표현한 것은 아닙니다. 할머니들이 쏘겠다는 말을 아실 턱이 없습니다. 몇 년 전 어느 모임에서 한 친구가 한 턱 쏘겠다는 말의 뜻을 몰라 저도 의아해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8,90 드신 할머니들이야 오죽하시겠습니까?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목사님, 사모님이 늘 우리 땜에 애쓰시는데 오늘은 뷔페에 가서 제가 점심을 사겠습니다."

지난 수요일(7월 29일) 낮 노년부 예배가 끝난 뒤의 일입니다. 매주 수요일 우린 할머니들과 함께 노년부 낮 예배 끝나고 교회 사택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합니다. 공동식사라는 이름으로 매번 치르는 일상사입니다만 할머니들은 그 때마다 한 마디씩 하십니다.

"점심 식사는 안 해도 되는데…."

하지만 저는 이 표현이 점심 식사 함께 해서 너무나 좋다는 말임을 잘 압니다. 진수성찬이어서가 아닙니다. 몇 가지 반찬을 정성껏 마련하고 또 따뜻한 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아마 함께 하는 공동식사여서 더 맛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대해서 또 세상살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하는 이 식사 시간이 늘 기다려진다고들 하십니다.

지난 수요일은 사택 대청소가 끝나지 않아 집안이 어수선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눈치 챈 김종말 집사님(할머니)이 뷔페에서 점심을 사겠다고 제안하신 것입니다. 김 집사님은 우리 노년부 총무를 맡고 있는 분입니다. 사리 판단이 분명하고 빨라 일을 잘 처리하는 솜씨에 모두들 총무 정말 잘 뽑았다고 상찬(賞讚)을 합니다. 사실 사택 대청소 중 경황이 없는 분위기에서 식사를 준비하자면 신경이 더 많이 쓰였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눈치 채고 점심을 사겠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그러자 전순남 집사님이 또 가만히 있질 못하십니다.

"아니, 총무님은 지난 번에 샀으니까 오늘은 내가 사면 안 될까?"

점심을 서로 사겠다고 옥신각신하다가 두 분이 공동 부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제 승용차에 열 명이 타고 부곡동 뷔페식당으로 출발합니다.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7인용 승용차에 3 명이 더 탔으니 오죽하겠습니까. 뷔페식당에 도착하니 정각 12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이용하는 손님들로 초만원이었습니다. 우린 좀 기다렸다가 상 하나를 확보하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택에서 공동 식사하실 때는 아끼시느라 소식(小食)을 하시는 할머니들이 이곳 뷔페식당에 와서는 과하다싶을 정도로 많은 양을 상에다 가져다 놓습니다.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노인분들이 갑자기 많이 드시면 탈이 나기 쉽기 때문입니다. 염려하는 나의 말에 괜찮다며 한 마디 덧붙입니다.

"목사님, 이런 곳에 와서 맘껏 먹어보지 우리가 언제 배부르게 먹어보겠습니까?"

집에서도 그렇고 또 교회에서 공동식사할 때도 체면 차리시느라 맘껏 안 드신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할머니들의 사고(思考)는 옛날 보리고개 넘던 시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배고픔을 참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살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게 된 오늘에도 그들의 절약정신과 배고픔을 인내하는 마음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사택에서 하는 공동 식사도 저런 마음으로 하셨구나!'

속으로 이런 생각에 마음이 미치니 갑자기 미안함이 밀려왔습니다. 아내와 저는 할머니들과 하는 공동 식사 때마다 사소한 것으로 마찰을 빚습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아내는 할머니들의 마음을 잘 읽고 식사를 자꾸 권하는 타입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닙니다. 알아서 양껏 스스로 드시게 하는 것이 옳다고 늘 주장합니다. 살기가 나아진 오늘날, 옛날처럼 자꾸 더 드시라고 권하는 것도 에티켓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오늘 뷔페식당 나들이는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판정해주는 자리였습니다.

식사 끝나고 고기를 먹었으니 커피를 한 잔 씩들 해야 한다며 잔을 돌렸습니다. 식사 값도 그렇게 비싸지 않습니다. 지금은 농촌에서도 농삿일을 하고 집에서 점심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또 경제적으로 더 유익하다고 합니다. 지난 수요일 뷔페식당에도 농삿일 하는 단체 손님으로 대만원이었습니다.

식당 주인은 바쁜 와중에도 연세 드신 할머니들을 잘 챙기십니다. 그가 차를 타는 할머니들을 도우며 한 마디 던집니다.

"정오를 피해 30분만 늦게 오시면 마음 놓고 식사를 하실 수 있어요. 정오가 제일 번잡할 때입니다."

소도시 인정은 그래도 옛날 것이 조금은 남아 있습니다. 장유유서(長幼有序)의 덕목이 아직도 잔존해 있습니다. 뷔페는 서양식 식탁 이름입니다. 거기에 동양의 덕목을 대입시키니 자연스럽지 못함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한편 동서양의 식탁문화가 80,90세 할머니들에 의해 조화된다고 생각하니 웃움이 나왔습니다. 뷔페의 할머니들 점심 식사, 여러 모로 포만감을 만끽한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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