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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 충의정신 현장을 가다

민족 기상 드높인 숭고한 정신 기려…충남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지 탐방

등록|2009.08.01 11:42 수정|2009.08.01 11:42
의인은 공익을 위해 헌신한 사람을 일컫는다. 이에 따라 의사는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일신을 희생하여 나라를 구한 사람을 지칭한다.

일제강점기, 윤봉길 의사는 25세 때인 1932년 4월29일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제의 전승기념 축하식장을 폭파하는 거사를 성공시켜 민족 해방 의지와 기상을 드높였다.

이로 인해 윤 의사는 그해 5월25일 사형선고를 받아 12월19일 일제에 의해 총살형으로 순국했다.

윤봉길 의사 사적지를 둘러보는 것도 의미 있을 터. 충남 예산에 있는 윤봉길 의사 사적지를 찾았다. 그의 숭고한 정신을 조금이나마 돌아 볼 수 있는 계기였다. 이에 사진으로 소개한다.

▲ 윤봉길 의사와 선서문. ⓒ 임현철


▲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충남 예산의 윤봉길 의사 사당. ⓒ 임현철


▲ 윤봉길 의사 사당 입구. ⓒ 임현철


▲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 전시된 폭탄 투하 장면. ⓒ 임현철


이 거사의 성공으로 일본 이카와바다 상해 거류 일본인 민단장과 시라카와 사령관이 죽고 수뇌급 수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윤 의사는 대한 독립 의지와 대한의 기상을 세계에 떨쳤다.

▲ 1932년 4월 49일 폭탄 투하 후 즉시 체포되어 일제에 의해 끌려가는 윤봉길 의사. ⓒ 임현철


그해 사형 선고를 받고, 12월 19일 금택형무소 교외 삼소우 공병작업장에서 총살형으로 25세의 나이에 순국하셨다.

▲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는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과 기념 사진을 찍을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 임현철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는 유물 56전이 전시되고 있으며, 25세의 짧은 생애를 알리는 충의정신 학습장이 되고 있다.

▲ 윤봉길 의사의 뜻을 이어 가고 있는 고향 후학들. ⓒ 임현철


▲ 윤봉길 의사 사당에 떨어진 무궁화. 무궁화가 가장 어울리는 장소 중 하나라는 생각이다. ⓒ 임현철


▲ 상해 임시 정부와 윤봉길 의사가 준비한 도시락 폭탄과 물통 폭탄. ⓒ 임현철


"물통형 폭탄은 의거에 사용되었고, 도시락 모형 폭탄은 자결용으로 준비 되었다"고 한다.

▲ 윤봉길 의사가 자란 저한당. ⓒ 임현철


이곳은 윤 의사가 1930년 망명길에 오르기까지 야학 등 농촌부흥운동과 민족운동을 펼치던 독립운동의 터전이었다.
덧붙이는 글 다음과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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