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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훈련이 필요한 아이들

등록|2009.08.01 12:46 수정|2009.08.01 12:46
 작년  초 선생님들과 함께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다녀왔다.  일정 중 캄보디아  씨엡림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하는 계획이 있었다.

    초등학교가 호수 가운데 있어, 배에 올랐는데, 배가 출발하자마자 어디에선가 몽키 바나나라고 불리우는 작은 바나나 뭉치를 팔기 위해 현지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개 여자들이 어린 아이들과 함께 장사에 나섰다.

    조그마한 배를 어머니가 노 저으면 너댓살 되는 아이들이 바나나를 바구니에 담고 '플리즈, 원달러'를 외치며 호객행위를 했다. 워낙 장사하는 이들이 많으니 경쟁도 치열했는데, 그러다 보니 눈에 띄려는 갖가지 전략이 난무했다.

    그 중 한 아이가 인상 깊었다. 굵은 뱀을 목에 휘감고 겁도 없이 바나나를 파는 아이의 눈은 호수 빛에 반사되어 더 이글거렸다. 하나라도 어떻게 팔아야한다는 그 일념을 보는 순간 우리는 바나나를 사지 않고는 못 베겼다. 어느 아이는 배 대신 밑이 넓은 양동이를 혼자서 타고 다니며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생의 준엄한 현장에서 캄보디아 아이들은 스스로 밥벌이를 하면서 그 누구보다 단단하게 훈련되고 있었다. 울 새도, 절망할 새도 없는 아이들, 바나나를 판다는 그 목표에 푹 빠진 아이들은 겉돌지 않고 집중력을 발휘했다. 저 아이들이 도대체 살면서 무엇이 무서울까...두렵다고, 실패할 것 같다고 과연 물러서겠는가..배 위에서 한참을 아이들을 바라보았었다.

    해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면 성적이 고민인 아이들이 찾아온다. 대학입시에 내신이 중요한데, 시험을 망쳤다며 울상으로 상담을 요청한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대개 비슷하다. 이 성적으로 내신을 관리하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 것 같으니, 당장에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치루고 대입을 막 바로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학교를 다니며 온갖 교육과정상의 활동을 하는 그 시간 대신,  학교 밖에서  공부를 하면 훨씬 시간을 아끼며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술적으로 그렇게 기가 막힌 논리를 아이들은 똑 소리 나게  전개한다. 도저히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살면서 단 한번의 실패도 없이 살아본 아이들은 조그마한 난관에 봉착하기만 해도 뚫고 나가려는 것보다, 돌아서서 다른 방법을 찾는 데 익숙해져 버려 있다.

    길지는 않지만, 학교에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실패할 기회를 많이 주어야한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한다. 교양 있는 부모님과 격식 있는 선생님, 그리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이끌어주시는 많은 분들 틈에서 아이들은 너무도 세련되다.

    계획을 세우는 것도, 실천을 하는 모든 활동도 책상에 앉아 조신하게 진행하는 법만 열심일 때가 있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는 현실을 마주할 때, 혹여나 치열한 부딪힘을 상실하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워질 때가 있다.

    '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고, 밑바닥에 내려가더라도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대신, 나는 대단하므로 내가 생각하는 그 이하의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결국  실패자다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강으로 거침없이 질주하는 빗줄기를 보면서, 이 여름, 우리 아이들도 캄보디아 그 꼬마들의 열정을 닮아 좀 더 단단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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