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귀도 노을 속에서 "나 떨고있니?"
해파에 시달려온 섬, 붉은 노을만이 위로하네
▲ 노을차귀도 너머로 해가 지고있다. ⓒ 장태욱
지리했던 장마도 한풀 꺾여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위세를 떨칠 태세다. 심신에 눅눅하게 쌓인 장마의 흔적들을 지우려면 환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필요하다. 모처럼 동행이 생겨 고산 자구내포구로 향했다. 차귀도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다.
차귀도의 옛 이름은 죽도였다. 근래에 차귀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 일대에 있었던 차귀당, 차귀오름, 차귀진 등의 이름에서 영향을 받은 탓이다.
▲ 자구내포구차귀도로 가려면 자구내포구에서 배를 타야한다. ⓒ 장태욱
'차귀'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그중 하나는 사귀(邪鬼, 뱀신)가 현지인들에 의해 잘못 발음되어 차귀(遮歸)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차귀당에서 뱀에 제사를 지내는 것에 근거한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중국의 지관이었던 호종단에 관한 일화에서 유래한다. 제주도에서 천하를 호령할 영웅이 출연할 것을 염려했던 중국황제는 영웅출현을 막기 위해 호종단을 제주도로 보냈다. 호종단은 황제의 명을 받고 영웅이 나타나지 못하게 제주의 지맥을 모두 끊었다. 그리고 그를 태우고 중국으로 돌아가는 배가 고산리 앞바다를 지날 무렵, 날쌘 매 한 마리가 날아와 큰 돌풍을 일으켰다. 이 매는 한라산 신령이 변한 것이라고도 하고 5백 장군 중 하나가 변한 것이라고도 하는데, 그 돌풍에 의해 호종단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고 한다. '차귀(遮歸)'라는 이름은 호종단의 귀국을 막은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 출발배는 지를 해를 바라보며 차귀도를 향해 떠났다. ⓒ 장태욱
차귀도는 눈섬, 대섬, 지실이섬 등 세 개의 섬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자구내포구에서 봤을 때, 가장 가까이 보이는 섬이 눈섬(누운섬, 臥島)이다. 섬이 엄마가 아기를 자신의 배위에 올려놓고 누워있는 형상을 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대섬(竹島)은 차귀도에서 가운데 자리 잡은 섬인데 크기 또한 세 개 섬 중 가장 크다. 머리에 털이 없을 때 대머리라 부르는 것처럼 대섬은 섬에 나무가 자라지 않을 때 종종 붙는 이름이다. 대섬의 동남쪽에 자리 잡은 바위섬이 지실이섬이다. 지실이섬은 가장 바깥쪽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파도의 침식도 가장 심하게 받는다.
과거 80년대 중반까지는 차귀도에 서너 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모두 떠나고 섬은 무인도로 남아 있다. 다만 죽도에 사람이 거주했던 집 자리 등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최근까지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제주도에 속한 무인도 가운데서는 차귀도의 면적이 가장 크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만큼 너울의 규모도 제법 큰 날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구내포구에서 현지 주민이 운행하는 어선에 올랐다. 배 이름이 '창명호'다.
▲ 눈섬의 뒷편뒤편에서 바라본 눈섬의 모습이다. 파도에 풍화되어 암벽이 심하게 노출되었다. ⓒ 장태욱
포구와 눈섬 사이의 길목을 '족은도'라고 한다. 자구내포구를 떠난 배가 족은도를 지나자 너울이 심하게 밀려왔다. 섬의 바깥쪽은 바람과 파도를 막아줄 의지가 없기 때문에 너울 위에서 작은 목선은 마치 낙엽처럼 흔들거렸다. 파도가 선수에 부딪쳐서 부서질 때 생긴 물보라가 선미에 까지 날아왔다.
배가 좌우로 요동치고, 물방울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날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몰려왔다. 불안한 생각에 선장님 얼굴을 쳐다봤는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키를 잡고 배를 조정하고 있었다. 선장님의 덤덤한 표정에서 바다의 상태가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위안을 받았다.
자구내포구 안에서 바라본 눈섬은 가운데가 둥글고 볼록하게 올라와서 마치 사람이 누운 것처럼 보이지만, 뒤편의 모습은 이와 사뭇 달랐다. 파도에 노출되어 풍화를 심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바깥 해역에서 바라본 섬의 모양은 마치 중생대 화석에서나 발견됨직한 파충류의 형상이다. 남서쪽에 둥근 마디는 마치 머리와 닮았다면, 가운데 뾰족한 마디는 마치 공룡의 등과 닮았다. 그리고 가장 북쪽 마디는 능선이 길고 완만하여 꼬리를 연상하게 했다.
파도와 해풍에 노출된 붉은색 스코리아 지층 위를 파란 풀이 덮고 있고, 섬의 바깥쪽 벽에는 하얗게 소금이 붙어있다. 섬 자체의 다채로운 색채가 바닷물과 더불어 선명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다.
▲ 대섬 대섬 위에 등대가 보인다. 바깥에서 바라본 모양이 날개를 편 새를 닮기도 했고, 물속을 유영하는 가오리를 닮기도 했다. ⓒ 장태욱
눈섬과 대섬의 사이 뱃길을 한도라고 하는데, 이는 족은도에 비해 길이 넓다는 뜻이다. 한도 앞에는 밖에서 들어오는 어선이 뱃길을 식별할 수 있도록 불빛을 발하는 노란 부표가 세워져 있다. 부표의 흔들림에서도 너울의 규모를 실감할 수 있었다.
죽도는 응회암층이 남북으로 길고 완만하게 뻗어 있는데, 당산봉에서 바라본 모습은 아령 모양으로 양쪽이 볼록하게 부풀어 있다. 하지만 파도에 의해 풍화를 심하게 받은 바깥쪽 응회암층이 깎아지르듯 절벽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가로줄무늬가 선명하게 보이는 절벽의 하단에는 해식동굴들이 있어서 오랜 세월 이 섬이 파도에 시달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죽도의 두 봉우리 중 남쪽 꼭대기에 하얀 등대가 세워져 있다. 차귀도에 남아있는 건축물 가운데 현재 사용되는 유일한 시설이다. 이 섬에 상륙한 관광객들에게는 관광명소로 통한다. 죽도는 등대의 아래에서 섬은 서쪽 바다로 거북의 머리처럼 잘룩하게 돌출되어 있어서, 등대의 서쪽 바다에서 바라본 모습이 날개를 펼친 새를 닮기도 했고, 물속을 유용하는 가오리를 닮기도 했다.
▲ 대섬 남쪽대섬 남쪽에 솟아오른 바위가 장군바위다. ⓒ 장태욱
죽도의 가장 남쪽에는 갯바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낚시꾼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이곳에 남성의 성기처럼 위로 솟아올라 눈길을 끄는 바위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장군바위라고 한다.
바위의 이름이 장군바위인 것은 호종단의 설화나 한라산 영실에 있는 오백장군동과 연관이 있다. 호종단의 귀국을 막은 매가 한라산 오백장군 중 하나가 변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고, 오백장군 중 형들에게 실망한 막내가 차귀도로 내려와서 살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주민들이 예사로이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 지실이섬의 매바위지실이섬은 서쪽 가장 남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편서풍과 쿠로시오해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그간 풍화에 심하게 노출되었다는 것을 한눈에 실감할 수 있다. ⓒ 장태욱
차귀도에서 가장 작은 섬은 죽도의 남쪽에 있는 지실이섬이다. 차귀도가 제주도의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고, 지실이섬은 그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다. 쿠로시오해류와 편서풍이 불어오는 방향이 남서쪽임을 감안하면, 그간 이 섬이 받았던 세파의 정도를 짐작할 만하다.
지실이섬 모양은 북쪽에서 조금 솟아오르다가 금격하게 주저앉은 모양이다. 남쪽 해안은 절벽이 서 있는 각도가 90도를 넘을 지경이다. 거칠게 패이고 깎인 탓에 절벽은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괴물이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 괴물 아가리처럼 생긴 바위를 사람들은 매바위라 부르는데, 이 역시 호종단의 설화에 나오는 매를 연상해서 지은 것이다.
제주섬을 유린했던 외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이정도의 위용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에서 지어진 이름일 것이다. 어쩌면 파도로부터 자구내포구를 지키온 지실이섬에게서 한라산 수호신의 정기를 느껴왔는지도 모른다.
▲ 수월봉바다에 나가니 수월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 장태욱
매바위를 돌고난 배가 자구내포구로 돌아간다. 긴장한 탓에 보이지 않았던 당산봉과 수월봉 전체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차귀도 너머 구름사이로 해가 지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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