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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문화공원에서 보낸 한 여름 밤

등록|2009.08.04 10:36 수정|2009.08.04 15:21
장인 어른은 일흔 중반의 연세에 시인으로 등단하셨습니다. 또 바로 이어 <반석 위의 백합화>라는 시집까지 한 권 상재(上梓)했습니다. 지금도 시간 날 때마다 생각을 가다듬어 시심(詩心)을 모으십니다. 장인 어른을 뵐 때마다 참으로 예술적인 분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다니러 오신 그 짬에도 습작품을 저에게 보여주시며 좀 다듬어 달라십니다. 잘 연단된 시인의 저력이 보입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밤 시간에 직지문화공원을 갈 엄두를 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문화'라는 단어가 이름에 포함된 것은 공원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공원에는 유명한 한국 시인들의 대표시가 음각된 시비(詩碑)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 세계 여러 나라 작가들의 조각품들도 요소요소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건물들도 모두 '문화'라는 특수 개념을 염두에 두고 건축되었습니다. 야외공연장이 그렇고 또 유수교(流水橋) 등으로 이름 붙인 돌다리도 예술적입니다. 화장실은 어떻구요. 우리의 전통 모자 '갓'의 모양을 취한 화장실이 아래에, 위쪽에는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모양이 쌍을 이루어 장식된 화장실이 작품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썩 흥미가 가는 구조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인이신 장인 어른이 시간을 즐기시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입니다. 밤 8시가 넘었는데도 갈 것을 제가 자청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중소도시에 속하는 우리 김천에 예술성이 짙게 배어 있는 문화공원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세계도자기 전시관과 작년 건립된 백수문학관이 공원의 위상을 더 높여주고 있습니다. 삶의 질이 꼭 경제적인 데만 있지 않다는 것, 개명된 나라일수록 정신을 살찌우는 예술과 문화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우리 김천의 이름이 특별하게 각인됩니다.

직지문화공원의 구조도 좀 바뀐 것 같습니다. 인공폭포 밑 물받이 수장고(水藏庫)로는 공원의 못으로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는 새에 제법 규모를 갖춘 연못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밤이라 확인할 길이 없어서 아쉬웠습니다만 아마 민물고기들이 자기들 세상을 만끽하며 노닐고 있을 것입니다.

마침 음악에 맞추어 진행되는 분수 쇼가 한창이었습니다. 무지개 색이니까 일곱 가지 색이 음률에 맞추어 솟아오르는 분수를 수놓는 것이겠지요? 번갈아 다른 색으로 갈아입는 물줄기들을 보고 있노라니 형형색색 모습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색깔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좀 아쉬운 것은 흘러나오는 음악은 제목이 있을 것이고 또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노래일 텐데 저는 음감(音感)을 전혀 잡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분수 쇼의 1막이 끝났습니다. 주위를 둥글게 점하고 있던 관중들의 박수 소리가 황악산의 밤을 잔잔하게 물들게 했습니다. 나는 그때에야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여름 밤을 이곳에서 즐기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연령도 다양합니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70,80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취향도 다를 것이고 삶을 살아가는 양태도, 또 인생관에도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여름 밤, 선율에 젖어 의미로운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은 한결 같을 것입니다.

송창식의 '왜 불러'가 아래쪽에서 은은하게 들려왔습니다. 70,80년대 한창 유행하던 노래입니다. 나는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생김새가 같고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인데 좋아하는 노래는 다 다른 것이요. 저는 솔직히 말해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랩 등의 노래는 노래같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노래는 다른 예술 장르와 마찬가지로 음미함으로 인간 정서를 순화시키는 기능을 하면 좋으련만, 요즘의 템포 빠른 노래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 오히려 스트레스만 받게 됩니다.

대신 옛날 노래가 쉽게 다가옵니다. 60,70년대 인기 있었던 대중가요를 듣고 있노라면 구구절절이 저를 두고 하는 노랫말 같아 마음이 일렁일 때가 있습니다. 어니언스의 '편지'가 그렇고 박상규의 '조약돌', 이장희의 '한 잔의 추억' 등은 정녕 추억의 노래로 마음 속에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다섯 명의 악단이 '갓 화장실' 앞에 무대를 설치했습니다. 무대라고 하지만 맨 땅에 마이크 시설을 한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도 유명 악단 못지 않는 친근함이 우러나왔습니다.

저는 일부러 무대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악단 구성원들의 면면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한 명의 여성을 가운데 하고 네 명의 남성들이 두 명씩 그 여성의 좌우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목소리가 아주 청아하면서도 힘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노래하는 여성을 섬세하게 보았습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깔끔한 정장 차림, 굽 낮은 고동색 구두와 무릎까지 오는 구식 치마가 고전미를 자아냈습니다. 전문적인 가수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여느 대중 가수 못지 않게 탁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수 쇼 때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관중들이 듬성듬성 무대 주위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저부터도 그들의 노래에 별 호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눈치 챈 노래패들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시대를 더 끌어올렸습니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부른 '섬마을 선생님'을 불렀습니다. 따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일부는 손뼉까지 치며 따라했고 저 뒤쪽에서는 춤까지 둥실둥실 추며 노래를 뒷바침하는 중년 남성도 보였습니다. 이런 뽕짝을 들을 때마다 사람의 심금을 어떻게 저렇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고 신기해 합니다.

달포 전 한 지인(知人)으로부터 직지문화공원에서 자원 노래공연으로 모금한 돈으로 불우이웃을 돕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혹 이들이 그 주인공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소리도 행동도 아니 생각까지도 아름다운 법입니다. 나는 이들이 기쁘게 노래하고 아름다운 생활로 주위에 힘을 주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다는 사념(思念)에 젖습니다. 이들은 매주 월요일 이 공원을 찾아 공연의 장을 펼친다고 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 밤에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곳을 찾을 것 같습니다.

편리한 생활, 사람이면 누구나 바라는 사회상(社會像)일 것입니다. 그리고 너나없이 이런 생활을 위해 몸을 불태웁니다. 그러나 정녕 편리가 행복과 직결됩니까? 저는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편리함은 기계의 힘을 빌릴 때 가능한 일입니다. 기계는 사람의 인성(仁性)을 말살시키는 도구입니다. 불편함이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만들 때가 많습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의 움직임 속에는 겸손과 이해 그리고 박애와 평화의 마음이 녹아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좀 불편하더라도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한 여름 밤, 직지문화공원을 다녀와서 제가 느낀 결론이 이것입니다. 거기서 만난 이름 모를 사람들 그리고 찾는 이들을 위해 노래를 선사한 아마추어 악단과 가수들. 저는 이런 사람들이 우리 생활의 주연 나아가 역사의 주인공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시인이 되신 장인 어른과 공원을 다녀와서 느낀 소회(所懷)가 이것입니다. 여름은 더워야 제격일텐데, 요즘 아침 저녁으론 초가을 날씨를  연상케 하는 기상(氣象)이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옭아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건승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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