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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 논란', 너무 인색하게 굴지 말자

사회는 '핏줄'보다 뜨겁고, 사람은 '인종'보다 아름답다

등록|2009.08.04 17:04 수정|2009.08.04 17:30

▲ 이참 한국관광공사 신임 사장 ⓒ 마이데일리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3일 취임식을 갖고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외국에서 귀화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고위 공직에 올랐으니, 이참 사장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논란을 보면서 실망스런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관광공사 사장으로서 그의 전문성과 능력, 지도력 여부 보다는 출신배경이나 종교적 역정, 정치적 이력 따위가 논의의 중심이 되고 있다. 몹시 불편한 표현과 근거들도 등장하고 있다.

외국인 출신?

첫 번째 논쟁 지점은 그의 '출생지'와 '피부색'에 관한 것이었다. 어떤 언론은 '외국인 출신'이라고 표현했다. 무의식적인 차별의식과 '국적은 한국일지 몰라도 정신은 외국인일 것'이라는 편견이 담겨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솔직히 촌스럽고 한편으론 걱정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외국인 출신'이라는 표현을 보며 떠오른 것은 몇 해 전 어떤 한국계 미국인이 총기난사사건을 일으켰을 때 마치 한국이라는 나라가 미국에 대역죄라도 저지른 양 호들갑 떨던 모습이다. 미국 국적의 교포 3세가 미국 고위공직에 올라도 대한민국 국익을 선양한 듯 지나치게 대서특필하는 주류 언론의 씁쓸한 관행도 마찬가지다.

'핏줄'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자칫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민족'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공동체인 '사회'이며, 외국계든 한국계든 사회적 공동체 안에 사는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핏줄' 따지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회는 '핏줄'보다 뜨겁고, 사람은 '인종'보다 아름답다.

'외국인 출신'보다는 '외국계 한국인'이라는 표현이 적절했다. 미국에 한국계 '미국인'이 살듯이 이참씨는 한국에 사는 독일계 '한국인'일 뿐이다. 외국계라 하여 특별대우 할 이유는 없지만, 차별하거나 출신배경에 근거해서 의심해서도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선천적인 이유로 개인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한국계 한국인'인 우리가 '독일계 한국인'인 그보다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의 아름다움에 대해 더 많이 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독일의 어느 도시이며 피부색이 한국계 한국인들과 다르지만, 이런 다른 배경 때문에 우리가 정작 보지 못하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더 잘 볼 수도 있다고 본다.

이참, 일단 관광철학은 괜찮다

이참씨는 방송활동뿐 아니라, 대학강사, 기업체 대표 등 다방면에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해왔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한국방문의 해 추진위원'이기도 했고, 최근에는 관광 발전과 한식 세계화 등에 대한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일관된 사랑을 보여주었다. 정치인이나 관료, 방송사 사장 등 역대 관광공사 사장을 지내 인사들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그는 사장에 내정된 뒤 기자 간담회에서 "유럽의 고궁, 성당을 보고 위축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의 고궁은 또 다른 매력 포인트가 있다"면서 "예를 들어 유럽이나 중국과는 달리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궁의 담은 사회 지배층이 무력이 아닌 철학으로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이라는 점들을 스토리텔링으로 활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우리 스스로 위축되었던 다른 나라의 웅장한 규모의 궁궐과 우리 고궁의 아담함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고 참신한 접근이다. 건물의 규모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철학과 스토리텔링이 더 중요한 관광자원이라는 그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우리의 개고기 문화에 대한 그의 생각도 나로서는 반갑다.

"말고기를 먹는 프랑스 사람을 비난하는 말은 거의 못 들어봤다. 프랑스 문화는 고급문화라는 인식 때문이다. 개고기를 먹는 한국 사람도 애견은 먹지 않는다. 관건은 한국 문화를 고급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뭘 먹든 시비 걸 사람이 없어질 것이다."

제대로 된 시각이고 올바른 해법이다.

특히 "관광은 평화운동"이며 "관광공사가 북한의 관광을 홍보할 수도 있다"는 남북교류에 관한 그의 발언들은 이 정부의 인사들 그 누구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평화 지향적이고 진취적이다. 분단된 독일의 통일을 경험한 그의 개방된 세계관이 민족공동체인 북한에 대해서도 열려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진보세력, 왜 이렇게 인색하게 굴까

분명 한국 사회는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다. 이참씨의 관광공사 사장 취임은 그런 흐름의 자연스러운 반영이며, 우리 사회가 언젠가 겪게 될 일이 현실화된 것이기도 하다.

우리사회에서 소수자로 살고 있는 외국계 한국인들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대접받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은 진일보다. 그런 의미에서 이참 관광공사 사장 임명은 이명박 정부가 '참 오랜만에 한 훌륭한 인사였다'고 박수쳐 주고 싶다. 나는 오히려 지난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 인사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일부 보수언론의 터무니없는 비판도 어처구니없지만, 진보세력이 이참 사장 임명에 대해 인색하게 굴거나 애써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솔직히 실망스럽고 안타깝다. 외국계 한국인이나 다문화 가정, 새터민(탈북자) 등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나 사회적 소수자의 공직 진출은 보수정권이 아니라 진보정당들이 앞장서 길을 터줘야 할 일들이지 않은가. 중요한 진보적 가치가 아닌가. 단지 이명박 정부가 임명했다는 이유만으로 궁색하거나 쩨쩨하게 굴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이참씨처럼 귀화한 사람들이 많다. 국제결혼을 하거나 취업, 유학 등을 왔다가 한국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배경은 다르지만 북한에서 온 새터민들 또한 '다른 사회'에서 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 '한국계 한국인'의 자녀들은 앞으로 그들의 자녀들과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 이들 모두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외국계 한국인'에 대해 이제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 사회는 '한국계 한국인' 사이에도 소득과 학력, 지역에 따른 차별이 여전하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이 쉬이 구분되지도 않는 사회다. 여기에 인종과 이민자 문제가 결합되면 이주노동자들이 그랬듯 앞으로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차별의 확대재생산'은 사회공동체를 파괴하는 출발이다.

과녁을 잘못 잡은 비판들

그의 정치적 행적을 놓고서 설왕설래가 있는데, 이를테면 '노무현 지지'를 하다가 '이명박 지지'를 했다는 얘기다. 그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이라면 모를까, 유권자의 입장에서 나름의 이유로 누군가를 지지했던 사람에게 정치노선을 따지는 것은 난센스다. 관광공사 사장에게 따져야 할 것은 이념과 노선이 아니라, 사장으로서 경영능력과 비전이다.

차라리 정실인사에 관한 비판이라면 의미가 있다. 그는 지금 기독교로 개종해 이명박 대통령이 다니던 소망교회를 다닌다고 한다. 공직 취임에 대통령과 같은 교회출신이라는 개인적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면 분명 문제다. 그러나 이참씨의 해명이나 경력을 보면 지난 해 '고소영 내각' 파동을 일으켰던 그들과 동급으로 취급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지난 정부에서도 그랬지만 '코드 인사' 논란은 어이없는 일이다. 물론 언론사나 검찰, 국세청 등 직무의 공정성과 중립성이 특별히 강조되는 자리에 대통령 측근을 갖다 앉히는 것은 비민주적이고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자리가 아니라면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과 철학이 같은 사람을 공직에 앉히는 게 정상이며, 전혀 다른 철학을 가진 사람을 중용하면 그게 비정상이다. 물론, 기본적인 전문성과 능력, 공적 도덕성이 갖춰져 있어야 하지만.

과거 통일교도였다는 그의 이력을 크게 뽑아 선정적인 제목을 다는 언론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그가 관광공사를 어디에 봉헌하겠다고 하지 않는 한 공직과 종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다. 이슬람이면 어떻고, 힌두교면 또 어떻단 말인가?

이 대통령의 최근 잘못된 인사를 희석하기 위한 '나쁜 의도'에서 물타기 했다는 비판도 있다. 비판의 과녁을 잘못 잡았다. 그 자리에 적합한 전문성과 능력, 지도력, 공적 도덕성이 있느냐를 따져야지 '의도가 좋은지 나쁜지'를 따질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 정권에게 엉뚱한 인사를 하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이참 같은 인사'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문화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이참 사장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자신의 역량과 노력에 달려 있다. 앞으로의 일들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에 쉽게 예단할 수는 없다. 완벽한 기준과 경력을 갖췄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어이없이 무너지는 것도 보아왔고,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인물이 의외로 일을 잘 해내는 경우도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참 사장이 한국 사회에서 닫혀 있거나 반쯤 열려 있던 창을 활짝 열어젖히며 새로운 길을 만든 것은 분명하다. '외국계 한국인'인 그가 성공한다면, 새로운 다문화 사회로 가는 길목에 선 우리사회에 기여하는바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참 사장이 훌륭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는 도와주어야 한다.

이번 일은 '한국계 한국인' 사이의 차별과 '외국계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나, 시민권은 없지만 '한국사회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문제에 대해 한 번쯤 되돌아보는 좋은 계기다. 출신국가나 피부색을 가려가며 외국인을 대하는 폐습과, 미국인이 미국에서 저지른 사건을 한국대사가 사과하는 '핏줄'에 대한 우리의 과민반응에 대해서도….
덧붙이는 글 김성호 기자는 16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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