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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최초의 순교자 교회를 찾아서

[제주여행 ⑧]제주도 최초의 순교자 이도종 목사

등록|2009.08.06 17:13 수정|2009.08.06 17:55

제주 최초의 순교자 교회대정교회를 찾았다... ⓒ 이명화


대개는 여행을 주중에 하더라도 토요일 늦게라도 집으로 돌아갔지만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는 이곳 제주도에서 주일을 지내기로 했다. 주일예배를 드릴 교회는 여행을 오기 전 검색하고 계획했던 제주최초 교회이면서 최초순교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1119번 지방도를 타고 성읍민속 마을로 와서 1136번 지방도로 들어섰다. 1136번 중산간도로를 따라 한바퀴 빙 돌다가 의귀마을에서 나와 1132번 도로를 갈아탔다. 해안일주로이다. 역시 길이 넓고 시원하다. 어디까지 달려야 하는 것일까. 멀기도 멀다.

전진기지 모구리 야영장에서 나와 차로 한참을 달렸는데도 '대정읍'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언제 보아도 가슴 설레는 제주 서귀포의 바다를 끼고 한참 달리다보니 산방산이 눈앞에 보이고 산방산 옆을 돌아나가 대정읍으로 진입한다. 제주도의 특징 중의 하나는 길이 잘 닦여져 있다는 점이다.

어디를 가도 제주 곳곳은 넓고 달리는 길이 시원 명쾌하다. 그래서 자전거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묻고 또 물으면서 대정교회를 찾았다. 대정교회는 추사 김정희 유배지 바로 근처에 있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인성리 1639번지에 위치한 대정교회는 순교자 이도종 목사 순교성지이다.

대정교회에 도착했지만 찾느라 예배 시간을 좀 넘긴 듯 하다. 다행이 설교는 이제 막 시작하였다. 마침 때는 여름성경학교 주간이었고 여름성경학교 마지막 날인 주일인 오늘은 전 가족예배로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이도종 목사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대정교회...이도종 목사 순교기념비... ⓒ 이명화


제주인 1호 목사 이도종은 1892년 9월 13일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금성리 706번지에서 5나3여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8년 선교사 이기풍 목사의 전도로 할아버지 송정순 등 가족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이기풍 목사의 제주도 선교에서 첫 열매인 셈이다. 평양의 폭력배였다가 복음을 받아들인 후 전도자가 된 이기풍 목사는 제주선교를 자원했고 이기풍 목사가 부임한 1907년 당시 제주는 육지와 전혀 다른 이방지역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풍속과 말도 다르고 외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이기풍 목사는 서양종교를 전한다고 몰매를 맞고 너무 굶어서 쓰러지기도 하는 등 숱한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특유의 뚝심으로 13년을 사역하면서 제주 최초의 교회인 '성내교회'를 비롯 삼양, 내도, 금성 등 15곳에 교회를 설립했다.

이도종 목사...제주 제1호 목사...최초 순교자... ⓒ 이명화


이도종 목사는 이기풍 목사가 전도한 첫 열매였다. 소년시절 고향 금성에서 한학을 했고, 1910년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했던 그는 졸업 후 1919년 조봉조 전도사 등 도내 교인 60여명이 체포된 상해 이시정부의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1921년 전도인으로 협재교회를 개척했고 시무했던 그는 이후 192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신학교(평양)에 입학해 재학중에는 삼양교회 전도사로 시무하기도 했으며 1926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전라북도 성말, 신풍 등의 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다가 1927년 6월 26일 전라노회(김제중앙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음으로써 제주인 1호 목사가 되었다. 그 무렵 결혼주례사 중 시국관련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그 지방에서 더 이상 목회할 수 없게 되자, 1929년 제주로 귀향하여 본격적인 제주목회를 하게 되었다.

제주 제1호...제주 최초의 순교자 기념교회... ⓒ 이명화


1946년 4.3직후인 6월 16일, 고산에서 인성교회(현 대정교회)와 화순교회(현 안덕교회)를 향해 산길로 걸어오던 중 대정읍 무릉 2리 인향동에서 무장단체에게 붙잡혀 순교했다. 그의 나이 55세였다.

전 가족 예배로 드리는 주일예배를 마친 뒤 예배 후 교인들과 함께 교회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교회 앞 정원 한쪽에 있는 순교자기념비를 돌아보았다. 얼마 안 되는 교인들이나 목사님은 처음 온 우리를 알아보았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고향이 경북 경주라고 소개한 집사님은 교인이 50여 명이라고 했다.

이곳 제주도에는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제주에 최초로 와서 몰매를 맞아가면서 선교했던 이기풍 목사와 그렇게 오랜 시간을 인내하면서 첫 열매로 얻은 이도종 목사가 선교할 당시의 그 어려움이야 말로 다 할 수 없었으리라.

어떻게 오셨냐고 묻는 목사님의 물음에 '최초의 제주 순교자 기념교회'를 찾아온 것이라 했더니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기념비 밑에는 육안으로 보면 안보이지만 그 밑엔 이도종 목사님의 유해가 화장되어 안치되어 있다고 목사님은 알려주었다.

이도종 목사의 유해가 묻혀있는 기념비를 둘러보고 아이들이 교회 마당 한 가운데 있는 나무 위를 타고 놀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한바퀴 돌아본 뒤 우린 밖으로 다시 나왔다. 제주 최초의 교회이며 최초의 순교자 교회인 현 대정교회를 나와 넓은 밭과 평원을 달렸다. 사이사이에 드문드문 앉아있는 집들이 보였다.

이렇게 마을도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데다가 인구가 얼마 되지 않는 마을 마을마다 교회는 세워지고,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오래 인내하면서 묵묵히 제 길을 가는 목회자가 곳곳에 남아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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