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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소통이다

여행의 패턴

등록|2009.08.08 20:02 수정|2009.08.08 20:02
모티프원 정원, 버드나무가지위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매미의 노랫소리가 시원합니다. 그 시원한 목청이 뻗어나가는 하늘도 깊고 푸릅니다. 하지만 그 노랫소리는 때로는 초조하고 때로는 성급합니다. 그 소리는 분명 가을을 알아차린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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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모티프원에는 여전히 여름방학과 휴가를 맞은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늦은 밤 헤이리에서의 산책길 공기는 옷깃을 여미게 하는 한기가 느껴집니다.

지난 8월 7일이 입추였습니다. 24절기 중 가을의 문턱을 넘었다는 날입니다. 음력으로는 오늘부터 11월 7일, 입동까지를 가을로 여깁니다. 곧 쓰르라미가 우는 밤, 서늘한 바람결을 느끼며 지난여름의 열기를 추억하는 시간이 오겠지요.

올해 모티프원을 찾은 많은 분들을 통해서 달라진 여름휴가의 패턴과 성숙된 여행문화를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해수욕장에서의 물놀이와 계곡에서의 고기파티가 여행과 휴식의 주류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울산의 한 가족은 이번 여름 여행을 책을 주제로 한 여행을 했습니다. 파주북시티에 들려 출판사를 방문하고 헌책방을 순례하고 헤이리의 독특한 서점들을 둘러보고 모티프원의 서재, library0에서 책들에 둘러싸여 그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포항의 세 가족은 야생화를 살피는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해를 따라 강원도로 갔다가 가평과 양평을 거쳐 모티프원으로 오셨습니다. 산과 들의 여름꽃들에 관한 책 몇 권이 닳아있었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교 교수님께서는 연구실을 벗어난 시간을 갖도록 스스로에게 1박 2일의 헤이리 여행을 허락했습니다. 모티프원 밖 헤이리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위해 오가는 시간에 산책을 즐기는 외에는 서재와 자신의 공간을 오가며 독서로만 소일했습니다.

결혼을 앞둔 딸과 엄마의 여행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출가한 딸이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오는 딸의 효심이 반영된 여행은 잦았습니다. 결혼을 한 달 앞둔 딸과 어머니만의 단 둘이 하는 여행은 흔치않습니다. 저는 이 하룻밤이 모녀에게 얼마나 필요하며 중요한 시간이 될지를 그 대화에 참여하지 않아도 능히 알겠습니다. 한 가정을 이루어 떠날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어머니의 말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엄마의 품안에서 아기와 어린이와 청소년과 숙녀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어머님께 고백할, 그동안 유보했던 감사의 말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저는 '어머니와 딸'로 들어와 다음날 '두 여성'으로 바뀌어 나가는 모습을 가슴 먹먹해지는 심경으로 지켜보았습니다.

모티프원으로 갤러리와 뮤지엄 순례를 위해 오는 경우는 가장 흔한 경우입니다. 헤이리는 이미 다양한 갤러리와 개인 뮤지엄이 자리 잡고 있으며 취향에 따라 선택적 순례가 가능합니다. 갤러리와 뮤지엄은 몸과 마음이 함께 혹사당하는 고된 노동의 삶을 사는 거개의 사람들에게 영혼의 휴식처이며 방전된 창의력을 다시 충전 받는 곳입니다.

▲ 한국의 작가와 작품을 한국 밖으로 소개하고 한국 밖 작가와 작품 그리고 그 문화를 한국 쪽으로 수혈하기위해 한국, 미국, 캐나다 3국을 주축으로 발간하고 있는 '계간 버질 Vergil Quarterly'의 발행인인 이원경대표와 스스로도 서양화가이신 이순분기자께서 모티프원을 방문했습니다. 국문과 영문으로, 특히 문화예술잡지를 꾸준히 발행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큰 희생을 발판으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원경대표의 의지가 숭고했습니다. ⓒ 이안수




헤이리에서 전시를 하는 작가들의 체류 또한 잦습니다. 각 갤러리들은 2주단위로 새로운 전시를 기획합니다. 그 오프닝에 참가한 작가와 그 가족, 혹은 친구들이 모티프원에서 작가의 노고를 격려하고 변화를 진단하는 시간을 갖곤 하지요.

▲ 갤러리더차이에서 개인전을 오픈한 이가형작가와 이 전시의 기획자인 금산갤러리의 큐레이터가 제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수많은 유두를 반복 배열하는 방식의 작업을 하고 있는 이가형작가는 현대인을 갓 태어난 아기가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어미의 젖을 찾듯 영혼을 위로 받을 그 상징으로 유두를, 그리고 그 근원으로 여겨지는 것을 해체하고 반복함으로서 작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일 유두조차 생산도구가 된 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가형작가와 가족은 모티프원에서 그 어머니같은 평안의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 이안수




외국인의 발길도 예사로 있는 일입니다.

마카오에서 온 다섯 미녀들은 특히 한국을 좋아하는 숙녀들이었습니다. 각기 다른 금융분야에서 일하는 그녀들은 적게는 세 번 많게는 다섯 번 이미 한국을 방문했던 경우였습니다. 동대문과 남대문에서 쇼핑을 하고, 명동일대에서 마사지를 즐기는 여행이 거나, 겨울에 스키를 체험하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녀들은 헤이리와 모티프원의 발견을 이번 한국 여름 여행의 가장 큰 수확으로 여기며 떠났습니다.

▲ 마카오의 KK일행은 모티프원에 들어오자마자 벌써 몇 년간 사귐이 있었던 것처럼, 첫 대면의 서먹함은 없었습니다. 이들이 한국 여행을 계획하면서 저와 이미 2달간 수없이 많은 메일을 주고 받았기 때문입니다. ⓒ 이안수




싱가포르에서 온 카렌커플은 싱가포르위성방송에서 제작하여 동남아에서 방송된 저와 모티프원에 관한 방송을 보고 찾아온 케이스였습니다. 디자인분야에 종사하는 두 사람으로서는 헤이리의 다양한 시각적 자극들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홍콩의 결혼 7년차 부부는 육아에 시간을 바치는 대신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것에서 인생의 의미를 구하자고 서로 결심을 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출산의 신비를 경험하는 대신 시간이 허락할 때 마다 세계를 여행하면서 사람사는 모습을 관찰하기를 즐깁니다. 이번에는 모티프원에서 헤이리의 예술적 커뮤니티에 빠져보는 시간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요코하마의 두 자매는 일본의 한국여행가이드북에 실린 모티프원을 찾아왔습니다. 영국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일본으로 들어와 영화사에서 3D영화를 담당하고 있는 언니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 늘 엄마와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익혔다는 동생의 능숙한 한국어 실력으로 언니의 한국여행을 안내했습니다. 저와 동생이 때때로 한국어로 언니를 흉보는 일로 그 언니의 궁금증으로 안달나게하곤 했지요. 할아버지께서 일본에 최초로 컬러사진을 도입했던 일본의 사진가 집안이기도 했습니다.

▲ 일본 요코하마에서 온 유이와 아야 자매는 일본의 여행가이드북 'Pop*Trip Seoul'에 소개된 모티프원을 보고 방문을 결심한지 6개월 만에 함께 올 수 있었습니다. ⓒ 이안수




두달 뒤 국제결혼을 앞둔 한 가족의 방문도 있었습니다. 몇 년전 한국으로 여행 온 호주인을 만났고, 그의 나라인 호주로 워킹헐리데이를 갔다가 막 돌아온 딸이 엄마와 언니들을 불러 문화가 다른 외국인 사윗감과 제부弟夫와의 시간을 공유하는 여행이었지요. 그 가족들은 윷놀이를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곧 부부가 될 두 사람은 제게 진지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주례를 부탁합니다. 영어가 능숙한 분을 모시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난밤 잠시 호주의 신랑감과 함께하는 시간에 나눈 대화로 제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고백이었습니다.

▲ 결혼을 앞 둔 호주의 데니스 커플 ⓒ 이안수




저는 모티프원에서 다양한 여행자들과 함께하면서 대한민국의 문화적 지수를 확인하는 일이 행복합니다.

여행은 소통입니다. 이처럼 모티프원에서의 밤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그리고 자아와의 내밀한 관계를 확인하고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소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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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과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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