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88민중항쟁' 21주년, "버마에 민주주의를"
NLD한국지부 등 양국 30여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8일 대사관 앞 시위
버마 8888민중항쟁 21주년을 맞은 지난 8일 한국에서도 이를 기념하는 집회와 모임이 서울의 미얀마 대사관 앞과 부천에서 열렸다. 버마공동체 구성원들과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국내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8888민중항쟁은 그 규모나 군부정권의 폭정의 유사성으로 한국의 5·18광주민중항쟁과 비교되곤 한다. 48년 영국 식민지를 마감했지만 이후 40여년 군부독재에 시달려온 버마인들이 마침내 1988년 여름 전국적으로 항쟁을 시작했으나 독재정권은 총과 탱크로 진압, 3천여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감옥에 갇혔다.
민족민주동맹(NLD), 버마학생민주동맹, 친족커뮤니티, 카렌족청년조직 등 국내에 조직돼 있는 버마 민주화운동 조직과 이를 지원하는 한국의 3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8일 오후 5시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 3층 대강당에서 '8888민중항쟁 21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부천외노집서 기념행사
이들 단체 관계자 30여명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서울 용산구 한남2동에 있는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버마 민주화를 기원하는 집회와 시위를 갖고 △탄쉐 군부정권 퇴진과 민정이양 △아웅산 수지와 모든 양심수의 즉각 석방 △카렌·친족 등 소수민족 탄압 중단과 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날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거행된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버마 8888민중항쟁 21주년' 공동성명을 통해 버마 군부정권은 지금도 역사상 전례 없는 인권남용뿐 아니라 소수민족에 대한 대량살육을 자행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버마인들과 국제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버마 민주화를 꼭 이루자고 다짐했다.
기념행사는 오후 5시 부천에 있는 근로자종합복지센터 3층 강당에서 열렸다. 주최측에서 생맥주와 안주를 마련했고, 버마 공동체 관계자들은 버마전통 음식을 준비했다. 기념식이라기보다는 술을 한잔 하며 대화하는 모임이었다.
조 샤린의 사회로 시작된 1부 기념행사는 버마 공동체 사람들이 나와 노래하고 대화하는 자리였다. 한 버마인이 '하인지 쭌' 이야기로 관심을 끌기도 했다. 버마를 떠나 망명생활을 한 지 대부분 10여년이 돼 가는 노총각들의 애달픈 삶을 풍자한 말이다.
뚜라 버마행동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하인지 쭌'은 버마 남쪽 인도양에 있는 무인도(지금은 군부대가 주둔) 이름. '하인지'가 '늦었다'는 뜻이고 '쭌'은 '섬'을 뜻하니, 한국에 망명해 결혼을 못하는 노총각들의 공동체 딱 그거다. 버마인들끼리는 부천의 버마공동체를 '하인지 쭌'이라고 한다나.
버마공동체는 '하인지쭌'
버마 행사 때면 늘 재능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조모루인 가수 겸 시인이 자작곡을 부르기도 했다. 첫 곡은 그와 동료들이 함께 불렸는데, 민중가요라는데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광주출정가'를 연상케 했다.
2부에는 김범영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 소장이 마이크를 잡았고, 이사 겸 버마공동체 후원자인 신철영 전 국가고충처리위원장과 부인 김은혜씨를 불러 한말씀 들었다. 신 전 위원장은 22주년에는 기필코 자유롭고 번영하는 버마를 만들어 맞이할 수 있도록 하자고 기원했다.
마웅 민 쉐 NLD한국지부 의장은 버마공동체를 늘 지원하고 아껴주는 모든 분들께 고맙다고 언급한 뒤 버마도 한국처럼 민주화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한국 사람들을 포함해 국제사회 구성원들 모두 이를 알리고 도와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백선기 부천자치연대 공동대표(외국인노동자의집 이사)도 과거 축구 잘하고 잘 사는 나라 버마를 기억하고 있는데 왜 버마 정부가 국제사회의 조롱거리이자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는지 모르겠다며 민주화 투쟁이 승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민규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모임 부회장, 마웅저 버마국경지역교육지원프로그램 대표, 뚜라 버마행동 대표 등도 8888민중항쟁 21주년을 맞아 버마 민주화를 이룰 수 있도록 힘을 합치자고 말했다.
8888민중항쟁은 그 규모나 군부정권의 폭정의 유사성으로 한국의 5·18광주민중항쟁과 비교되곤 한다. 48년 영국 식민지를 마감했지만 이후 40여년 군부독재에 시달려온 버마인들이 마침내 1988년 여름 전국적으로 항쟁을 시작했으나 독재정권은 총과 탱크로 진압, 3천여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감옥에 갇혔다.
부천외노집서 기념행사
이들 단체 관계자 30여명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서울 용산구 한남2동에 있는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버마 민주화를 기원하는 집회와 시위를 갖고 △탄쉐 군부정권 퇴진과 민정이양 △아웅산 수지와 모든 양심수의 즉각 석방 △카렌·친족 등 소수민족 탄압 중단과 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등 버마와 한국 시민단체들이 지난 8일 '8888민중항쟁' 21주년을 맞아 버마 민주화를 기원하는 집회와 행사를 가졌다. ⓒ 최방식
▲ '8888민중항쟁' 21주년 기념행사장에 취재차 나온 '이주노동자 방송' 관계자들. ⓒ 최방식
▲ 1988년 8월 8일 마침내 군부독재에 신음하던 버마인들이 떨쳐 일어섰다. 하지만 독재자의 총칼 앞에 3천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 최방식
이날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거행된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버마 8888민중항쟁 21주년' 공동성명을 통해 버마 군부정권은 지금도 역사상 전례 없는 인권남용뿐 아니라 소수민족에 대한 대량살육을 자행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버마인들과 국제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버마 민주화를 꼭 이루자고 다짐했다.
기념행사는 오후 5시 부천에 있는 근로자종합복지센터 3층 강당에서 열렸다. 주최측에서 생맥주와 안주를 마련했고, 버마 공동체 관계자들은 버마전통 음식을 준비했다. 기념식이라기보다는 술을 한잔 하며 대화하는 모임이었다.
조 샤린의 사회로 시작된 1부 기념행사는 버마 공동체 사람들이 나와 노래하고 대화하는 자리였다. 한 버마인이 '하인지 쭌' 이야기로 관심을 끌기도 했다. 버마를 떠나 망명생활을 한 지 대부분 10여년이 돼 가는 노총각들의 애달픈 삶을 풍자한 말이다.
뚜라 버마행동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하인지 쭌'은 버마 남쪽 인도양에 있는 무인도(지금은 군부대가 주둔) 이름. '하인지'가 '늦었다'는 뜻이고 '쭌'은 '섬'을 뜻하니, 한국에 망명해 결혼을 못하는 노총각들의 공동체 딱 그거다. 버마인들끼리는 부천의 버마공동체를 '하인지 쭌'이라고 한다나.
▲ 버마 공동체 모임에 가면 늘 볼 수 있는 이들. 시민사회 국제연대는 이렇게 이웃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 최방식
▲ '8888민중항쟁' 21주년 기념행사에서 NLD한국지부 소속원들이 버마 민주화를 염원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최방식
▲ NLD코리아 아웅 민 쉐 의장(마이크 잡은 이). 그는 1990년 총선 때 NLD맴버로 한 지구당 위원장으로 출마했다고 했다. ⓒ 최방식
버마공동체는 '하인지쭌'
버마 행사 때면 늘 재능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조모루인 가수 겸 시인이 자작곡을 부르기도 했다. 첫 곡은 그와 동료들이 함께 불렸는데, 민중가요라는데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광주출정가'를 연상케 했다.
2부에는 김범영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 소장이 마이크를 잡았고, 이사 겸 버마공동체 후원자인 신철영 전 국가고충처리위원장과 부인 김은혜씨를 불러 한말씀 들었다. 신 전 위원장은 22주년에는 기필코 자유롭고 번영하는 버마를 만들어 맞이할 수 있도록 하자고 기원했다.
마웅 민 쉐 NLD한국지부 의장은 버마공동체를 늘 지원하고 아껴주는 모든 분들께 고맙다고 언급한 뒤 버마도 한국처럼 민주화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한국 사람들을 포함해 국제사회 구성원들 모두 이를 알리고 도와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백선기 부천자치연대 공동대표(외국인노동자의집 이사)도 과거 축구 잘하고 잘 사는 나라 버마를 기억하고 있는데 왜 버마 정부가 국제사회의 조롱거리이자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는지 모르겠다며 민주화 투쟁이 승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8888민중항쟁' 21주년 기념식에 참여한 박민규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모임' 부회장. ⓒ 최방식
▲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 김범영 소장. 그는 버마공동체 행사에는 빠지지 않는 단골이다. ⓒ 최방식
▲ '8888민중항쟁' 21주년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최방식
박민규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모임 부회장, 마웅저 버마국경지역교육지원프로그램 대표, 뚜라 버마행동 대표 등도 8888민중항쟁 21주년을 맞아 버마 민주화를 이룰 수 있도록 힘을 합치자고 말했다.
1988년 8월 8일 양곤 등 버마 주요 도시에서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벌였던 항쟁. 48년 영국에서 해방 뒤 한 번도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했던 버마인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선 날. 48년 식민지 해방의 기쁨도 잠시.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 움직임, 일상화한 좌우 대결과 폭력, 그리고 집권한 독립운동가 출신 엘리트집단 내의 분열 등으로 버마 정국은 10여년이 넘게 혼란스러웠다. 이 틈을 타 네 윈(지금은 사망)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했다. 1962년 일이다. 25년여 군사독재에 시달리던 버마인들은 88년 마침내 일어났다. 네윈 정권이 휘청거리자, 소마웅이 친위쿠데타를 일으켰고, 무력 진압이 시작됐다. 8월 8일, 양곤에서 10만명이 거리시위를 벌였는데 총과 탱크로 진압했다. 최소 200여명이 사망했다. 9월 14일에는 100만명이 거리로 나왔으나 탱크로 깔아뭉갰다. 버마인들은 이 투쟁을 '8888민중항쟁'으로 기억하고 있다. 80년 광주항쟁과 비교되곤 한다. NLD에 따르면, 당시 3천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천명이 감옥에 갇혔다. 1500여명은 지금도 수감 중이다. 일부는 정글로 숨어들어 무장투쟁을 벌였고, 다른 일부는 태국국경을 넘었다. 이들이 세계 각지로 흩어진 NLD-LA(민족민주동맹 자유지역, 버마 내부 조직은 그냥 NLD로 부름) 조직원들이다. 8888항쟁을 총칼로 진압한 소마웅 군부는 피의 학살에 따른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2년 뒤 총선을 통해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1990년 5월 총선이 실시됐다.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가 전체 의석의 81%를 차지했다. 하지만 군부정권은 약속을 어겼다. 선거 결과를 무시하고 수지를 가택에 연금시켰다. NLD 지도부를 포함해 2천명의 민주인사를 체포·투옥했다. 수지 여사는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군부는 그를 지금까지 가택에 가둬놓고 있다. 그리고 92년 친위쿠데타의 2인자였던 탄 쉐(74)가 소마웅으로부터 실권을 넘겨받았다. 97년 국가통치 기구 명칭도 '국가평화발전협의회'(SPDC)로 재편했다. 탄쉐 군사독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덧붙이는 글
인터넷저널에도 게재.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