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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누나, 아빠는 할아버지

25살 결혼이주여성, 휀이 가출한 이유

등록|2009.08.10 15:44 수정|2009.08.10 16:27
일요일 오후 한국어교실 종강을 한 결혼이주민들로 쉼터가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 중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은국(2)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휀(25)이 연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는 눈치가 역력했다.

"누구 연락 기다려요?"
"남편이요, 얘기 아빠가 연락 준다고 했어요."
"아저씨랑 연락을 하셨군요. 뭐라고 해요?"
"그냥 집에 들어오래요."
"그럼 들어가시지, 왜 이렇게 계세요?"
"남편은 아침 4시에 나가면 저녁 6시, 6시에 나가면 저녁 8시에 들어와요. 지금 남편 없어요. 남편 없으면 안 들어가요."
"그래도 미리 들어가 있으면 좋잖아요."
"안 돼요. 시어머니 화내요."

휀은 결혼한 지 2년 반이 지나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민이다. 그녀는 오전 9시부터 하루 4시간씩 월 60만 원을 받고 식당 일을 하면서, 아이를 기르고, 시모를 봉양하는 억척 아줌마다. 그녀의 남편은 장의업체에서 일을 한다. 일이 일이다보니, 남편은 휴무일이 따로 없다. 그런 남편과 하루에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라곤 남편이 퇴근 후 저녁식사를 하는 시간뿐이다. 남편은 식사를 마치면 은국이를 한두 번 어르며 놀아주다가 곧바로 TV 앞에 진을 친다.

그래도 휀은 남편이 착하다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남편과는 25살 차이가 난다. 사람들이 자신과 남편 나이를 물어보면, 이제는 면역이 됐는지 대놓고 "엄마는 누나, 아빠는 할아버지"라고 먼저 농담을 하곤 한다. 그리곤 넉살좋게, "애기 아빠, 할아버지 되면 은국이 대학교는 제가 보낼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자신과 아이의 미래를 어떻게든 준비할 것이라는 각오를 감추지 않는다.

휀은 6남매 중 막내다. 그녀의 큰오빠는 남편과 비슷한 연배다. 그래서일까? 결혼할 때 그녀는 나이차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남편은 일흔이 넘은 시모를 모시고 있었다. 남편은 과묵한 사람이지만, 시어머니는 휀에게 말을 할 때면, 늘 목소리가 컸다. 남편은 그녀에게 어머니가 가는귀가 머셔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을 해 줬지만, 그녀는 시어머니가 뭔가 말을 하려 할 때마다 가슴을 조인다. 시어머니는 휀에게 언제나 엄격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그러던 차에, 은국이 양육 문제로 얼마 전 시어머니가 단단히 골이 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휀이 집 앞 공장 식당에서 4시간 동안 일을 하는 동안 은국이를 봐 주고 있던 시어머니가 손자 돌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라고 불평을 하시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이 번 돈은 적금으로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휀은 자신의 급여로 은국이 분유 값과 공과금을 내고 살림하는데 쓰기에도 빠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휀은 자신이 식당에서 번 돈 중 10만 원을 시어머니에게 드려왔었다. 휀은 시어머니의 불만이 얼마 되지 않는 용돈 문제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형편을 뻔히 아는 시어머니를 설득할 재주가 없었다.

결국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새벽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보채는 은국이를 안고 겨우 잠이 들었던 휀이 남편의 출근도 모르고 늦잠을 잔 것이었다. 이제껏 없던 일이었다. 그 일을 가지고 시어머니의 닦달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원래 목소리가 크다고 느꼈던 시어머니의 역정은 화가 나자, 가까이 갈 엄두도 못 낼만치 크게 들렸다.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를 했지만, 시어머니의 화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마침 여름 휴가였던 휀은 은국이를 안고 집을 나와 버렸다. 남편이 들어올 때쯤 해서 들어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편을 들어줄 줄 알았던 남편은 '시어머니가 화를 낸다고 버릇없이 집을 나갔다'고 화를 내며 당장 들어오라고 했다. 마음이 상한 휀은 하룻밤을 친구 집에서 보내고, 다음날 아침 쉼터에 들렀다.

집을 나왔지만 계획했던 것이 아닌 만큼 나오자마자 불편한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은국이 분유, 기저귀, 옷가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과 아이를 걱정할 시어머니와 남편을 생각하면 마음 역시 불편했다.

그래서 아파트를 사서 집들이를 하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민 가정의 초대를 받았지만, 휀은 남편의 전화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 오후 4시 조금 지나서 고대하던 전화가 왔다. 남편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는데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모처럼 고국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집들이를 가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버스를 타는 휀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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