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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나무를 사진에 담고 있습니다

헤이리의 당산나무

등록|2009.08.11 16:54 수정|2009.08.11 16:54
헤이리의 진산鎭山인 노을동산 아래의 느티나무는 헤이리에 살아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이처럼 오랜 세월을 견딘 것들은 모두 저를 숙연하게 합니다. 느티나무의 500년 나이테 그 켜마다 갖은 사연들을 머금고 있겠지요. 저는 그 사연들을 상상하기를 즐깁니다.  

▲ 헤이리의 정신적 구심점인 노을동산의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 ⓒ 이안수




조선시대 작은 어선이 드나들던 이곳 포구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일제시대 순사의 거만한 걸음걸이와 한국전쟁의 잔혹함과 휴전 후 군인들이 참호를 파던 기억들을 이 느티나무는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 헤이리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 느티나무는 몹시 아팠습니다. 굵은 몸뚱이의 속은 모두 비어있었고, 훤히 들어난 그 속살에는 붉은 페인트가 뿌려져있었습니다. 훈련 중인 군인들의 작전지역표시였을 것입니다. 그 나무속에 불을 피운 자국도 뚜렷했습니다. 겨울 둥글게 파인 그 나무속에서 추위를 피하면서 피운 모닥불의 흔적이었습니다.

▲ 속이 파인 깊은 상처를 간직한 치료전의 느티나무 ⓒ 이안수




여름이 와도 느티나무의 잎은 성글었습니다.
이때 구원의 손길이 미쳤습니다.

우리 마을의 황인용 방송인께서 몇몇 행사의 진행을 맡아달라는 부탁에 무료로 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 회사에서 이 고마움을 정자나무 주변 가꾸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아름지기'와 함께 이 마을의 느티나무를 치료하고 주변을 단장하는 것으로 되돌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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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상처를 봉합한 느티나무는 다음해부터 더 푸르고 기품도 더 고고해진 모습입니다.

지나치는 헤이리 방문객들이 이 나무아래 벤치에서 숨을 돌리고 가곤합니다.

저와 저의 처는 이번 여름 이 느티나무아래에 누워 지난 시간들을 반추해보는 시간을 가진 적도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번잡함을 피할 필요가 있을 때는 이 느티나무의 품안으로 숨어들곤 합니다. 이 아래에서 한두시간 시간을 보내면 혼잡했던 머리는 정리되고 상기되었던 가슴은 가라앉지요. 그러므로 제게 이 느티나무는 휴식이고 회복입니다.

헤이리 마을에서도 이 느티나무의 너른 품 아래에서 버스킹(busking, 거리공연)을 하기도 합니다. 때론 나무에 창작 연을 걸어 나무 전체를 작품화하는 작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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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저는 몇 년째 하루에 한 차례 이상 헤이리를 순례하면서 그 변화를 카메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마다 이 느티나무 앞을 그냥 지나친 적은 없습니다. 에둘러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느티나무와 눈을 맞추고 지납니다.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이 느티나무 가지사이로 내려다보이는 헤이리가 더욱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져가는 우리 전통과 문화를 우리기억으로 되살려 그 아름다움과 지혜를 재발견하게 해주는 KBS1TV 미니다큐 <느티나무>(화수목 밤 10시50분방영)에서 노거수를 취재하면서 제게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헤이리 느티나무에 관한 추억과 사연을 들려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헤이리 이웃들과 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일 노을동산 느티나무. 제가 생을 마치고도 향후 500년 이상을 더 이 마을을 내려다봄직한 이 느티나무는 헤이리를 제 고향으로 느끼게 하는 가장 마음 깊은 어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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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과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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