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고 또 오르던 미국 주식시장이 어제부터 주춤하면서 오늘은 제대로 떨어지고 있다. 이틀 동안 열리고 있는 연방준비이사회 모임을 보면서 내일 금리발표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모양새이다. 그동안 오르고 내리는 주식 물결을 따라서 재빠르게 사고 팔기를 거듭해 조금 재미를 본 손님들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다리던 손님들을 보기좋게 따돌리고 주식시장은 넉 주 동안이나 저 혼자 올라가고 말았다. 닭쫓던 개처럼, 오르는 주식을 보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으니 이제 주식투자로 한 재미 보는 일이 그렇게 만만치는 않다고, 알아가고 있을까들?
오늘 아침에도 나는 일터에 나와서 여느 때처럼 인터넷 뉴스밭을 헤매다가 기어이 '사람사는 세상'에 들어갔다. 재중동포 문인, 모래안님이 쓴 '노무현 자리'를 다시 읽으니 또 눈물이 흐른다. 중국동포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다가온, 산 역사를 가슴으로 보면서...
내가 생각해도 내가 하는 짓은 직무유기가 되겠다. 주식시장은 이 곳 엘에이 시간으로 아침 여섯시 반에 문을 연다. 일찍이 나와서 그 날 돌아가는 세계 경제 뉴스를 읽고 분석하여 내 손님들에게 일러주고 함께 투자방향을 논의하는 일이 내가 할 일이다. 그러면 손님들도 참말로 좋아할 텐데.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손님은 빼고.
그런데 2000년 끄트머리부터 하이텍 거품이 빠지고 2001년 9.11 사태와 함께 주식시장이 무섭게 무너졌을 때, 우리도 손님들도 돈과 함께 모든 꿈이 사그리 무너졌다. 나는 꿈 속에서도 주식이 바닥으로 내팽개쳐지는 악몽으로 시달리며 나날을 보냈다. 그때부터 나는 '이러이러한 주식이 좋으니 사 보셔요'하면서 자주 틀린 말(거짓말은 아니고)과 정보로 손님 돈을 잃게 하는 내 일이 너무 싫어졌다. 그렇다고 스무 해 가까이 해오던 일자리를 박차고 나갈 곳도, 힘도 없다.
그러니 이 문제가 많은 증권 브로커가 오늘도 책상에 앉아서 손님들이 주문하는 대로 거래만 하고 있다. 이 주식 사면 어떨까요? 물어오면 글쎄요 하면서... 우리 브로커들은 월급제가 아니고 손님이 낸 주문을 클릭(거래)할 때마다 수수료를 손님에게 매긴다. 그래서 손님과 늘 소통을 하면서 주문을 하도록 도우며, 그에 따라서 브로커들도 돈을 번다. 나는 이제 손님에게 아는 척하면서 사거나 팔도록 이끌어 가기에 너무 지쳤다. 어제는 세 사람에게 전화를 받고 CBS 1000주와 한미은행 5000주, 그리고 보도 듣도 못한 어떤 주식 1000주를 샀고, 오늘은 거래를 두 차례밖에 못했다. 죽먹을 만큼 하루 일당은 한 셈인지 몰라.
내가 뱅크오브어메리카 주식을 500주 산 뒤, 다시 한겨레 인터넷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옛날 손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셔요? 미세스 신. 여기 한국입니다."
2000년 첫머리에 증권에 손을 댔다가 9.11을 지나면서 많은 돈을 잃은 손님이었다.
"안녕하셔요? 이 여사님. 아직도 한국에 계시는군요."
목소리만 들어도 금방 알겠다. 반가웠다. 그런데 이름이 뭐였더라.
"예. 요즈음 그 곳 시장이 어떤가 해서요. 주식시장이 너무 올랐지요?"
"예. 그렇긴 하지만 아직도 살 주식은 있답니다."
"부동산 경기는 어때요?"
"바닥을 친 듯 싶어요."
나는 부동산 중개일을 하는 남편을 떠올리며 입맛을 바짝 다셨다. 남편은 이태동안 일거리가 없어서 많이 힘들어 한다.
"우리 큰아들도 샌디에고에 아주 좋은 값으로 집을 샀답니다."
"엘에이 건물값은 어때요? 오렌지 카운티에 견주어 보면."
"우리 남편한테 물어 볼게요. 그런데 언제 오시나요?"
"내가 강남 노른자위에 스무 유닛도 넘는 건물이 있는데 관리하느라 바쁘답니다. 임대수입이 짭잘하거든요. 강남 아세요? 일찍 이민갔으니 모를 테지요."
"잘 모르지요."
"이사철이 뜸한 11월이나 12월쯤 갈까 해요."
"잘 됐네요. 시월에는 우리 부부가 한국에 가거든요."
"참말이요? 그럼 우리 꼭 만나요. 전화번호 적으셔요. 내 셀폰은 010XXXX이고, 집 전화는 070XXXX이에요. 두 분한테 맛있는 것 사드릴게요. 그런데 무슨 볼일이 있어요?"
"예순 해 동안 고국땅 단풍구경을 못 해 봐서요.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어요. 그리운 사람들도 만나구요. 사실은 내 환갑기념 나들이랍니다."
"호호호. 환갑이라구요? 믿기지 않네요. 그럼 나한테도 세 해 뒤에는 환갑이 온단 말이에요. 기가 막히네요."
"아! 그런데 재혼하신다더니 어떻게 되셨나요?"
"아직 안 했는데요. 사귀는 사람은 있답니다. 일본사람이에요."
"일본사람이요? 일본말을 아셔요?"
"아니요. 우리는 영어로 한답니다."
"잘 됐네요."
미국에 100년을 살아도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면 영어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데... 이 분은 미국에서 공부도 안했고 일도 안했는데 어떻게 영어로 데이트를 한다지? 궁금하다.
"그런데 미세스 신, 엘에이에 있는 한국남자들은 다들 너절하게 생겼잖아요. 매너도 없고. 일본남자들은 다 잘 생겼답니다. 예의도 깎듯하고."
"...."
"예술을 해서 그런지 멋이 넘쳐나요."
"아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한국남자들은 너절하고 일본남자들은 잘 생겼다구요? 어쩜 그런말을 할 수가 있나요? 일본이 우리한테 어떤 나라인데..."
"어머나! 신여사님. 그렇게 닫힌 맘으로 어떻게 살아요?"
신여사님? 미세스 신에서 한 층 올라갔네.
나는 한 손으로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던 종이를 꾸겨서 쓰레기통으로 넣으며, "한국에 오시면 전화주셔요. 안녕히 계시구요"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왜 이렇게 슬프지? 역사의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이런 사람도 내 동포이겠지? 그 깜깜했던 시절, 꽃다운 우리 딸들이 위안부로 끌려갔던 과거사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건만... 2007년, 나눔의 집에서 뵈었던, 아직도 고우신 김군자 할머니가 뵙고 싶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일터에 나와서 여느 때처럼 인터넷 뉴스밭을 헤매다가 기어이 '사람사는 세상'에 들어갔다. 재중동포 문인, 모래안님이 쓴 '노무현 자리'를 다시 읽으니 또 눈물이 흐른다. 중국동포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다가온, 산 역사를 가슴으로 보면서...
그런데 2000년 끄트머리부터 하이텍 거품이 빠지고 2001년 9.11 사태와 함께 주식시장이 무섭게 무너졌을 때, 우리도 손님들도 돈과 함께 모든 꿈이 사그리 무너졌다. 나는 꿈 속에서도 주식이 바닥으로 내팽개쳐지는 악몽으로 시달리며 나날을 보냈다. 그때부터 나는 '이러이러한 주식이 좋으니 사 보셔요'하면서 자주 틀린 말(거짓말은 아니고)과 정보로 손님 돈을 잃게 하는 내 일이 너무 싫어졌다. 그렇다고 스무 해 가까이 해오던 일자리를 박차고 나갈 곳도, 힘도 없다.
그러니 이 문제가 많은 증권 브로커가 오늘도 책상에 앉아서 손님들이 주문하는 대로 거래만 하고 있다. 이 주식 사면 어떨까요? 물어오면 글쎄요 하면서... 우리 브로커들은 월급제가 아니고 손님이 낸 주문을 클릭(거래)할 때마다 수수료를 손님에게 매긴다. 그래서 손님과 늘 소통을 하면서 주문을 하도록 도우며, 그에 따라서 브로커들도 돈을 번다. 나는 이제 손님에게 아는 척하면서 사거나 팔도록 이끌어 가기에 너무 지쳤다. 어제는 세 사람에게 전화를 받고 CBS 1000주와 한미은행 5000주, 그리고 보도 듣도 못한 어떤 주식 1000주를 샀고, 오늘은 거래를 두 차례밖에 못했다. 죽먹을 만큼 하루 일당은 한 셈인지 몰라.
내가 뱅크오브어메리카 주식을 500주 산 뒤, 다시 한겨레 인터넷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옛날 손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셔요? 미세스 신. 여기 한국입니다."
2000년 첫머리에 증권에 손을 댔다가 9.11을 지나면서 많은 돈을 잃은 손님이었다.
"안녕하셔요? 이 여사님. 아직도 한국에 계시는군요."
목소리만 들어도 금방 알겠다. 반가웠다. 그런데 이름이 뭐였더라.
"예. 요즈음 그 곳 시장이 어떤가 해서요. 주식시장이 너무 올랐지요?"
"예. 그렇긴 하지만 아직도 살 주식은 있답니다."
"부동산 경기는 어때요?"
"바닥을 친 듯 싶어요."
나는 부동산 중개일을 하는 남편을 떠올리며 입맛을 바짝 다셨다. 남편은 이태동안 일거리가 없어서 많이 힘들어 한다.
"우리 큰아들도 샌디에고에 아주 좋은 값으로 집을 샀답니다."
"엘에이 건물값은 어때요? 오렌지 카운티에 견주어 보면."
"우리 남편한테 물어 볼게요. 그런데 언제 오시나요?"
"내가 강남 노른자위에 스무 유닛도 넘는 건물이 있는데 관리하느라 바쁘답니다. 임대수입이 짭잘하거든요. 강남 아세요? 일찍 이민갔으니 모를 테지요."
"잘 모르지요."
"이사철이 뜸한 11월이나 12월쯤 갈까 해요."
"잘 됐네요. 시월에는 우리 부부가 한국에 가거든요."
"참말이요? 그럼 우리 꼭 만나요. 전화번호 적으셔요. 내 셀폰은 010XXXX이고, 집 전화는 070XXXX이에요. 두 분한테 맛있는 것 사드릴게요. 그런데 무슨 볼일이 있어요?"
"예순 해 동안 고국땅 단풍구경을 못 해 봐서요.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어요. 그리운 사람들도 만나구요. 사실은 내 환갑기념 나들이랍니다."
"호호호. 환갑이라구요? 믿기지 않네요. 그럼 나한테도 세 해 뒤에는 환갑이 온단 말이에요. 기가 막히네요."
"아! 그런데 재혼하신다더니 어떻게 되셨나요?"
"아직 안 했는데요. 사귀는 사람은 있답니다. 일본사람이에요."
"일본사람이요? 일본말을 아셔요?"
"아니요. 우리는 영어로 한답니다."
"잘 됐네요."
미국에 100년을 살아도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면 영어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데... 이 분은 미국에서 공부도 안했고 일도 안했는데 어떻게 영어로 데이트를 한다지? 궁금하다.
"그런데 미세스 신, 엘에이에 있는 한국남자들은 다들 너절하게 생겼잖아요. 매너도 없고. 일본남자들은 다 잘 생겼답니다. 예의도 깎듯하고."
"...."
"예술을 해서 그런지 멋이 넘쳐나요."
"아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한국남자들은 너절하고 일본남자들은 잘 생겼다구요? 어쩜 그런말을 할 수가 있나요? 일본이 우리한테 어떤 나라인데..."
"어머나! 신여사님. 그렇게 닫힌 맘으로 어떻게 살아요?"
신여사님? 미세스 신에서 한 층 올라갔네.
나는 한 손으로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던 종이를 꾸겨서 쓰레기통으로 넣으며, "한국에 오시면 전화주셔요. 안녕히 계시구요"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왜 이렇게 슬프지? 역사의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이런 사람도 내 동포이겠지? 그 깜깜했던 시절, 꽃다운 우리 딸들이 위안부로 끌려갔던 과거사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건만... 2007년, 나눔의 집에서 뵈었던, 아직도 고우신 김군자 할머니가 뵙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내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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