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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때 24시간 목숨걸고 일한 대가가 고작 만원"

예인선 노동자들 파업... 부산항-울산항 이어 여수항도 결의

등록|2009.08.13 10:20 수정|2009.08.13 10:26
예인선(예선) 노동자들의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부산항과 울산항 예인선 노동자들이 1주일 가량 파업을 벌인 가운데, 전남 여수·광양항 노동자들도 파업에 돌입하기로 했으며 마산항 노동자들도 투쟁 수위를 높이고 있다.

파업 집회도 계속 열리고 있다. 민주노총 운수노조 항만예선지부 부산지회와 울산지회는 12일 울산 남구 장생포항에서 '예인선 노동조합 총파업 승리 연대집회'를 열었다. 금속노조 울산지부는 각종 구호가 적힌 펼침막을 제작해 전달하기도 했다.

운수노조 여수지회는 10~11일 사이 조합원을 상대로 '찬반투표'를 벌여 파업을 가결시켰다. 여수 조합원들은 부두 주변에서 숨진 조합원의 보상문제 해결을 요구했지만 사측에서 지연시킨 데 항의해 파업에 들어가기로 한 것.

지난 7월에 결성된 운수노조 마산지회도 사측과 교섭 결렬로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강제조정 신청'을 해놓았으며, 강제조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사측은 직장폐쇄로 맞서고 있다. 부산항 예인선사 3곳은 12일 부산시와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선박 11척에 대해 '직장폐쇄'를 신고했고, 울산항 선사 3곳도 지난 10일 선박 26척에 대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근로조건 열악... 이전에는 시간외근무수당 인정 안돼

▲ 부산항과 울산항 예인선 노동자들은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 투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부두에 정박해 있는 예인선 모습. ⓒ 윤성효


예인선은 큰 선박의 부두 입출항을 돕는다. 대개 선장과 기관장, 항해사, 기관사, 갑판원이 한 팀으로 예인선에서 일한다. 조선소에서 만든 큰 배를 바다로 안내하는 일도 한다.

노동자들은 근로환경이 열악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부산항 사업장에서는 24시간 맞교대하고, 울산항에서는 출퇴근을 하고 당직을 서는 형태로 일하고 있다. 마산항에서는 하루 15~16시간 일하기가 예사라고 한다.

이들은 "취업규칙에 월 근로시간은 180시간인데 300시간을 초과하는 것이 다반사"라며 "근로기준법이나 선원법 적용을 받지 못해서 초과근로수당이나 휴일근로수당도 없이 주는 대로 임금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태풍이 왔을 때는 더 바쁘죠. 선박들을 피항시켜야 하기 때문이죠. 태풍 '매미' 때 24시간 목숨 걸고 일한 대가는 수당 만원이 고작이었고 그것조차 주지 않는 회사도 있었지요."

"울산의 경우 당직을 1주일에 두 번을 서는데 당직 서는 날은 아침 5시30분에 출근하여 다음날 18시에 퇴근하죠. 36시간 30분을 연속 근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다음날 5시 30분에 출근합니다."

주말은 물론이고 공휴일이나 명절도 쉬지 못할 때가 많다. 마산항 노동자들의 2008년 1~4월 사이 근무일수를 보았더니, 한 달에 하루도 쉬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토·일요일과 공휴일까지 일했다는 것이다.

"24시간 맞교대하는 부산의 경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교대자는 7일 동안 집에도 가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합니다. 복귀하는 노동자는 또한 7일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사람이 생체구조상 잠도 못 자고 7일 연속 일을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한 노동자는 "연월차 휴가는 노동자가 필요한 때 사용해야 하는데, 노동자가 요구하는 날짜에는 되지 않고 회사가 일방적으로 날짜를 정해 버린다"면서 "친척이 결혼해도, 상을 당해도 가보지 못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취업규칙에는 하루 8시간 근로라고 되어 있지만,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 한 노동자는 "회사에 처음 들어 올 때 '취업규칙'을 보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면서 "나중에 보니 규칙은 그럴듯하게 되어 있는데 지켜지지 않는 내용이 많고, 내용도 회사에 유리하게만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시간외 근무수당은 거의 없었다. 정상 출근 시간은 8시30분인데 새벽에 출항하는 배가 있으면 두세 시간 전에 나와야 하고, 저녁에 출항하는 배가 있으면 남아 있어야 한다. 낮에는 다소 한가하다. 노동조합이 생겨나기 이전에는 임금명세표에 시간외근무수당이 없었다.

마산항 노동자들이 받은 7월 임금명세표를 보니 시간외근무수당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전에 받던 기본급을 거의 절반 정도로 쪼개 시간외근무수당 항목에 넣어 준 것이다. 한 노동자는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법적으로 문제 삼겠다고 하니까 명세표에만 항목을 만들었지 실제 받는 임금은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산항 노동자들은 통영·진해·삼천포항으로 지원을 가기도 하는데, 다음날 그곳에서 또 할 일이 있으면 대기해야 하고 하룻밤을 거기서 자야 한다. 그러나 회사는 시간외 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마산항 노동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지원을 나가면 회사로부터 받는 식비는 9000원이다. 한 노동자는 "식비 1000원을 올리는 데 10년이 걸렸다"면서 "식사도 잠도 배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또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한 노동자는 "배와 배 사이를 건너다녀야 하는데 사다리도 없이 다니다 물에 빠지기도 한다"면서 "비가 오거나 겨울에 살얼음이 얼면 정말 위험하다"고 호소했다.

쟁점 많아 교섭 쉽지 않아

▲ 전국항만예선지부 여수지회가 마산항 부두에 있는 노동조합 사무실에 펼침막을 내걸어 놓았다. ⓒ 윤성효


노-사 교섭이 쉽지 않다. 사측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특히 선장은 조합원이 될 수 없다는 게 사측의 주장이다. 교섭방식도 논란이고 근로조선 개선 등 쟁점이 많다.

최근 노동부는 한 업체의 질의에 대한 회신을 통해 "선장은 구체적인 업무 지휘·감독을 하기에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사측은 이 회신을 근거로 "선장은 사용자다"며 "선장들이 노조를 탈퇴해야 교섭에 응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선장들이 노조 지회 간부를 하고 있다. 여수항의 경우 선장 19명이 노조에 가입해 있다. 노조 지회는 "대법원 판례에 보면 '선장과 선원을 고용하고 해고하는 권한이 선주에게 있기에 사용자와 피용자 관계가 존재한다'고 했다"며 "선장도 노동자로 노조에 가입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별교섭·공동교섭 여부도 논란이다. 노조 지회는 공동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부산 6곳, 울산 3곳의 업체가 공동으로 교섭을 벌여야 한다는 것. 노조는 사무실 제공과 전임자 인정, 교섭위원 전임 보장 등을 담은 기본협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2007년 노조가 결성된 여수·광양항의 경우, 단체협약은 7개 예선사와 공동교섭을 벌이고, 임금은 개별교섭을 벌이고 있다.

부산항과 울산항의 업체측은 노조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방침이며, 더구나 공동교섭은 안된다는 주장이다. 부산의 경우 세 차례 부산지방노동위원회 중재에도 사측은 개별교섭을 주장해 조정불가와 교섭결렬에 이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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