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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정부는 외면하지만 통미봉남 가능성 높아져"

8.15 맞아 홈피에 글... "미북간에 일어나는 일, 국민들에게 당당히 얘기해야"

등록|2009.08.13 19:31 수정|2009.08.13 19:31

▲ 송민순 민주당 의원(자료사진). ⓒ 유성호


송민순 민주당 의원이 13일 "미국 정부는 클린턴이 가져온 '김정일의 설명'을 분석해 현재 준비 중인 포괄적 패키지(comprehensive package)에 이를 접목시켜 보고자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과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 의원은 광복절을 맞아 홈페이지에 올린 '클린턴 방북 이후 우리의 대북정책 : 절반의 광복이 아닌 완전한 광복을 기대하며'라는 글에서 "이러한 정책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은 금년 가을 대북정책을 구체화하기 위한 협의 목적으로 동북아 지역에 아주 의미 있는 고위급 대표단을 보낼 것이라고 한다"면서 이렇게 내다봤다. 

이런 전망과 관련, 송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미국이 이런 구상을 하고 있다고 들었으며, 방문대상에 북한이 포함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미, 가을쯤 동북아에 의미 있는 고위급 대표단 보낼 것"

송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 "분명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면서 "정부가 애써 외면하려고 하지만 지금 통미봉남의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우려했다.

그는 그러나 "대북정책의 궤도를 곧바로 대폭 수정하기에는 우리 정부가 이미 너무 멀리 가버린 상황"이라면서, ▲ 양극단을 배제한 중도적·합리적 견해를 중심으로 국론을 모아야 한다 ▲ 미·북 협상국면의 전개에 대비하려면, 우리 정부는 미·북간에 일어나는 일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국민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 6자회담 재개과정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송 의원의 글 전문.

1. 클린턴 방북의 의미

지난 5일 클린턴 전 대통령이 억류되었던 자국 기자 2명을 데리고 귀국했다. 존스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당면현안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과거 유사한 경우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보거나 클린턴 전 대통령의 현재 위치상, 그가 전달한 견해가 결코 "개인적 차원"이라고만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압박과 협상의 병행 전략에서 협상에 무게를 더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존스 보좌관은 동시에 김정일 위원장이 핵문제와 미·북 관계를 포함한 현 상황에 대해 북측 나름의 상세한 논리를 붙여 설명했으며, 금번 방북결과에 대해 충분한 분석·평가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북측이 클린턴에게 설명한 입장에는 다음과 같은 요지가 포함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敵對視) 정책으로 인해 비롯된 것이다. 둘째, 북한의 행위는 주권국가의 정당한 권리행사이며,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셋째, 6자회담에서 북한은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는데 다른 참가국들이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2008년말 6자회담이 좌초한 것도 미국이 핵 검증의정서를 먼저 합의해야 한다고 부당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상황의 책임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에게 있다. 넷째, 북한은 미국과 언제든 대화할 용의가 있고, 조건만 충족되면 핵을 포기한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다.

미국정부는 클린턴이 가져온 "김정일의 설명"을 분석하여 현재 준비중인 포괄적 패키지(comprehensive package)에 이를 접목시켜보고자 할 것이다. 이러한 정책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은 금년 가을 대북정책을 구체화하기 위한 협의 목적으로 동북아 지역에 아주 의미 있는 고위급 대표단을 보낼 것이라고 한다.

지금 국내적으로도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가 강하게 일고 있다. 북한이 우리 국민과 다른 나라 사람들을 심심찮게 억류해온 행태를 결코 용인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이 한반도 현실의 일부이다. 바로 그 현실 때문에라도 남북간에 대화의 채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광복절을 계기로 남북대화를 위한 설득력 있는 메시지가 나와야 할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2. 우리 대북정책의 현주소와 문제의 원인

금년 2월 필자는 6자회담 2.13합의 2주년을 맞아, 우리가 북핵문제에 있어 주도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미국측이 "이러저러한 상황을 감안해 여차저차한 방식으로 북한과 협상하고자 하니, 한국도 이해하고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할 때가 올 것이며, 우리가 마냥 강경일변도로만 나간다면 그 때 가서 우리는 마지못해 끌려가는 형국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여러 사람들이 외교안보정책, 특히 대북정책의 경우 충분한 검토를 거친 후 점진적으로 조정해야만 우리의 운신의 폭을 확보할 수 있다고 조언하였지만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에 급급해 온 나머지 지금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매우 좁아져 있다. 지나치게 국내정치적 목적에 함몰된 나머지 "잃어버린 10년" 구호 하에서 "무엇이든 前정부의 반대"로 하는 것이 대북정책의 기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두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는 시간을 두고 이루어질 것이다. 모든 정책에는 공(功)과 과(過)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 동안 남북간에 있었던 일들은 일방적으로 무시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상호합의에 의해 조정·발전되어야 한다는 기본적 현실이 간과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국내정치 몰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 정부기구(민주평통 사무처)는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바로알기'라는 공식간행물에서 6.15 공동선언은 '뒷돈'의 산물, 10.4는 '무책임한 합의'라고 평가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7월 국회 개원연설에서 밝힌 '남북합의 존중' 발언을 무색케 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남북관계의 단절이 아니다.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되, 다만 그 모양새를 잘 갖춰달라는 것이다. 과거 정부의 정책이라고 무조건 반대하고 폄하하는 것은 정책의 연속성과 효율성을 저해하고 결국 현 정부 스스로가 대북정책의 행동반경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3. 우리의 대응방안

우리 대북정책은 분명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비록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수위의 차이는 있지만, 북한은 일관되게 소위 "통미봉남(通美封南)"책을 시도해 왔다. 정부가 애써 외면하려고 하지만 지금 그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대북정책의 궤도를 곧바로 대폭 수정하기에는 우리 정부가 이미 너무 멀리 가버린 상황이다. 지금 바로 대북정책을 선회한다면 우리 정부가 그 동안 취한 많은 강경조치들과 발언으로 인해 남북관계에서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모양새가 더욱 궁색해지게 될 것이다.
누구를 탓할 것 없이 한국이 지금 이런 딜레마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국민적 합의 도출
민주정부는 단합된 국민적 지지가 있어야 정책의 추진력과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정서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대북정책의 수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앞서 지적한 사례와 같은 국내정치적 목적의 선전은 국민의 분열을 가져와 결과적으로 우리 대북정책의 힘을 잃게 만든다. 정부는 외교안보를 국내정치 활용에 치중하는 것을 자제하고 양 극단을 배제한 중도적·합리적 견해를 중심으로 국론을 모아야 한다.

2) 솔직하고 당당한 자세

정부는 국민적 합의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면서, 동시에 솔직하고 당당하게 국민들에게 대북정책의 적절한 수정 필요성을 설득해야 한다. 클린턴의 방북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순수히 개인적인 성격"이며 미국의 대북정책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만 강조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의 방북이 어떻게 백악관 및 국무부와 사전 조율을 거쳤고, 그가 전달한 "개인적 견해"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그가 듣고 온 북측 설명(비록 기존 입장으로부터 특별한 변화가 없다 하더라도)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어떤 변수로 작용하게 될지 우리 정부가 잘 파악해야 할 것이다.

미·북 협상국면의 전개에 대비하려면 우리 정부는 굳이 미·북간에 일어나는 일의 의미를 축소도 확대도 할 필요가 없다. 외교정책은 미래를 조심하면서 당장의 정보뿐 아니라 예측되는 정보까지 체계화하는 지혜에서 나온다. 있는 그대로를 당당하게 국민들에게 이야기하면 된다. 대북정책을 전면 선회하거나 당장 압박을 걷으라는 것이 아니다. 현재 정부의 입장에서 최선의 방안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는 차분하게 이행하되, 대화와 타협을 통한 남북관계의 문을 좀 크게 여는 것이다. 미·북간 협상이 6자회담 틀 내(內)냐 외(外)냐 하는 것은 결국 그리 중요치 않게 될 것이다. 6자회담의 안과 밖, 양자와 다자간의 선후(先後) 간에는 다양한 형식의 탄력적 배합이 가능하다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3) 6자회담 재개과정에서의 주도적 역할

북핵문제 해결이 지연될수록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당사자는 우리이고, 해결의 최대 수혜자도 우리다. 6자회담이 3단계 핵폐기 과정에 진입할 수 있도록 엔진과 가교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

지금 미·북 양측은 물론 우리 정부도 기존의 6자회담 협상방식으로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는 한반도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로, 분리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핵무기 보유 전망국가"로 분류하는 것이 맞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가"의 문턱을 넘어가지 않도록 현 상태에서 동결시키고, 동시에 한반도 문제 해결과정과 함께 북핵 능력을 폐기시키는 해결구도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미 양국정부도 이 점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언제든 상황 진전이 이뤄질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의사를 확인"해 주었기 때문에, 북한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기 때문에, 그래서 각각 핵폐기와 관계정상화 협상에 나선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한반도의 주인이 대한민국이라는 점이다. 주(主)와 객(客)이 바뀌지 않도록 하지 않아야 한다.

4. 한반도 구성원 모두의 광복을 기대하며

북한의 핵물질과 기술을 한반도 외부지역으로 이전되는 것을 차단하는 봉쇄(containment)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소극적 논리는 수용할 수 없다. 외부로 이전만 되지 않는다면 북한의 핵능력 향상은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 좁은 한반도에서 실제 핵무기를 보유하는 북한을 머리맡에 두고 함께 살아갈 수 있겠는가.

광복 64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절반의 광복 속에 살고 있다. 북측 주민들은 정치적·경제적으로 진정한 광복을 맞이하고 있지 못하다. 남측 주민들도 휴전선에 갇힌 섬 아닌 섬나라 속에서 안보불안을 짊어진 체 살아가고 있다. 어떤 논리를 대고, 어떤 위안을 갖다 붙여도 한반도 구성원들은 반쪽 광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문제의 해결, 즉 궁극적 통일을 이루어 절반이 아닌 완전한 광복을 맞이할 수 있도록 국민적 합의와 정부의 용기있는 선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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