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청년들'의 연대 제의...뭔데요?
[서평]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지행네트워크 지음)
▲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지행네트워크 지음)겉그림. 난장 펴냄. 2009.7. ⓒ 난장
작은 일상에서조차 늘 바빠서 그리고 섣불리 나서기 힘든 여러 제약 때문에 이른바 서민들은 '거꾸로 가는 세상'에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무리 충격을 주는 일이 생겨도 겉보기엔 사람들이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좀 살살 하지' 하는 정도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모습이 그 한 예라고나 할까. 그런데, 재밌는 건 그런 불편한 심기들이 조용하면서도 깊숙이 사람들 마음에 자리 잡은 뒤 어느 순간 불 일듯 퍼지곤 한다는 것이다. 탁, 하고 한 번 쳐주는 어떤 분명한 계기가 생기면.
모르긴 몰라도 지금껏 우리는 어지간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국회, 행정부, 거기다 사법부를 '대신하여' 나라 살림에 참여(!)하겠다는 포부를 필요 이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발 빠르게 주고받는 수단이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나라 살림 제대로 못한다고 국회와 행정부를 질타하는 목소리는 엄준한 경고와 질타 이상으로 커지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난 해 5,6월 이전에도 '촛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여야 한다는 뜻을 꽉 채운 '촛불'은 분명 지난 해 5,6월 전후였다. 재차 말하지만, 여하튼 우리 사회엔 이미 '촛불'이 꾹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촛불'로 이름 지을 수 있는 우리 사회 새로운(?!) 민주주의 풍토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아니, 어떻게 흘러가야 할까. 여전히 중요한 사안 혹은 관심 가는 사안마다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반복할 때마다 그것을 모아들여 대한민국형 '직접' 민주주의 토양으로 쌓아가는 일은 얼마나 잘 진행되고 있을까. 애써 나서고 애써 일구어 온 여러 가치들을 얼마나 '지금 이후'를 위해 꾸준히 키워왔는가 말이다. 이것은 바로 이 시대 지식의 의미, 지식인의 자리와 역할을 묻는 대목이다.
지식협동조합, '꺼지지 않는 촛불'을 위해 '꺼지지 않는 심지'를 꿈꾼다?
이 대목에서 한 마디 하려는 이들이 있다. '불량청년들'이라고 불리는지 아니면 스스로 그렇게 부르고 다니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식의 의미, 지식인의 자리와 역할을 묻는 이 대목에서 조금은 뜬금없이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고 외치는 세 사람의 목소리가 있다. 내놓는 이름은 하나, 바로 '지행네트워크'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따로 일수 없고 일시적이어서는 안 되며 누구는 포함하고 누구는 빼는 제한적인 것이어서도 안 된다, 하는 뜻을 지닌 이름이라고 할까. 그런 뜻이겠거니, 하며 그이들이 내놓은 책을 보자하니 그 제목이 바로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난장 펴냄, 2009)이다.
책은 '배우며 행동하기, 행동하며 배우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지행(知行)'을 떠올리면 된다. 그럼 '네트워크'는 무엇인가. 그건 '연대'이다. 어쩌다 한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고 깊이 있는 끈끈한 연대이다. 우리 삶과 깊숙이 맞닿은 연대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받아 그 범위 안에서만 복잡스레 떠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갖고 '지금 이후'를 바라보며 그 결과물들을 꾸준히 '함께' 쌓아가는 연대이다. 다양함이 없을 수 없다. 하여, 이들은 '연대' 그러니까 '네트워크'라는 이름을 달은 것 같다.
현행 민주주의에 대한 끝 모를 회의와 토론 그리고 행동이 우리 사회에서 거듭되는 것을 보며, 지행네트워크는 추천사에 따르면 '비주류 지식인의 몽상과 우정'을 행동에 옮기기로 했나 보다. 기존 질서 이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며 되도록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이들을 '대신하여'(?) 지행네트워크는 자의반 타의반 '불량청년들'이 되기로 한 것 같다. 이들이 하는 말이 그대로 다 옳은 것은 아닐지라도, 현행 민주주의가 그마저도 거꾸로 가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 없다는 목소리들을 접한 이 '불량청년들'이 의외로 '대안공간'을 제안했다.
"대안공간은 기성의 체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각으로 체계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런 공간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구성주체들이 스스로 '소수집단 되기'라는 약소자minority의 감수성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성적으로 현실을 분석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세상의 부조리를 알고 있는 이들은 이미 많다. 그 부조리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세상과 싸우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용해 세상의 부조리를 심화시키기까지 한다. 문제는 앎이 아니라 삶이다. 앎이 삶과 더불어 가려면 세상을 받아들이는 태도로서의 감수성이 바뀌어야 한다. 이 감수성의 변화에 기반해 주류적 관점이나 문화, 이미 조직화된 체계를 거부하고 '이탈'을 감내해야 약소자의 주체성이 형성된다. 이를 위해서는 주체에게 안정된 자리나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상황에서 벗어나, 세계를 변화시킬 대안적 인식 틀을 갖기 위한 고투가 필요하다."(<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 '프롤로그', 22)
2007년 탄생했다는 지행네트워크가 내놓은 이 책은 이들이 실제 고민하고 토론하며 쌓아온 '산 지식'들을 모은 결과물이다. 물론 독자들에게,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을 나름대로 걱정하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좀 더 폭넓은 평가를 바라며 내놓은 책이다.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그 울타리 안에서'만' 움직이는 지식인사회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하고 그렇게 행동하려 한다. 지행네트워크를 시작한 '불량청년들' 말이다.
이명원, 오창은, 하승우 세 사람이 쓴 글들을 엮어 만든 이 책은 네 가지 주제로 나뉘어 있다. 이들은 우선, 이 시대 지식인의 위치와 역할을 묻는다. 이들은 또, '지난 시대'에 묶여 신음하는 사람들을 살펴 문제점과 대안을 찾는다. 그리고 이들은 '약한' 민주주의(대의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를 지나 '강한' 민주주의(직접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에 대해 논의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농민공동체'에 대한 논의를 통해 자치와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풀뿌리민주주의를 좀 더 분명히 전달하려 했다.
지행네크워크는 "지식협동조합은 '지식의 공공성'을 확립하는 좋은 방안"이라고 말하며 올바른 민주주의를 향한 발걸음들 앞에 '지식협동조합'을 제안했다. "학문과 일상을 결합하고 실천과 이론이 발효하는 민주주의적인 참여공간은 과연 누가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물었던 지행네트워크가 결론으로 내놓은 종합 제안이라고나 할까. 앞서 말했듯, 대의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대세로 여기거나 유일한 형태로 여기는 주장들을 거부하면서 말이다.
민주주의가 뒷걸음치는 것도 모자라 숨통이 막힐 지경인 지금, '배우며 행동하기, 행동하며 배우기'를 제안하고 실천하며 권유하는 지행네트워크가 제안하는 '지식협동조합'은 분명 의미 있어 보인다. 이 책은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이다.
덧붙이는 글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 지행네트워크(이명원·오창은·하승우) 지음 / 난장 펴냄 / 2009.7. /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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