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재의 아웃사이더 같은 시론
오피니언 리더의 수준 떨어지는 자유에 대한 인식
최근 영화배우 김민선씨의 피소 사건에 대한 갑론을박이 화제이다. 그 중 변희재 실크로드 CEO 포럼 회장의 시론은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아주 천박한 인식을 드러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김민선씨의 피소 사건을 지켜보면 과거에 미국에서 로이 피어슨 판사가 한인 세탁소 주인을 상대로 한 남소 사건이 떠오를 만큼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것은 명백히 소송을 남용한 사례로 기억되어야 할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소위 언론인이자 자칭 오피니언 리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 연예인의 입놀림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말하고 있다. 일개 연예인에게 공적 발언의 조건까지 따져가며 그녀의 지적 수준은 물론 연예인들의 기본적인 명예까지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변희재씨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민선씨의 사례는 자신이 그토록 정당하게 강변했던 공적 발언의 '깜'도 안 되는 것을 말이다. 김민선씨는 스스로 자청한 후 언론에 인터뷰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방송매체나 신문매체를 통해 의사를 표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까맣게 모르는 듯 하다. 김민선씨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짤막하게 의견을 남겼을 따름이다. 즉, 그토록 조건을 달고 싶어했지만 애초부터 공적 발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물론 연예인의 미니홈피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므로 사회적 파급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명백한 것은 변희재씨도 말했던 것과 같이 공적인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 하는 연예인이라는 점이다.
변희재씨 본인은 전문성과 책임성, 일관성, 적합성을 말하지만 본인 스스로 설문 조사의 표본을 전체의 모습인 양 호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15%라고 700만명이 영향을 받았다? 학창 시절에 통계 수업을 들어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교수와 강사들이 통계의 오류에 대해 언급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교수나 강사들은 표본이 어떠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과 결과가 그렇다하더라도 전체의 모습과 동일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얼추 비슷한 모습을 추려내는 정도가 바로 설문조사라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게 한 설문인지조차 밝혀지지 않는 설문조사로 마치 국민의 15%인 700만명이 영향을 받았다는 변희재씨는 통계 수업을 들어본 일이 없는 것 같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변희재씨는 공적 발언이 아닌 것에 대해 공적 발언의 책임을 묻는 논리적 결함마저 보이고 있다. 그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또한 박경신씨에 대한 적합성 여부는 무슨 말인가? 그가 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병역 문제와 같은 국민의 의무와 권리 문제만 아니라면 표현의 자유에서 그의 신분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최근에 사람들이 책임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한다. 김민선씨에 대해 전여옥 의원이 사실에 기초한 것인지 묻는 발언을 포함하여 변희재씨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논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의사 경중을 떠나 책임을 먼저 따지는 것은 자유로운 의사 개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억제하는 것과 같다. 특히나 이번 소송은 사실상 김민선씨의 의사와 피해의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없으므로 패소할 가능성이 높지만 오프라 윈프리가 미국 축산업자들에게 당했던 것처럼 소송을 통한 괴롭히기와 다름 아니다. 김민선씨는 비록 승소하더라도 앞으로 사회적 의견을 개진할 용기를 잃게 될 것이다. 그것이 올바름일까?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민주주의의 대표인 국회의원과 한 젊은 언론인의 인식은 천박하다 못 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 하는 듯 하다. 민중이 국가에게 가지는 의문, 한 개인이 조직에게 가지는 의혹 그리고 소수가 다수에게 제시하는 비판들은 언제나 완벽할 수 없다. 민중 개개인의 힘은 미약하고, 국민 한 사람의 의견은 개인 스스로의 지적 판단에 의해 나오는 것이므로 부정확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것에 개별적으로 정확성을 따지며 허위사실 유포라는 법적 책임을 물으며, 사회적 권위와 신분의 적합성을 따지는 것은 권위주의로 무장한 제약이자 차별이다.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광우병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여야 의원들마저 그 일에 대해 말할 수가 없다. 전문성의 부재라는 변희재씨의 논리에 맞아 떨어진 사람들이다. 여야 국회의원들 중에서 생명공학 또는 의학, 수의학을 전공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책임이 큰 것은 아무런 합리적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안전하다고 말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닐까?
변희재씨에게 묻는다. 오늘날 설렁탕 집에 보이는 A4 용지의 '미국산 쇠고기를 쓰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어떻게 보는가? 그것을 믿는가? 언제부터인가 식당 주인의 자율에 의해 원산지 표기가 이루어졌다. 소비자를 기만하더라도 소비자는 수사할 권한도 없으므로 알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쇠고기 판매에 대한 불신은 누구의 책임이 더 클까?
지적 수준을 이야기하는데 과연 변희재씨는 광우병과 관련된 도서 한 권이라도 읽었는지 의심스럽다. 펜으로 한 사람의 표현의 자유와 특정 계층과 직업의 사람들의 명예를 짓밟는 일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면 그저 아웃사이더처럼 살다가는게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변희재씨는 알아야 한다. 자신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진리를 발견한 개인에 대한 생각들은 단순한 미학으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그러한 관점으로부터 나오는 시론들은 변희재씨에 대해 화제가 되었던 평가를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음도 알아야 한다.
김민선씨의 피소 사건을 지켜보면 과거에 미국에서 로이 피어슨 판사가 한인 세탁소 주인을 상대로 한 남소 사건이 떠오를 만큼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것은 명백히 소송을 남용한 사례로 기억되어야 할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소위 언론인이자 자칭 오피니언 리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 연예인의 입놀림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말하고 있다. 일개 연예인에게 공적 발언의 조건까지 따져가며 그녀의 지적 수준은 물론 연예인들의 기본적인 명예까지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변희재씨 본인은 전문성과 책임성, 일관성, 적합성을 말하지만 본인 스스로 설문 조사의 표본을 전체의 모습인 양 호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15%라고 700만명이 영향을 받았다? 학창 시절에 통계 수업을 들어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교수와 강사들이 통계의 오류에 대해 언급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교수나 강사들은 표본이 어떠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과 결과가 그렇다하더라도 전체의 모습과 동일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얼추 비슷한 모습을 추려내는 정도가 바로 설문조사라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게 한 설문인지조차 밝혀지지 않는 설문조사로 마치 국민의 15%인 700만명이 영향을 받았다는 변희재씨는 통계 수업을 들어본 일이 없는 것 같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변희재씨는 공적 발언이 아닌 것에 대해 공적 발언의 책임을 묻는 논리적 결함마저 보이고 있다. 그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또한 박경신씨에 대한 적합성 여부는 무슨 말인가? 그가 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병역 문제와 같은 국민의 의무와 권리 문제만 아니라면 표현의 자유에서 그의 신분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최근에 사람들이 책임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한다. 김민선씨에 대해 전여옥 의원이 사실에 기초한 것인지 묻는 발언을 포함하여 변희재씨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논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의사 경중을 떠나 책임을 먼저 따지는 것은 자유로운 의사 개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억제하는 것과 같다. 특히나 이번 소송은 사실상 김민선씨의 의사와 피해의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없으므로 패소할 가능성이 높지만 오프라 윈프리가 미국 축산업자들에게 당했던 것처럼 소송을 통한 괴롭히기와 다름 아니다. 김민선씨는 비록 승소하더라도 앞으로 사회적 의견을 개진할 용기를 잃게 될 것이다. 그것이 올바름일까?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민주주의의 대표인 국회의원과 한 젊은 언론인의 인식은 천박하다 못 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 하는 듯 하다. 민중이 국가에게 가지는 의문, 한 개인이 조직에게 가지는 의혹 그리고 소수가 다수에게 제시하는 비판들은 언제나 완벽할 수 없다. 민중 개개인의 힘은 미약하고, 국민 한 사람의 의견은 개인 스스로의 지적 판단에 의해 나오는 것이므로 부정확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것에 개별적으로 정확성을 따지며 허위사실 유포라는 법적 책임을 물으며, 사회적 권위와 신분의 적합성을 따지는 것은 권위주의로 무장한 제약이자 차별이다.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광우병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여야 의원들마저 그 일에 대해 말할 수가 없다. 전문성의 부재라는 변희재씨의 논리에 맞아 떨어진 사람들이다. 여야 국회의원들 중에서 생명공학 또는 의학, 수의학을 전공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책임이 큰 것은 아무런 합리적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안전하다고 말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닐까?
변희재씨에게 묻는다. 오늘날 설렁탕 집에 보이는 A4 용지의 '미국산 쇠고기를 쓰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어떻게 보는가? 그것을 믿는가? 언제부터인가 식당 주인의 자율에 의해 원산지 표기가 이루어졌다. 소비자를 기만하더라도 소비자는 수사할 권한도 없으므로 알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쇠고기 판매에 대한 불신은 누구의 책임이 더 클까?
지적 수준을 이야기하는데 과연 변희재씨는 광우병과 관련된 도서 한 권이라도 읽었는지 의심스럽다. 펜으로 한 사람의 표현의 자유와 특정 계층과 직업의 사람들의 명예를 짓밟는 일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면 그저 아웃사이더처럼 살다가는게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변희재씨는 알아야 한다. 자신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진리를 발견한 개인에 대한 생각들은 단순한 미학으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그러한 관점으로부터 나오는 시론들은 변희재씨에 대해 화제가 되었던 평가를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음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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