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MB 8.15 경축사, 대북메시지는 대선 공약 '재탕'

[분석] 6·15 10·4 선언 전혀 언급 안 해

등록|2009.08.15 17:00 수정|2009.08.15 18:37

▲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64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8·15 경축사에서 밝힌 대북 메시지의 핵심은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이라는 전제 아래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국제협력 프로그램을 적극 실행"하고 "남북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고위급 회의를 설치하고 관련국 및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경제·교육·재정·인프라· 생활향상 분야에 걸친 대북 5대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평화구상'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상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10년 안에 북한의 1인당 소득이 3천달러가 되도록 돕겠다"는 이 대통령의  대선공약 '비핵·개방 3000'의 재탕이다.  '개방'을 전제조건으로 달지 않은 점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이미 '비핵·개방 3000'론자들은 과거와 달리 '비핵'과 '개방'을 단계론이 아니고 동시과제로 정리했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인 상황에서, 북한의 핵포기를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아무런 정책 가치가 없는 공약이라는 비판을 받아 온, '비핵·개방 3000'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그 대상인 북한이 "일방적인 것", "흡수통일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며 극심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 방안을  집권2기를 시작한다는 자리에서 다시 밝힌 셈이다.

이 대통령의 이날 경축사 중 "재래식 무기 감축을 논의하자"는 것은 이 정부에서는 처음 나온 언급이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성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역사적 맥락과 현재의 국면에 대한 이해 부족"

▲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 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청와대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이 재래식무기에서의 열세 때문에 핵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런 말이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상황과는 맞지 않다"면서 "군비통제는 우선 북미 간 갈등이 해소되고 남북 간에도 정치적 신뢰가 쌓여서 평화체제에 대해 논의하게 될 때, 그 틀 안에서 제기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북미 간에, 남북 간에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에서는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평화구상'과 '재래식무기 감축' 협상을 묶어 한국판 '포괄적 패키지딜'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이를 성사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 한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경축사에는, 북한에 사활적인 문제인 체제안전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뜻도 담겨있다"고 강조했다. 경축사 중 "북한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고 남북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면 한다"는 부분이다.

문정인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북한은 비핵화를 포함해 자신들의 체제안전의 주체와 논의대상을 남한이 아니라 미국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는 언급"이라며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적 맥락과 현재의 국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이후 북미 대화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이번 8·15경축사에서 6·15, 10·4선언에 대한 분명한 이행 의지를 밝혀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으나,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북한이 뭔가 한다면 우리도 하겠다는 것...구체성 없다"

또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문제는 물론이고 대북 인도지원 재개, 개성공단 활성화,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또 14일에 낸 사전 보도자료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언급했지만, 이 표현도 빠졌다.

이 대통령은 경축사 말미에 "우리 정부는 언제, 어떠한 수준에서든 남북 간의 모든 문제에 대해 대화와 협력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말해, 남북정상회담 제안을 시사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그런 것은 아니고 그 수준까지 문을 열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경축사의 3대 주제였던 '친서민-중도실용', '선거구제 개편 등 정치개혁', '대북정책' 중에서 전체적으로 대북정책의 비중이 가장 적었다.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북미관계와 북일관계의 변화조짐은 보이지만 실제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큰 틀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변화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대북 메시지의 비중이 줄어든 데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귀환이 지연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대남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은 상황에서 볼륨을 올리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 대통령의 경축사에 대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면서 "전체적으로 북한이 뭔가를 한다면 우리도 하겠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구체성도 없고, 이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어법"이라고 평가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