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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롱게 그러지, 여그가 살기 좋은 디여!"

64회 광복절에 열린 '나포면민 화합 한마당 잔치'

등록|2009.08.16 15:31 수정|2009.08.17 14:03

▲ 군산 국악원 소속 명창들. 축구경기가 모두 끝나고 조용해진 운동장에 흥겨운 판소리 가락으로 흥을 돋우고 있습니다. ⓒ 조종안






어제(8월15일)는 7천만 겨레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인데요. 제가 사는 군산 나포면 주민들에게는 고된 농사일에서 해방된 날이기도 했습니다. '면민의 날'이어서 '8·15 64주년 나포 면민 화합 한마당 잔치'가 열렸거든요.

마을 주민들은 바쁜 일손을 잠시 놓고, 손자·손녀들과 함께 운동장에 나와서 풍물패 한마당과 판소리 공연도 감상하고, 자기 마을 대표선수들 응원도 하면서 오랜만에 만나는 이웃마을 사람들과 즐겁고 오붓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는 작년 8월19일에 이사해서 모르고 있었는데 14일 저녁 안내방송을 듣고 '면민의 날'이 8월15일이라는 것을 알았고, 듣는 순간 호기심이 동했는데요. 시골의 면 단위에서 광복절을 '면민의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개최한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녀노소가 하나 되었던 운동장

안내 방송에서 15일 오전 8시까지 나포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나와 달라고 하기에 아침 7시30분에 일어나 허겁지겁 카메라를 챙겨서 갔지요. 그런데 실제 행사는 10시에 시작한다기에, 집으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이다 시간에 맞춰 갔습니다.

▲ 축구 경기장과 관객석 사이에서 훌라후프로 기차놀이를 하는 꼬마들. 객석에서 누가 부르니까 돌아보고 있는데요. 무척 귀엽더군요. ⓒ 조종안




운동장에 도착하니까 군산 시장이 참석했던 광복절 1부 기념행사는 끝났고, 마을대항 축구경기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훌라후프를 가지고 기차놀이를 하는 꼬마들이 눈길을 끌었는데요. 말 그대로 남녀노소가 하나 되어 어울리는 한마당 잔치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잔치마당에서는 우리 소리와 가락이 빠지면 안 되는 모양입니다. 노인이 많은 시골이니까 더하겠지요. 행사 시작을 앞두고 풍물패가 한바탕 흥을 돋우고, 군산 국악원에서 나온 미인들이 고수의 장단에 맞춰 판소리를 구성지게 부르니까 신바람 난 주민들이 앞으로 나와 춤을 추는 모습이 어찌나 흥겨운지 끼어들고 싶더군요.

머리에 고깔을 쓴 풍물패 단원이 인사를 하기에 봤더니 마을 슈퍼 아저씨였는데요. 아주머니는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해서 가게는 어떻게 하고 두 분이 나왔느냐니까 "오늘 같은 날 장사가 되간듀, 기냥 애들한티 맺기고 왔어유"라고 하더군요. 마을 잔치이자 주민 단합을 위한 행사임을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 본부석 옆에 진열된 상품과 경품들. 1등이 가져갈 냉장고보다 가지런하게 놓인 삽들과 상자 안의 호미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 조종안




본부석 옆에는 상품과 경품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는데, 농촌에서 열리는 행사답게 삽과 호미들이 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아주머니는 행사 도중 본부석에 오더니 호미 하나만 달라고 사정하더군요. 조금 부족하면서도 순진한 우리의 참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400m 이어달리기와 공굴리기는 하지 않아 못내 아쉬웠습니다. 배턴을 넘겨주면서 땅에 떨어뜨리는 장면과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공 굴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실내에서 하는 윷놀이는 시원한 강당에서 열렸는데요. 말을 놓는 방법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더운지 구경만 하고 있어도 땀이 흘렀는데요. 경기요원들의 친절한 얼음물 서비스와 시원한 나무그늘, 그리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울어대는 매미들의 합창이 더위를 식혀주는 것 같았습니다.

▲ 서포에서 농장을 경영한다는 아저씨(68세) 부부. 사진이 무척 재미있는데요. 두 분 모두 무척 젊어보였습니다. ⓒ 조종안



둥그렇게 둘러앉아 집에서 해온 음식과 과일을 권하면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아 구경하는 저도 상쾌했는데요. "이양반 간첩인개벼!"라며 사진촬영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따지는 분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서포에서 아내와 농장을 경영한다는 조재영(68) 씨는 낮술을 몇 잔 했는지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요. 저에게 "어디서 나왔간 그렇게 사진을 찍어대쌌소?"라고 묻기에 명함을 건네니까 음식을 준비하는 아내를 부르더군요. 아내가 "바쁜디 왜그러요?"라고 물으며 다가오니까 얼른 가슴에 품더니 "우리 기념사진 하나 찍어주쇼!"라고 말하는 순간 창피하다며 고개를 돌리는 아주머니 모습이 수줍음 잘 타는 시골소녀 같았습니다.   

구슬땀을 흘리며 축구경기에 임하는 젊은이들의 열기도 보기 좋았는데요. 어쩌다 40-50대로 보이는 중년 아저씨들이 골이 터질 때마다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선수로 뛰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면민들에게 인사하는 면장. 인사를 “제가 키가 작아서 죄송합니다”로 시작했는데요.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면민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 조종안




노래자랑 시간 중간에 사회자의 권유로 무대에 오른 장남수(54세) 면장은 "광복 64주년을 맞이해서 우리 나포면 주민들의 단합과 협동심을 기르기 위해 체육대회를 하게 되어 감사드린다"면서 "그동안 농사짓느라 고생한 주민 여러분, 나포면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갑시다!"라고 당부했습니다.

인사가 끝나니까 주민들이 박수를 치면서 노래 한 곡 부르고 내려가야 한다니까 '나훈아'의 '물래방아도는데'를 멋들어지게 부르면서 함께 어울렸는데요. 면장이 아니라 이웃에 사는 주민 같았습니다.
  
주민들에게 들어본 '면민의 날' 역사

사진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면민의 날' 역사가 얼마나 되었는지 궁금하더군요. 해서 그늘에서 매미울음소리를 감상하며 더위를 식히는 할아버지들에게 여쭤봤더니 "몰롱게 그러지, 여그가 살기 좋은 디여!"라고 하시더니 "어렸을쩌으 축구 시합허고 윷놀이 구경허든 걸 생각허믄 해방 이후부터가 맞을 꺼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늘에서 쉬고 있는 젊은 할아버지와 늙은 할아버지들. 말씀이 구수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대화를 길게 하려고 했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 조종안



30년 전부터는 다섯 개 마을(문화, 교동, 등동, 강정, 외곤)이 소속된 '옥곤리' 자체로 해마다 축구경기를 한다면서 리(里) 단위로 체육대회를 여는 곳은 전국에서도 몇 개 안 될 것이라며 자랑하시더군요.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할아버지 같았습니다.

몇 년 전까지 문화마을 부녀회장을 지냈다는 박선희(52세)씨에게, 노래자랑은 언제부터 열리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하니까, 마을 대항 축구시합과 윷놀이, 경품추첨 등을 해마다 해왔는데, 경기만 하니까 분위기가 너무 딱딱하다고 해서 10여 년 전부터 함께 해오고 있다고 하더군요.

부녀회장 때는 매월 2회씩 신문도 발행했다는 박선희씨는 운동장에 나가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어울려야 하는데 참깨를 말리느라 참석하지 못해 아쉽다며, 매년 열어오던 행사가 몇 년 전부터 해를 걸러 열린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면민의 날

ⓒ 조종안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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