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송진우 은퇴, 그가 남긴 위대한 역사
"한결같은 색깔을 내는 소나무"... 동료들을 위해 희생했던 훌륭한 선수
▲ 송골매의 눈빛, 송골매의 날갯짓1999년은 그런 점에서 송진우의 선수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한 고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때까지 '강하게, 더 강하게'를 외치며 달려왔던 송진우는 그해부터 '의도적으로 느리게 던지는 공'인 서클체인지업을 던지기 시작했고, '약하게, 약하게, 갑자기 강하게'를 구사하는 선수로 변신할 수 있었다. ⓒ 한화 이글스
송진우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남긴 족적은 쉽게 잊히지 않을 위대한 역사이다. 통산 210승 등 무수한 기록을 남겼다. 지금도 안타까운 것은 송진우 선수가 200승을 거둔 2006년 8월 29일 기아전 경기를 어느 방송사도 중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승이라는 한국 프로역사에 위대한 역사를 이룩하는 장면을 우리들은 녹화화면으로만 볼 수 있었다.
투수는 타자보다 선수 생활을 오래 하기 힘들다. 타자들은 몸관리를 잘하면 마흔 살이 넘을 때까지 생활을 할 수 있지만 투수는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면 최동원 선수(32살-롯데, 삼성), 선동렬 선수(36살-해태, 주니치), 김시진 선수(34살-삼성, 롯데), 이상훈 선수(34살-(LG) 은퇴 나이를 보면 송진우 선수가 몸관리를 얼마나 철저히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지금과 그때는 프로야구 환경과 선수 관리가 달랐다고 할 수도 있다.
철저한 몸 관리... 선수로서도, 인간적으로도 훌륭했던 송진우
▲ 세광고 시절의 송진우1983년 제 36회 황금사자기. 세광고가 야구부 창설 29년 만에, 그리고 충북지역 고교 역사상 최초로 서울에서 열린 전국 야구대회 우승을 이루어냈던 그 역사의 중심에 서있던 것이 경남고와 벌인 결승전에서 완투승을 거둔 2학년생 송진우였다. ⓒ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송진우 선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차칸늑대'가 표현한 "한결같은 색깔을 내는 소나무"라는 비유에 동의할 것이다. 그는 교만하지 않았고, 야구를 사랑했으며, 무엇보다 선수들 권리를 귀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유명한 '회장님'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재벌의 회장님은 영광과 부를 상징하지만,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회장님은 영광과 돈이 아니라 자기 희생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송진우 선수를 존경하는 이유는 프로야구 선수로서 남긴 위대한 기록과 함께 동료 선수들을 위해 자기가 먼저 짐을 진 것 때문이다.
'eujin'는 "이글스 경기에 송진우 선수가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기립하여 회장님을 맞이하곤 했습니다. 등판만 해도 우리에게 힘을 주던 회장님!! 그 모습을 못 보게 된다니 너무 아쉽습니다. 깨지기 어려운 대단한 기록, 대단한 우리 회장님"라며 "대단한 지도자로 거듭나리라 믿습니다"고 했다.
지도자 수업을 받은 후 위대한 선수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다시 태어나 한국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힘쓰는 송진우 선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송진우 선수가 아니라 송진우 코치, 송진우 감독이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둘이고싶다'는 "당신은 진정한 야구인이라"며 "한국야구계의 산 증인으로서, 또한 사생활도 깔끔했던 사람으로 선후배 야구인 및 일반인들에게조차 참으로 존경 받는 야구인이었소, 앞으로 현역으로는 님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내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되어 있을 것이요"라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송진우 선수에게 찬사를 보냈다.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다. 송진우 선수가 프로야구 선수로서 남긴 위대한 기록들, 그 기록은 다시 깨어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남긴 기록은 대한민국 프로야구에 길이 남을 역사이다. 이제 선수로서는 볼 수 없지만 운동복을 입고 야구장의 지휘관으로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회장님, 당신은 늘 푸른 소나무로 남을 역사입니다.
▲ 한국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 격인 '성구회' 초대 회원이 된 송진우 선수(왼쪽은 양준혁, 오른쪽은 전준호 선수).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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