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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놓치는 미숙한 '지적수준' - 변희재 글을 접하며

지적수준이 안되는 사람들은 정작 누구인가

등록|2009.08.17 09:04 수정|2009.08.17 09:04
먼저 밝히는 점으로 나 역시 김민선 글의 사회적 책임성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그런 식의 글이나 태도를 지지하지는 못한다.  이 글의 주제는 촛불정국에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연관성도 아니고 연예인의 '공인'성 여부도 그의 글의 사회적 책임성을 따져보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논쟁의 언어' '비판의 언어'로써 차용된 '지적수준'이라는 말, '지적수준이 안 된다'라는 언어의 '적합성'을 따져보기 위함이고 그 합리적 '근거'를 찾아보고자 함이다.  찾기 어렵다면 최소한 그러한 '폭력적 언어'가 왜 등장하게 되었을까 그 배경을 추적해 보기 위함이다. 

우선 난 변희재가 국제 무역관계가 담보하는 구체성이나 한미FTA에 대해, 미국 육가공산업의 실체나 수출입 유통 검역시스템에 대해, 미국산 소고기의 위생성이나 광우병 연관성에 관하여 전문가로 '공인'되어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가 그 분야에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그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였거나 논문을 쓴 바라도 있는가?  촛불정국과 광우병 논쟁을 미학적으로 분석하였는지는 몰라도 결국 변희재 그도 그 분야에서 만큼은 문외한일 뿐이고 그 점에서 김민선 정인영과 별반 차이가 크지 않는 처지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의 전공은 미학인데 입시 학과 선택과정에서 그저 미학과를 선택한 것이었는지, 어찌하여 전공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활동 해 해당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는 길을 걷지 않은 채 정치 자영업자 노릇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정치판이 정치학 전공자들만의 공간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머리 돌아가면 죄다 입시 거쳐 고시공부를 하듯 너나할 것 없이 전문분야 경계를 넘어 한마디씩 하는 등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대체로 정치적 고질병을 앓고 있다.  그 와중에 변희재 자신이 정치 사회적 이슈로서 '광우병' 분야에 아니면 연예인들의 발언이나 사회적 영향력을 비판하는 분야에서 '지적수준'을 갖추었다는 듯이 다소 넘사스럽게 주장하고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정치사회적 이슈와 발언, 그 바닥이 언제부터 거기에 끼어들 자격요건으로 지적수준을 요구하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정작 그러한 요구에 걸 맞는 수준 높은 삶을 되돌려 받은 바 없다.  다시 말해 그러한 고난도 지적수준을 갖추는데 투자해야 할 열정과 정신소모에 비해 정치현실은 늘 변화 없는 구역질나는 쓰레기장인데,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변희재 본인과 김민선 및 정진영 사이에 '차이와 다름'이 무엇인지를 비교해 보는 방법으로 '지적수준'의 실체를 분석하는 길 밖에 없겠다. 

우선 '같음'은 양쪽 다 미국산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정국에서 촉발된 쟁점에 발 딛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위에서 지적하였듯 양쪽 다 한미 FTA, 미국산 소고기의 육가공 및 유통과 검역시스템(수출입시스템) 그리고 광우병과의 연관성에 관하여 그들 모두 '전문가'는 아니라는 점도 역시 같은 점이다.  양쪽이 각각 어떤 입장을 주장하고 있거나 (정치적으로) '대변'(당)하고 있다는 점도 같을 게다.  변희재는 글을 쓰고 논쟁을 하는 인터넷 '논객'의 길을 그리고 김민정과 정진영은 연기를 하고 영화를 찍는 '연예인'의 길 그렇게 각자 '직업의 길'을 열심히 걷고 있다는 점도 같다.  이 논쟁에서 의미 있을만한 양자의 입장에 '같음'은 또 무엇이 있을까.  '지적수준'이 쟁점이니 변희재와 정진영이 학과만 다를 뿐 둘 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도 같다.  그러면서도 둘 다 '서울대 학벌'에 연관된 비판적 기술이 있었다는 점도 같다 하겠다. 

두 사이에 '다른 점'은 무엇인가.  변희재는 주로 언론 미디어 출판 분야에서 활동하며 '정치사회적' 이슈나 '대중문화'에 달라붙어 글을 쓰고 발언하고 논쟁하는 그 바닥 사람이다.  김민선과 정진영은 연예 문화 분야 즉 영화 연기 바닥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연예' 전문가로 봐야 할 것이다.  변희재는 과거와 달리 최근엔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같은 상대적으로 보수(매체)쪽에서 그의 글을 다뤄주고 있고, 본인도 진보진영을 비판적으로 대하는 인터넷 매체의 대표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김민선 정진영의 경우는 비록 김민선 글이 무리가 있어 정치적 쟁점이 되었지만 이 쟁점을 떠나면 두 연예인은 특별히 정치활동이나 입장을 드러내는 길을 걸어 온 바 없는 연예인 인듯하다. 

그런데 갑자기 주요하게 등장하는 말이 변희재의 '지적 수준'론이다.  위에서 변희재 그리고 김민선 정진영 사이에 '지적수준'을 판가름할 만한 뚜렷한 아니면 타당한 근거가 존재하는가?  내가 아무리 '지적'이라는 의미와 '지식인'에 대해 개념을 정확히 잡아낼 재간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변희재-김민선,정진영 간에 '지적 수준'을 판가름할 만한 '차이'와 '같음'을 발견해 내기가 어렵다.  그러니 일방적인 '폭력적 언어'로 들리는 건 당연하다.

그저 예상해 보건대 변희재가 의식적 근거로 삼고 있을 법한 '차이'로서 두 가지 차이가 존재는 것 같다.  변희재를 준거로 발생하는 그 차이로는 하나는 '서울대 학벌' 유무의 차이고 다른 하나는 직업분야 즉 '바닥의 차'이다.  그런데, 정진영 역시 변희재처럼 서울대를 나왔음을 상기해 볼 때 변희재가 자신의 학벌에 교만한 나머지 상대방의 학벌을 깔보고 경솔하게 '지적수준'이라는 폭력적 언어로 공격하는 실수를 범하였을까?  서울대 먹물들의 병적 자신감과 변태적 교만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 충분히 그랬을 수도 있다고 짐작은 해 본다. 

그보다는 다른 각도가 있다.  변희재는 김민선 글이 객관성을 결여하여 사회적 파장만을 키웠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그 점을 간과한 채 단순하게 김민선 편을 들어 주고 있는 정진영을 비판해야 했고 그 오류의 원천을 재는 척도로 변희재는 '지적수준'이라는 리트머스지를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변희재가 자신과 논쟁해 온 많은 상대들 누구에게도 그런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언사'를 한 적이 없음을 중시 여겨 볼 때 이번 '지적 수준' 운운은 뭔가 다른 방향의 맥락이 존재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고 다른 내면이 비춰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예상해 보는 방향을 변희재가 대표를 맡고 있는 빅뉴스에 올라온 기사 내용 중 아래 내용에서 발견하며 유의미를 느낀다. 
 
"김민선의 청산가리 발언 750만명 움직여"
미디어워치 허수현 기자, bignews@bignews.co.kr  등록일: 2009-08-15 오전 3:19:08

"이헌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3% 정도면 의미있는 통계수치로 보는데, 15%라는 것은, 그 어떤 지식인이나 정치인의 영향력을 김민선의 발언이 넘어선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대중 연예인들의 영향력을 전면 재검토해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  '지적 수준론'은 '신분 수준론'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발언께나 해 오거나 글 빨 좀 있는 사람들 그들이 소위 '교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든 최근에 급성장한 인터넷 논객이라는 사람들이든 그리고 '사'자 붙은 전문직 종사자들이든, 결국 가방끈 길고 먹물 좀 낀 사람들에게 있어서 연예인들은 그야말로 '딴따라'였다. 

특히 정치 초과잉의 한국사회는 정치영역이 사회 제 가치를 블랙홀처럼 흡수해 내고 있고, 스스로 좀 똑똑하다는 친구들은 죄다 정치판을 기웃거리거나 정치사회적 발언을 해 대야 격(수준)이 깃들어 보이는 그런 병적인 사회다.  하물며 '학벌'께나 쥐고서 한마디 해댈 자격(지적수준?)을 갖춘 것으로 착각하는 주제들에게 정치사회적 이슈는 지적 허세를 우쭐하게 드러내는 깔판이었다.  사실은 너저분하고 구린내 나는 썩어빠진 바닥이지만 그 깔판에 주저 않아 사회를 꼬나보는 고고한 사람들에게 '연예바닥'과 '연예인'들이야 그저 경박하고 왠지 엄중함이 모자라는 '광대' 혹은 '딴따라' 그 자체인 것이다.  이것은 가희 정치성 짙게 밴 '먹물중심 신분사회'의 총화이다.

밖에서 먹물들이 딴따라로 보려는 의도와는 달리 연예계 내부와 연예 기자들의 입장은 다른 듯하다.  일전에 연예인 학벌위조 사건부터 가끔 뜬금없이 기사화 되곤 하는 누구누구 연예인들의 명문학벌 드러내기 기사들.  주인공들은 대체로 연기력으로 승부해야 함을 강조하며 '학벌'은 거추장스러운 것이라고 발언하곤 하지만 그 기사의 의도는 다르게 다가온다.  인기 연예인에게 학벌배경까지 덧씌워 띄우면서 '연예계'도 이제 '수준'이 '충분'함을 증명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반대급부로 해당학교의 동반광고 의도 역시 다분히 드러나곤 하였다.  그런 식으로 학벌이 결합되지 못한 연예인은 그야말로 딴따라 취급이다.  그것은 '학벌 신분사회'의 총화이다.

그런데 진즉 연예 스포츠 분야는 대중들의 다른 형식의 정치적 분출 공간이 되어 주었고 그 주체들은 다른 방식의 정치적 대변자로 변모 되어 왔다.  미국에서 영화배우 레이건이 역사상 최고 인기 있는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스와즈네거가 주지사로 선출되듯, 한국에서 연예인들 또한 연예바닥을 넘어 정치적 명망가로 자리 잡아 오는 것이 대세이다. 

코미디언 이주일이 국회에 입성하여 진즉 '정치는 쇼'라고 일갈했던 것이 그러한 시기의 도래를 예고한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소위 '먹물 지식인'들에게 '연예인'은 여전히 애써 깔보고 싶었던 존재에 불과하다.  정치 가십과 연예가 중계에 큰 수준 차이를 두는 나이 좀 먹고 먹물 껴 보이는 선비(?)들의 연예인 깔보는 댓글들은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진보논객이라는 진중권마저 가수 신해철 논쟁에 끼어들며 충분히 폄하가 스며든 언어로 "신해철은 광대일 뿐인데... 연예인들은 좀 널널하게 봐 줄 필요가 있다"라는 의미로 시니컬하게 말하지 않았는가.  얘기인 즉 걔들 말이 사회적 영향력이 있으면 얼마나 있으며 또 그렇게 영향력 있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가 라는 의지와 희망이 섞인 발언으로 들린다.

개인 변희재에게 그리고 변희재를 통해 발언하고 싶은 세력들에게 김민선 정진영은 두 가지 코드로 존재한다.  하나는 미국산 수입소고기 광우병 논란에서 개인 김민선과 정진영 그리고 그를 통해 발언하고 싶은 세력들의 연결 종착지는 결국 정치적으로 개혁 진보진영에 맞닿게 되어있다는 정치적 대립 코드가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연예 '딴따라'들의 사회적 발언이 커져가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자 견제심리로서의 폄하의 대상이다.  전자는 직접적으로 정치적이고 후자는 간접적으로 정치적이다.  이번 '지적수준 부족' 발언의 맥락은 '딴따라'라는 폄하의 맥락이 잡혀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해석이 어렵다. 

예전과 다르다.  치열한 노력과 훈련과 공부를 통해 무대에 평수를 얻어 내는 것이 연예계이다.  분명히 연예인들도 나름 분야에 '지적수준'이 있는 전문가들이다.  따라서 '지적수준'이 아니라 '지적 교만'과 '지적 허세'를 일삼는 고고한 '먹물'들과 '학벌' 정치판에 분명한 반역을 선언해야 한다.  그래서 직업 애칭으로서가 아닌 폄하의 대상으로서 '딴따라' 신분으로부터 벗어나야 마땅하다.  도대체 정치만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특정 직업 앞에서 지적 교만과 허세를 부리는가.

반역의 길은 변희재 진중권과 같은 직업적 논객이나 글쟁이들처럼 책 읽고 글 쓰고 신문 정치면에 파묻혀 정치 논리적 투견으로 훈련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가방끈 사회 먹물사회 억압적 기제들을 비꼬아야 하고 자신의 신분과 직업과 존재와 현재의 노동 자체를 존중하고 자존을 관철하는 것이어야 한다.  거칠더라도 당당하고 과감하게 발언해야 한다.  지금 변희재 그리고 한국 '지적수준'의 상징인 '서울대' '동아일보' '조선일보'가 같은 편에 서 있다.  이는 역으로 '연예계'의 반역은 문화적 진보 나아가 정치사회적 진보에 까지 닿는 뚜렷한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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