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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추억과 옛 문화에 눈물짓다

방학숙제거리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찾다

등록|2009.08.17 13:39 수정|2009.08.17 13:39
16일(일) 아침부터 너무 더웠다. 일기예보에는 서울지역 '폭염특보'라는 알림이 나온다. 하지만 방학 막바지를 맞이하고 있는 연우를 위해 오늘은 점심을 먹고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 가려고 한다.
      

연우랑 나국립민속박물관 ⓒ 김수종



오늘 가는 국립민속박물관은 8·15광복과 함께 송석하 선생의 노력으로 개관되었던 남산민족박물관이 1950년 국립박물관으로 흡수된 후, 16년 만인 1966년 문화재관리국에서 경복궁 수정전(修政殿)에 1600여 점의 민속자료를 수집하여 임시 기구로 다시 개관하면서 틀을 잡는다.

이어 1975년 경복궁 내 전 현대미술관 건물을 수리하여 문화재관리국 산하의 한국민속박물관으로 발족 개관하였으며, 1979년 국립민속박물관으로 변경되어 1982년 옛 중앙박물관 건물로 이전하였다가, 이후 시설공사를 벌여 1993년 현재의 건물로 이전했다. 

건물 외부의 모습은 멋스럽게도 우리나라 전통 건축양식을 재현한 것으로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 법주사의 팔상전, 금산사의 미륵전, 화엄사의 각황전 등의 모습이다.
                  

족보국립민속박물관 ⓒ 김수종



입구에서 약간 망설였다. 좌측의 민속박물관으로 먼저 가느냐? 우측의 어린이박물관으로 먼저 가느냐? 웃기게도 엄마 아빠를 먼저 생각하는 연우는 그냥 민속박물관으로 향했다. 우리 부부는 아무 말 없이 연우를 따라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기획전시실로 들어갔다. 경북에서 올라온 각종 민속 문화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안동, 영주, 봉화, 의성 지역의 문화재들이 많았다. 서원의 현판에서부터 가문의 족보, 생활 도구 등등 두루 보면서 사진도 찍고 연우에게 설명도 하면서 이리저리 누비고 다녔다.
          

조선의 세조 임금국립민속박물관 ⓒ 김수종



기획전시실을 둘러 본 다음, 한민족생활사를 다룬 제1전시관으로 입장했다. 한민족생활사관에서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대표적인 생활사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변화되어 온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울산 반구대 바위에 새겨진 호랑이, 멧돼지, 토끼 등의 짐승 그림과 고래, 거북, 물고기 등의 그림, 다양한 기하학 무늬와 생활 모습 등을 보면서 옛사람들의 수렵과 사냥의 모습을 생각했다. 왠지 그리워지는 것이 이상하다. 선사시대인으로 살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농기구국립민속박물관 ⓒ 김수종



연이어 삼국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우리 민족이 대륙과 해양을 향하여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던 옛 사람들의 역사적인 흔적들을 보았다. 여기에서는 특히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죽막동에 있는 한반도 최대의 제사 유적지가 눈이 들어왔다.

변산반도 서쪽 끝 높은 곳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일찍부터 바닷길의 안전을 기원하는 제사가 거행되었다. 제사 용구로 사용된 발굴 유물의 대부분은 4~7세기 전반에 걸친 백제 토기이기 때문에 백제의 제사유적이라고 한다. 분청사기와 백자 등의 출토유물로 보면서 죽막동이 천년 가까이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제사 장소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죽막동이 중국과 왜를 왕래하던 선박들의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던 제사 장소였다는 것과 당시 백제가 중국과 가야 일본 등 주변 국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 ⓒ 김수종



또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통하여 아름다운 조상의 문화를 볼 수 있었다. 그 시대의 인쇄술의 발전과 한글 창제와 보급에 따른 지식의 확산과 생활 속의 예술적 경향에 반영된 백성들의 성장과정을 찬찬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특히, 만든 목적이 분명하고 만든 사람과 만든 시기가 분명한 글자로 세계적으로 유일한 <훈민정음>을 보면서 밀려오는 감동을 느꼈다.

마지막에는 개항 이후부터 근 현대까지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일상적인 생활용품과 공간에 초점을 맞춰 전시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개항이 가져온 새로운 변화와 근현대인들의 생활변화를 알 수 있었다.

한국인의 일상을 담은 제2전시관으로 이동하기 전, 너무 배가 고픈 우리 가족은 구내매점으로 가서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먹고, 잠시 쉬다가 2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전시관에서는 일 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농경생활과 사계절 변화에 맞춰 삶을 살아온 조선시대(1392-1910)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살기 좋은 곳에 터를 잡은 우리조상들의 마을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온 최소 단위의 생활공간이다. 이 터에서 가꾸어 온 사람들의 다양한 일상을 사계절의 순서로 보여주고, 아울러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 물자와 물자를 서로 연결시켜 주는 문화와 교역의 터인 시장을 통해 한국인의 일상 전반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제3전시관에서는 한국인의 일생을 담고 있었다. 양반가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상적으로 여긴 일생을 전시하고 있었다. 치성을 드려서 태어난 아이가 성장하여 교육을 받고, 성인이 되어 혼인을 하고 가족을 이루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과거를 통하여 출세를 하고, 풍류를 즐기는 모습은 물론 굿청에서 치유하는 모습과 삶을 마치고 자손에게 제사를 받는 일생 전 과정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상여국립민속박물관 ⓒ 김수종



1~3전시관을 전부 둘러 본 다음, 건물 귀퉁이에 있는 어린이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입장을 하려고 했더니 이미 오늘은 입장완료가 되었다고 한다. 어린이박물관에서는 우리의 전통 이야기인 '심청'을 주제로 생활, 사상, 지혜, 용기 등을 전시하고 있었지만, 사전 인터넷 예약이나 선착순 접수를 한 사람만 인원수를 제한하여 입장이 가능하다고 해서 관람을 포기하고 다음으로 미루었다.

우리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야외전시장으로 갔다. 야외전시장에는 1960~70년대 추억을 적시는 '추억의 거리'를 재현해 놓았다. 추억의 거리에는 다방, 식당, 만화방, 레코드점, 이발소, 양장점, 사진관 등 다양한 근현대의 거리 모습이 재현되어 있었다. 
           

추억의 거리국립민속박물관 ⓒ 김수종



현대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추억의 거리에는 부유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오밀조밀 위치한 동네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정겹게 느껴지던 예전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들은 우리 부모님 세대가 치열하게 살아오신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공간으로 아름다운 추억의 장면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변화해가는 우리네의 생활상과 공간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경험해보는 공간,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과거의 추억 속 공간을 현실화하는 장소였다. 기억에서 새록새록 피어나는 가까운 과거로의 시간 여행 이발소, 만화방, 다방. 양장점, 국산자동차 포니 등이 추억을 뒤돌아보기에 좋은 건물과 물품들이었다.
              

추억의 거리 국립민속박물관 ⓒ 김수종



또한 한겨울이면 연탄난로를 놓고, 철사 줄에는 수건이 걸리고, 연통에는 비누거품을 뭉갠 흔적, 그리고 한쪽 벽에는 열댓 마리 새끼 돼지에게 젖을 먹이는 그림이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하는 푸시킨의 시가 걸려 있는 이발소는 그때 그 시절 남자들이 치장을 위해 들르는 유일한 곳으로 장발 등 당시 남자들의 치장도 여자들 못지않게 유행을 탔음을 알 수 있는 공간이다.

다방은 커피 판매에만 국한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다방의 간판명은 약속다방이며, 이는 그 당시 가장 많이 썼던 다방 이름 중의 하나였다. 그 때의 다방은 차를 마시고 쉬는 장소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다양한 문화적 중추활동을 했다.

특히 음악다방이라는 공간은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문화를 공감하고 유행을 만들어냈던 시대 흐름의 한 축이었고, LP음악을 들었던 세대에게 있어 음악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타임머신' 과도 같았다.
           

추억의 거리 국립민속박물관 ⓒ 김수종



양장점의 간판명은 노라노양장점이다.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던 노라노 여사는 '노라노의'집이란 양장점을 열었고 고급의상실 붐을 일으켰다. 그 후 양장점의 수는 눈이 띄게 늘어났고 쇼우 윈도우에 매력 넘치는 마네킹이 등장하였으며 화려한 차림의 여인들이 유행을 만들어내며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하였다.

좁다란 가게와 불편한 나무 의자, 연탄난로. 흑백TV 등은 학교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달려갔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묻어있던 만화방 풍경이다. 단행본도 재미있지만 연작은 만화방을 가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하게 했다.
         

추억의 거리 국립민속박물관 ⓒ 김수종



후속 편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기가 무섭게 만화방 문을 밀치고 들어가 진열대에서 꺼내 볼 때 그 호기심이 충족된 짜릿함은 지금도 묽어지지 않았다. 만화책장을 넘기면서 한 입씩 먹던 라면 땅과 쥐포 맛 또한 잊을 수 없다. 눈물이 나도록 그리운 옛 추억의 거리였다.

하지만 너무 더운 날씨라 박물관 안을 둘러볼 때는 좋았지만, 추억의 거리를 보는 것은 아직 어린 연우에게는 고통인 것 같아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우리 가족은 더위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는 것으로 정하고 나무와 그늘이 있는 성북동의 길상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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