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ㆍ인권ㆍ평화ㆍ즐거움 모두 없는 한국
[책읽기가 즐겁다 305] 마르크 캉탱, <왜 하지 말라는 거야?>
- 책이름 : 왜 하지 말라는 거야?
- 글 : 마르크 캉탱
- 그림 : 브뤼노 살라몬
- 옮긴이 : 신성림
- 펴낸곳 : 개마고원 (2009.7.30.)
- 책값 : 1만 원
(1) 어른한테도 없고 어린이한테도 없는 인권
청소년한테는 '청소년 인권'이 있다고 합니다. 어린이한테는 '어린이 인권'이 있다고 합니다. 아기들한테는 '아기 인권'이 있다고 합니다. 여성한테 '여성 인권'이 있고, 장애인한테 '장애인 인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인권 가운데 제대로 보듬거나 지키도록 하는 인권은 거의 없는 우리 나라가 아닌가 하고 느끼곤 합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무슨무슨 인권'이라 할 때 '무슨무슨'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나 목숨들은 거의 한 번도 제대로 된 권리를 못 누리는 사람들이거나 목숨들이곤 합니다. 길에서 차여 치여 죽는 들짐승 권리를 말한다 할 때에, 자가용을 모는 이들을 비롯해 도로공사 공무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들 목숨한테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하기 좋아 '청소년 인권'이고 '청소년 최저임금'이지만,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청소년한테 제대로 된 권리를 누리도록 돕거나 이끄는 어른이란 몹시 드뭅니다. '청소년 알바 최저임금'은 거의 언제나 '청소년 알바 최고임금'으로 머물곤 합니다.
.. 미국에서는 열여섯 살이면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습니다. 조수석에 어른을 태우고 운전하는 게 아니라 혼자서도 운전을 하지요 … 얼마 전 미국 어느 주에서는 열두 살 된 어린애가 종신금고형을 선고받았대요. 게다가 가석방될 여지도 남겨 두지 않았다나요 .. (16쪽)
조금 더 헤아려 봅니다. '남성 인권'이나 '재벌총수 인권'이나 '경찰 인권'이나 '기무사 요원 인권' 같은 말은 쓰지 않습니다. 저 또한 남성입니다만, 남성들이 '인권을 짓밟히거나 빼앗기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재벌총수가 아주 드물게 법정에 서는 일은 있지만, 죄가 있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몰래 끌어들인 검은돈을 송두리째 빼앗기거나 그동안 노동자한테 제대로 안 준 일삯을 모조리 뱉어내도록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경찰한테도 마땅히 인권이 있어야 합니다만, 경찰한테는 인권보다 '특권'이나 '법을 넘어서는 권력'이 있어, 우리들 여느 사람들을 함부로 두들겨패거나 붙잡기도 합니다. 경찰들이 시민들 집회를 아예 '집회금지'로 못박고 있습니다. 이러한 '집회금지'를 법원에서는 '경찰이 집회금지를 못박는 일은 옳지 않다'는 판결을 내리지만, 경찰은 '옳지 않다'는 판결을 받아도 끝없이 '집회금지'를 밀어붙입니다. 헌법으로 집회며 결사며 언론이며 자유라고 적혀 있어도, 우리 나라 경찰은 이러한 헌법 자유를 손쉽게 깔아뭉갭니다.
요사이 떠도는 '기무사 요원 사찰'을 생각해 보아도, 국가권력에 기대거나 빌붙는 이들이 이 땅 여느 사람들을 내리누르는 힘이란, 또 내리누르면서 얻는 콩고물이란 참 대단하구나 하고 새삼 느낍니다.
.. 프랑스에서는 만 6세에서 16세까지 의무적으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육받을 '권리'라고 하지 않고 '의무'라고 말하지요. 최소한 10년 동안, 모두 합해 대략 1500일 동안 학교에 다닐 의무가 있어요 .. (20쪽)
중학교를 다니던 때 학교에서 했던 일 하나가 떠오릅니다. 그무렵(1988∼1990년) '어린이 인권선언'이 우리 나라에도 나왔다고 떠오르는데, 중학생이면 '청소년'이지 어린이는 아니지만, '어린이 청소년 인권선언'으로 삼아 우리들(중학생)한테도 권리가 있음을 학교 교사들이 깨닫기를 바라면서, 이 인권선언글을 어디에선가 얻어서 전지에 펜으로 또박또박 적어서 학교장한테 겨우 허락을 받아 한 주 동안 건물 들머리에 세워 놓은 적이 있습니다.
기껏 종이 한 장짜리 인권선언이요, 이런 글을 애써 전지에 적어서 세워 놓아도 교사들은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외려 히죽히죽 웃으면서 "인권? 웃기지 말아? 니들한테 무슨 인권이 있어?" 하던 교사가 참 많았습니다. 이들은 우리한테 뺨따귀질이나 주먹질이나 몽둥이질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그 교사들 나이는 오늘날 제 나이보다 몇 살 어린 나이인데, 고작 서른 안팎인 젊은 교사들이 무엇 때문에 뿔이 났다고 "오늘 나한테 걸리면 한 놈은 내 손에 죽는다"고 을러대면서, 교단에서 동무녀석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도 주먹질을 멈추지 않곤 했습니다. 밀걸레자루가 여럿 부러지고 동무녀석이 교단에서 고꾸라졌어도 등짝에다가 부러진 밀걸레자루를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곤 했습니다. 코앞에서 이런 모습을 거의 날마다 지켜보면서 '일제강점기 때 일본헌병이 우리 독립운동가를 이렇게 때리고 괴롭혔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벌써 그때 일이 스무 해나 지난 일이라니 까마득하다고 느끼는 한편, 그 뒤로 스무 해가 지난 2009년이라 하여도 주먹다짐이나 욕부림은 그치지 않는 굴레가 아닌가 싶습니다. 옛날 같은 주먹다짐이나 욕부림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이들끼리 서로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새로운 짓거리는 끊임없이 살아나고, 또다른 교실폭력과 학교폭력이 되풀이되지 않느냐 싶습니다.
.. 차를 운전하고 있는 성인의 경우를 한번 볼까요. 그는 몹시 바빠서 다른 운전자들에게 화를 냅니다. 그가 볼 때, 다른 운전자들이 더 빨리 갈 수 있는데도 빨리 운전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그는 마치 자기 약속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듯 자기를 지체하게 만드는 느림보를 마구 비난합니다. 하지만 그 느림보는 단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제한속도를 준수하고 있을 뿐이에요. 다들 똑같은 필요성에 따라 움직이는 건 아니거든요! .. (60쪽)
몇몇 교사가 말썽쟁이이기 때문일까요? 몇몇 교사들은 교대에 다닐 때부터 당신 스승한테서 '애들은 말보다 주먹이 앞서면 말을 잘 듣는다'고 배웠기 때문일까요? 우리 사회에 민주가 튼튼히 뿌리내리고 평화가 아름다이 자리잡으면 이와 같은 주먹다짐은 사라질 수 있을까요? 이와 같은 주먹다짐이 살아숨쉴 뿐 아니라 영화나 연속극 따위에 자꾸만 그려지는 까닭은, 아무래도 우리 정치판과 사회판과 경제판과 문화판 모두 끝없는 싸움박질과 밥그릇싸움이 피튀기듯 이루어지기 때문일까요?
예전 같은 부정선거는 없다지만, 정치가 민주와 평화와 통일로 이루어졌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누구나 한 표 권리가 있다지만, 사회가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는 느끼기 힘듭니다.
'함께 하자'는 목소리는 듣기 어렵고 '하지 말라'는 목소리만 들립니다. 너른 터는 하나둘 사라지면서 주차장과 쇼핑몰이 되어 갑니다(또는 '허울좋은 광장'으로 바뀝니다). 아이들이 뛰어놀 골목길이나 운동장이나 마당이 없는 한편, 어른들 또한 마음껏 어우러지거나 얼싸안을 골목길이나 운동장이나 마당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쉴 자리가 없고 어른들 또한 쉴 자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제 어버이나 이웃 어른한테서 세상을 하나하나 배우고 어른들 일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차근차근 배우거나 따라할 틈이 없습니다. 돈벌이 일은 조각조각 갈리고, 돈벌이 일을 하느라 식구들은 서로서로 쪼개집니다.
.. 속임수를 쓰는 건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는 짓입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굳이 특별한 이야기를 꾸며낼 필요도 없지요 .. (98쪽)
요 며칠 인천에서 서울로 일하러 오가면서 아침저녁으로 지옥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옥철에서 시달리는 동안 서로서로 괴롭겠지만, 서로서로 악다구니가 되어 옆사람이 짜부가 되건 오징어떡이 되건 몸이 눌리건 발을 밟히건 '나까지 전철에 더 타야' 하고 '내가 더 타면 그때부터는 그만'이라는 생각을 저절로 품지 않느냐 싶습니다. 처음부터 서로를 미워하거나 괴롭힐 마음은 아니었을지라도 하루하루 지옥철에 시달리고 길들면서 시나브로 사랑과 믿음이 옅어지거나 스러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서로서로 더 많은 돈을 벌면 그만이요, 더 널리 사랑을 나누거나 더 깊이 믿음을 함께하려는 생각은 못 품지 않느냐 싶습니다.
(2) 프랑스사람이 말하는 《왜 하지 말라는 거야?》
프랑스 어른이 프랑스 어린이한테 '인권이란 무엇인가'를 들려주려고 쓴 책 《왜 하지 말라는 거야?》를 읽습니다. 나라안에서도 나라안 어린이한테 우리네 사람 권리란 무엇인가를 들려주고자 이와 비슷한 책을 더러더러 쓰곤 합니다. 다만, 아직가지 나라안 사람들이 쓰는 '제대로 누릴 사람 권리' 이야기는 겉핥기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속깊이 파고들지 못하며, 간지러운 구석을 긁지 못합니다. 골고루 들여다보지 못하며, 아픈 생채기를 보듬지 못합니다. 이와 견주어 《왜 하지 말라는 거야?》는 간지럽고 아픈 자리를 살며시 건드리면서 퍽 쉽고 슬기롭게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 사람들이 어떤 일을 열심히 금지해 놓고 정작 자기 자신에겐 허용하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간혹 더 나쁜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전직 장관이 범법행위로 유죄선거를 받았다는 뉴스를 곧잘 접할 거예요. 결국, 금지조항을 선포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 자신이 정작 금지조항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거죠 .. (111∼112쪽)
오늘날 우리 세상에는 사랑도 자유도 평화도 통일도 믿음도 즐거움도 모두 사라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인권 또한 저절로 사라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너도 나도 외는 말마디, '먹고살기 힘들다'와 '먹고살기 바쁘다'에 눌리고 밟힙니다. '살아남아야 한다'와 '살려면 어찌할 수 없다'에 뭉개지고 차입니다.
우리 어른들 스스로 아이들 앞에서 사랑하면서 살아가지 못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평화로이 어깨동무하지 못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통일을 꿈꾸지 않습니다. 어른들 스스로 서로서로 믿지 못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즐거운 일과 놀이를 함께 나누지 않습니다.
이런 판에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이런 가운데 아이들은 어른들이 읊는 말마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어른들이 몸으로 보여주기로는 형편없거나 보잘것없거나 얄딱구리한데,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이들한테는 영어 동화책이나 영어 교재가 아닌 《왜 하지 말라는 거야?》 같은 책을 쥐어 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들한테 이 책을 쥐어 주기 앞서, 우리 어른들부터 《왜 하지 말라는 거야?》 같은 책을 곰곰이 읽고 되새기고 톺아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책을 쥐어 주고픈 어른들은, 어른들 스스로 먼저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삭이고 받아들이면서 좋은 삶을 일구어야지 싶습니다.
.. 안타깝게도 어떤 것이 금지인지 검열인지 종종 그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습니다. 검열관들 쪽에서, 그건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거라고 주장하면서 일부러 경계를 흐려 놓는 경우도 많지요 .. (137쪽)
그런데, 《왜 하지 말라는 거야?》라는 책은 퍽 아쉽습니다. 틀림없이 간지러운 곳을 긁는 책이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제 간지러움은 하나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어김없이 생채기를 달래는 책이요 아픈 구석을 찌르는 책이지만, 제 생채기에서는 고름이 철철 흐르고 제 아픈 구석에는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프랑스하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너무 벌어져 있기 때문일까요. 한국에서는 프랑스에서 이루어지는 '인권'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왜 하지 말라는 거야?》 같은 프랑스 책은 퍽 높은 눈높이에서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길을 다루고 있지만, 우리는 아주 밑바닥에서 끝없이 뒹굴고만 있기 때문일까요.
애써 좋은 책 하나를 우리 말로 옮겨내어 이 땅 아이들한테 좋은 마음밥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어른들은 왜 우리 터전에서 우리 삶을 우리 스스로 헤아리면서 아이들한테 참다이 마음밥이 되고 슬기롭고 따숩게 마음동무가 될 책을 우리 땀을 흘리면서 빚어내지 못할까요? 왜 이런 일에는 깊이 힘을 쏟지 못할까요? 이러한 책이 돈이 되든 안 되든, 이러한 책을 펴내어 잘 팔리든 안 팔리든, 참말 한국땅에 꼭 하나쯤 있어야 할 '맑고 밝고 환하고 고운 권리 이야기'를 신나게 펼칠 어른들이란 도무지 찾아보아서는 안 될 노릇인가요?
우리가 우리 자유를 지키자면 우리 자유를 있는 힘껏 부리며 자유로운 이야기를 담는 책을 빚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사람된 권리를 누리자면 우리 사람된 권리를 용쓰며 뽑아내어 사람된 권리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일구어야 합니다. 바라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고, 참되게 바라는 매무새를 이어가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으며, 참되게 바라는 매무새대로 우리 삶을 단단히 붙잡고 부둥켜안도 부대껴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 글 : 마르크 캉탱
- 그림 : 브뤼노 살라몬
- 옮긴이 : 신성림
- 펴낸곳 : 개마고원 (2009.7.30.)
- 책값 : 1만 원
(1) 어른한테도 없고 어린이한테도 없는 인권
곰곰이 헤아려 보면, '무슨무슨 인권'이라 할 때 '무슨무슨'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나 목숨들은 거의 한 번도 제대로 된 권리를 못 누리는 사람들이거나 목숨들이곤 합니다. 길에서 차여 치여 죽는 들짐승 권리를 말한다 할 때에, 자가용을 모는 이들을 비롯해 도로공사 공무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들 목숨한테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하기 좋아 '청소년 인권'이고 '청소년 최저임금'이지만,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청소년한테 제대로 된 권리를 누리도록 돕거나 이끄는 어른이란 몹시 드뭅니다. '청소년 알바 최저임금'은 거의 언제나 '청소년 알바 최고임금'으로 머물곤 합니다.
.. 미국에서는 열여섯 살이면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습니다. 조수석에 어른을 태우고 운전하는 게 아니라 혼자서도 운전을 하지요 … 얼마 전 미국 어느 주에서는 열두 살 된 어린애가 종신금고형을 선고받았대요. 게다가 가석방될 여지도 남겨 두지 않았다나요 .. (16쪽)
조금 더 헤아려 봅니다. '남성 인권'이나 '재벌총수 인권'이나 '경찰 인권'이나 '기무사 요원 인권' 같은 말은 쓰지 않습니다. 저 또한 남성입니다만, 남성들이 '인권을 짓밟히거나 빼앗기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재벌총수가 아주 드물게 법정에 서는 일은 있지만, 죄가 있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몰래 끌어들인 검은돈을 송두리째 빼앗기거나 그동안 노동자한테 제대로 안 준 일삯을 모조리 뱉어내도록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경찰한테도 마땅히 인권이 있어야 합니다만, 경찰한테는 인권보다 '특권'이나 '법을 넘어서는 권력'이 있어, 우리들 여느 사람들을 함부로 두들겨패거나 붙잡기도 합니다. 경찰들이 시민들 집회를 아예 '집회금지'로 못박고 있습니다. 이러한 '집회금지'를 법원에서는 '경찰이 집회금지를 못박는 일은 옳지 않다'는 판결을 내리지만, 경찰은 '옳지 않다'는 판결을 받아도 끝없이 '집회금지'를 밀어붙입니다. 헌법으로 집회며 결사며 언론이며 자유라고 적혀 있어도, 우리 나라 경찰은 이러한 헌법 자유를 손쉽게 깔아뭉갭니다.
요사이 떠도는 '기무사 요원 사찰'을 생각해 보아도, 국가권력에 기대거나 빌붙는 이들이 이 땅 여느 사람들을 내리누르는 힘이란, 또 내리누르면서 얻는 콩고물이란 참 대단하구나 하고 새삼 느낍니다.
▲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면 아이들 몸에 안 좋습니다. 그러면 어른들은? 어른들은 담배를 피울 때 어른들 몸에 좋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청소년들한테 온갖 금지와 지시사항만 잔뜩 내려보낼 뿐입니다. ⓒ 최종규
.. 프랑스에서는 만 6세에서 16세까지 의무적으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육받을 '권리'라고 하지 않고 '의무'라고 말하지요. 최소한 10년 동안, 모두 합해 대략 1500일 동안 학교에 다닐 의무가 있어요 .. (20쪽)
중학교를 다니던 때 학교에서 했던 일 하나가 떠오릅니다. 그무렵(1988∼1990년) '어린이 인권선언'이 우리 나라에도 나왔다고 떠오르는데, 중학생이면 '청소년'이지 어린이는 아니지만, '어린이 청소년 인권선언'으로 삼아 우리들(중학생)한테도 권리가 있음을 학교 교사들이 깨닫기를 바라면서, 이 인권선언글을 어디에선가 얻어서 전지에 펜으로 또박또박 적어서 학교장한테 겨우 허락을 받아 한 주 동안 건물 들머리에 세워 놓은 적이 있습니다.
기껏 종이 한 장짜리 인권선언이요, 이런 글을 애써 전지에 적어서 세워 놓아도 교사들은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외려 히죽히죽 웃으면서 "인권? 웃기지 말아? 니들한테 무슨 인권이 있어?" 하던 교사가 참 많았습니다. 이들은 우리한테 뺨따귀질이나 주먹질이나 몽둥이질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그 교사들 나이는 오늘날 제 나이보다 몇 살 어린 나이인데, 고작 서른 안팎인 젊은 교사들이 무엇 때문에 뿔이 났다고 "오늘 나한테 걸리면 한 놈은 내 손에 죽는다"고 을러대면서, 교단에서 동무녀석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도 주먹질을 멈추지 않곤 했습니다. 밀걸레자루가 여럿 부러지고 동무녀석이 교단에서 고꾸라졌어도 등짝에다가 부러진 밀걸레자루를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곤 했습니다. 코앞에서 이런 모습을 거의 날마다 지켜보면서 '일제강점기 때 일본헌병이 우리 독립운동가를 이렇게 때리고 괴롭혔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벌써 그때 일이 스무 해나 지난 일이라니 까마득하다고 느끼는 한편, 그 뒤로 스무 해가 지난 2009년이라 하여도 주먹다짐이나 욕부림은 그치지 않는 굴레가 아닌가 싶습니다. 옛날 같은 주먹다짐이나 욕부림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이들끼리 서로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새로운 짓거리는 끊임없이 살아나고, 또다른 교실폭력과 학교폭력이 되풀이되지 않느냐 싶습니다.
.. 차를 운전하고 있는 성인의 경우를 한번 볼까요. 그는 몹시 바빠서 다른 운전자들에게 화를 냅니다. 그가 볼 때, 다른 운전자들이 더 빨리 갈 수 있는데도 빨리 운전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그는 마치 자기 약속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듯 자기를 지체하게 만드는 느림보를 마구 비난합니다. 하지만 그 느림보는 단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제한속도를 준수하고 있을 뿐이에요. 다들 똑같은 필요성에 따라 움직이는 건 아니거든요! .. (60쪽)
▲ 아이들한테 성적과 시험만을 바라면서, 공부방에서는 '올백 시험성적' 맞은 아이 이야기를 광고 걸개천으로 동네 길에 내다 겁니다. 아이들은 공부를 못하면 아무런 '권리'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뒷날 돈을 못 벌면 어떠한 '권리'도 누리지 못합니다. ⓒ 최종규
몇몇 교사가 말썽쟁이이기 때문일까요? 몇몇 교사들은 교대에 다닐 때부터 당신 스승한테서 '애들은 말보다 주먹이 앞서면 말을 잘 듣는다'고 배웠기 때문일까요? 우리 사회에 민주가 튼튼히 뿌리내리고 평화가 아름다이 자리잡으면 이와 같은 주먹다짐은 사라질 수 있을까요? 이와 같은 주먹다짐이 살아숨쉴 뿐 아니라 영화나 연속극 따위에 자꾸만 그려지는 까닭은, 아무래도 우리 정치판과 사회판과 경제판과 문화판 모두 끝없는 싸움박질과 밥그릇싸움이 피튀기듯 이루어지기 때문일까요?
예전 같은 부정선거는 없다지만, 정치가 민주와 평화와 통일로 이루어졌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누구나 한 표 권리가 있다지만, 사회가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는 느끼기 힘듭니다.
'함께 하자'는 목소리는 듣기 어렵고 '하지 말라'는 목소리만 들립니다. 너른 터는 하나둘 사라지면서 주차장과 쇼핑몰이 되어 갑니다(또는 '허울좋은 광장'으로 바뀝니다). 아이들이 뛰어놀 골목길이나 운동장이나 마당이 없는 한편, 어른들 또한 마음껏 어우러지거나 얼싸안을 골목길이나 운동장이나 마당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쉴 자리가 없고 어른들 또한 쉴 자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제 어버이나 이웃 어른한테서 세상을 하나하나 배우고 어른들 일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차근차근 배우거나 따라할 틈이 없습니다. 돈벌이 일은 조각조각 갈리고, 돈벌이 일을 하느라 식구들은 서로서로 쪼개집니다.
.. 속임수를 쓰는 건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는 짓입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굳이 특별한 이야기를 꾸며낼 필요도 없지요 .. (98쪽)
요 며칠 인천에서 서울로 일하러 오가면서 아침저녁으로 지옥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옥철에서 시달리는 동안 서로서로 괴롭겠지만, 서로서로 악다구니가 되어 옆사람이 짜부가 되건 오징어떡이 되건 몸이 눌리건 발을 밟히건 '나까지 전철에 더 타야' 하고 '내가 더 타면 그때부터는 그만'이라는 생각을 저절로 품지 않느냐 싶습니다. 처음부터 서로를 미워하거나 괴롭힐 마음은 아니었을지라도 하루하루 지옥철에 시달리고 길들면서 시나브로 사랑과 믿음이 옅어지거나 스러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서로서로 더 많은 돈을 벌면 그만이요, 더 널리 사랑을 나누거나 더 깊이 믿음을 함께하려는 생각은 못 품지 않느냐 싶습니다.
(2) 프랑스사람이 말하는 《왜 하지 말라는 거야?》
▲ 겉그림. ⓒ 개마고원
프랑스 어른이 프랑스 어린이한테 '인권이란 무엇인가'를 들려주려고 쓴 책 《왜 하지 말라는 거야?》를 읽습니다. 나라안에서도 나라안 어린이한테 우리네 사람 권리란 무엇인가를 들려주고자 이와 비슷한 책을 더러더러 쓰곤 합니다. 다만, 아직가지 나라안 사람들이 쓰는 '제대로 누릴 사람 권리' 이야기는 겉핥기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속깊이 파고들지 못하며, 간지러운 구석을 긁지 못합니다. 골고루 들여다보지 못하며, 아픈 생채기를 보듬지 못합니다. 이와 견주어 《왜 하지 말라는 거야?》는 간지럽고 아픈 자리를 살며시 건드리면서 퍽 쉽고 슬기롭게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 사람들이 어떤 일을 열심히 금지해 놓고 정작 자기 자신에겐 허용하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간혹 더 나쁜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전직 장관이 범법행위로 유죄선거를 받았다는 뉴스를 곧잘 접할 거예요. 결국, 금지조항을 선포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 자신이 정작 금지조항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거죠 .. (111∼112쪽)
오늘날 우리 세상에는 사랑도 자유도 평화도 통일도 믿음도 즐거움도 모두 사라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인권 또한 저절로 사라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너도 나도 외는 말마디, '먹고살기 힘들다'와 '먹고살기 바쁘다'에 눌리고 밟힙니다. '살아남아야 한다'와 '살려면 어찌할 수 없다'에 뭉개지고 차입니다.
우리 어른들 스스로 아이들 앞에서 사랑하면서 살아가지 못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평화로이 어깨동무하지 못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통일을 꿈꾸지 않습니다. 어른들 스스로 서로서로 믿지 못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즐거운 일과 놀이를 함께 나누지 않습니다.
이런 판에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이런 가운데 아이들은 어른들이 읊는 말마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어른들이 몸으로 보여주기로는 형편없거나 보잘것없거나 얄딱구리한데,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이들한테는 영어 동화책이나 영어 교재가 아닌 《왜 하지 말라는 거야?》 같은 책을 쥐어 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들한테 이 책을 쥐어 주기 앞서, 우리 어른들부터 《왜 하지 말라는 거야?》 같은 책을 곰곰이 읽고 되새기고 톺아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책을 쥐어 주고픈 어른들은, 어른들 스스로 먼저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삭이고 받아들이면서 좋은 삶을 일구어야지 싶습니다.
.. 안타깝게도 어떤 것이 금지인지 검열인지 종종 그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습니다. 검열관들 쪽에서, 그건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거라고 주장하면서 일부러 경계를 흐려 놓는 경우도 많지요 .. (137쪽)
그런데, 《왜 하지 말라는 거야?》라는 책은 퍽 아쉽습니다. 틀림없이 간지러운 곳을 긁는 책이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제 간지러움은 하나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어김없이 생채기를 달래는 책이요 아픈 구석을 찌르는 책이지만, 제 생채기에서는 고름이 철철 흐르고 제 아픈 구석에는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프랑스하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너무 벌어져 있기 때문일까요. 한국에서는 프랑스에서 이루어지는 '인권'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왜 하지 말라는 거야?》 같은 프랑스 책은 퍽 높은 눈높이에서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길을 다루고 있지만, 우리는 아주 밑바닥에서 끝없이 뒹굴고만 있기 때문일까요.
애써 좋은 책 하나를 우리 말로 옮겨내어 이 땅 아이들한테 좋은 마음밥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어른들은 왜 우리 터전에서 우리 삶을 우리 스스로 헤아리면서 아이들한테 참다이 마음밥이 되고 슬기롭고 따숩게 마음동무가 될 책을 우리 땀을 흘리면서 빚어내지 못할까요? 왜 이런 일에는 깊이 힘을 쏟지 못할까요? 이러한 책이 돈이 되든 안 되든, 이러한 책을 펴내어 잘 팔리든 안 팔리든, 참말 한국땅에 꼭 하나쯤 있어야 할 '맑고 밝고 환하고 고운 권리 이야기'를 신나게 펼칠 어른들이란 도무지 찾아보아서는 안 될 노릇인가요?
우리가 우리 자유를 지키자면 우리 자유를 있는 힘껏 부리며 자유로운 이야기를 담는 책을 빚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사람된 권리를 누리자면 우리 사람된 권리를 용쓰며 뽑아내어 사람된 권리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일구어야 합니다. 바라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고, 참되게 바라는 매무새를 이어가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으며, 참되게 바라는 매무새대로 우리 삶을 단단히 붙잡고 부둥켜안도 부대껴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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