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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K'는 '아메리칸 아이돌'을 넘어설 것인가?

[비평] M.net의 <슈퍼스타 K> 통해서 보는 공개 오디션 기획과 그 성공요건

등록|2009.08.18 22:19 수정|2009.08.18 22:19
언젠가부터 우리사회에서 성실이나 개척과 같은 가치가 성공의 절대 조건인 시대는 지나가버렸다. 대신 배경과 인맥, 혹은 외모와 유산에 의해 좌우되는 성공요건을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암묵적으로 아는 사실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곳에서 그 공식이 적용되고 있음에 가끔 놀라곤 한다. 그 적용범위는 본질적으로 내면 기술을 요하는 예술 분야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실력보다는 학벌, 창조보다는 모방을 강요하는 세태는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시점을 한국대중음악과 시장에 비추어 봤다. 그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큰 틀은 그러한 공식에서 어긋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창력보다는 생김새, 음악성보다는 마케팅, 개인 능력보다는 기획사의 능력이 우선시되는 작금의 환경은 어느 순간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대중음악 시장의 일정한 형태로 고정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결국 개인보다는 환경이다. 어디에서건 자기 실력만 믿고 맨땅에 헤딩하면 이젠 정말 그 자리에서 뇌진탕으로 즉사해버리는 시대가 온 것이다.

통과해야 하는 좁은 문

▲ '슈퍼스타 K'를 지원한 지원자는 전국적으로 70여만명에 달하며, 우승자는 그 중에 단 한명이다. ⓒ 엠넷미디어


이러한 시장에서 가수들은 스스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음악은 자의에 의해 개척하기보다는 타의에 의해 구축된다. 이것은 한국과 같은 협소한 국내시장에서 생존을 위해, 넓은 해외시장에서 특화된 상품으로 승부를 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진행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난 이러한 시스템에 대해 일방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다만, 주류적 흐름 외에 비주류들이 편승할 흐름이 너무 좁다는 사실에 한탄할 뿐이다. 그렇다고 아이돌 스타가 되어 무대에서 춤추고 싶은 지망생에게 음악이 정말 하고 싶다면 기타를 둘러메고 인디시장을 공략해 보라는 조언은 어쩌면 너무 잔인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창조자가 아닌, 수용자층인 대중들은 그들의 사정을 빼고 충분히 불만을 표할 수 있다. 감각적인 대중들은 어쩌면 한국에서 음악을 접하는 범위에 태생적인 한계점을 지니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넓은 음악 시각을 제안하며 현재 꽤 신선하게 진행되는 한국의 인디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제안은 결국 필요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강요가 될 여지가 많기에 길게 이야기 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문제에 대한 인식은 몇 가지로 좁혀진다.

대중들은 개인 능력보다는 환경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스타, 비슷한 기획으로 특이점이 없는 스타. 트렌드에 의해 순간적인 시기를 타는 스타들을 그동안 너무 많이 봐왔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몇몇 대형 기획사들의 권력화는 더욱 강화되어, 그들은 이제 스타를 직접 창조해내는 전능한 수준에 올랐다. 따라서 지금은 빛을 내지 않지만 가공하면 엄청난 보석이 될 소중한 원석들은, 그 소수의 기획사들 아래에 헤쳐 모였고 아울러 그 아래에 모이지 못하는 숱한 원석들은 그냥 길바닥에 버려진다.

버려진 원석은 그저 돌덩이다. 누군가 두 손으로 짚어 내주지 못하는 이상, 사람들 발에 차이는 것이 일인 빛을 간직한 암갈색의 돌덩이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기획사 입장에서 본다면, 검증되지 못한 오래된 원석을 짚어내어 가공하고 세공하고 시장에 내놓는 일련의 행위는 도박에 가깝다. 하지만 또한 누군가 이러한 도박을 해주지 않는다면, 앞서 기획된 스타들과 분명히 차별되는 매력을 가진 슈퍼스타의 탄생이 나타날 수 없음도 자명하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러한 극심한 상업적 부담을 끌어안고 이 도박에 배팅 할 것인가. 그리고 만일 그것이 너무 힘들다면, 이 부담을 조금이라도 더는 방법은 없을까.

'공개 오디션'이라는 이름의 상생전략?

▲ 시즌 8까지 완료한 미국 FOX의 '아메리칸 아이돌'은 공개 오디션 방식을 통해 현재까지 많은 스타들을 배출해 냈다. ⓒ FOX


이렇게 해서 나왔던 답안이 결국 '공개 오디션'이라는 방식이다. 이것은 미디어, 대중, 기획사, 가수 모두가 그 위험부담을 같이 분산해서 안고 간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혁신적인 방식이었으며, 거기에서 우리는 FOX의 <아메리칸 아이돌>의 성공사례를 이해할 수 있다. 미디어인 FOX, 우승자를 투표하는 자발적 대중들인 시청자, 심사위원인 사이먼 코웰(Simon Cowell), 그리고 우승자인 캐리 언더우드(Carrie Underwood)의 상생은 그렇게 완성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류를 한국의 미디어가 못 읽을 리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공개 오디션을 통한 스타 만들기 프로젝트는, 어느 한 순간 어떠한 유행처럼 방송가에서 차용되기 시작했다. 오늘 이야기할 M.net의 <슈퍼스타 K> 이전에 MBC에서 진행한 <악동클럽>, M.net과 그룹 '신화'가 함께 했던 <배틀신화>등이 그 중 <아메리칸 아이돌>의 콘셉트를 체계적으로 따른 대표적인 프로그램들이었다.

하지만 이 두 프로그램을 통해 탄생된 '디 에이디'와 '배틀'이라는 남성 아이돌 그룹은 결과로만 보자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외려 <배틀신화>에서 낙오된 지원자였던 '빅뱅'의 승리나,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가인이 프로그램의 공개 오디션을 통과한 그들보다 대중들에게 현재 지명도 면에서는 더 위에 있는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표면적으로 과거 한국의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은 <아메리칸 아이돌>과는 달리 상생에 실패한 것이다. 그들 프로그램의 실패 이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결국 그러한 요소들은 현재 진행 중인 <슈퍼스타 K>에 대한 성공요건이 되는 동시에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슈퍼스타 K>의 성공요건 세 가지

▲ '배틀신화'를 통해 등장한 그룹 '배틀'(좌), 그보다 앞서 '악동클럽'을 통해 결성된 '디 에이디'(우). ⓒ 굿엔터테인먼트, Sol


그 중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러한 특수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그들이 생성과정을 빼고는 기존 기획사들이 배출한 아이돌 그룹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등장했다는 점이 가장 결정적이다. 기획사 이름이 YG, SM에서 MBC, M.net로 바뀐 것 뿐이었다.

그러한 환경 하에서 그들은 대형 기획사들의 푸시를 상대적으로 덜 받을 수밖에 없어 오히려 마케팅 파워에 의해 대중들에게 스스로 묻혀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멤버 개개인의 개성은 그룹이라는 조직에 묶여버려 어느 순간 사라졌다. 이는 한국의 음악시장에서 돈이 되는 가장 안정적인 구도가 결국 10대들을 겨냥한 아이돌 그룹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에 묶여버린 기획마인드의 산물이며, 반대로 대형기획사들이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교육시켜 만들어내는 아이돌 그룹은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는 명제를 확립시킨 사례다.

따라서 <슈퍼스타 K>는 무엇보다 출연자들 각각의 개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폴 포츠(Paul Potts)나 수잔 보일(Susan Bolye)이 어째서 슈퍼스타가 되었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틀에 박히면 안 된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심사위원이 아름답고도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출연자에게 '외모를 고쳐라' 따위 충고는 프로그램에서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그저 음악성과 가창력으로만 평가 받아야 이 프로그램이 가지는 가치는 극대화된다.

그 다음 요건은 기획사들의 다변적인 참여다. 사실 <슈퍼스타 K>에서 M.net이 제공하는 것은 그저 오디션 장소와 홍보에 불과하며, 이를 통해 발굴된 가수들은 곧장 대형기획사에 편입된다. 결국 <슈퍼스타 K>는 YG, JYP, SM이 공동 후원하는 공개 채용 박람회와 진배없는 구조다. M.net은 시청률 상승이란 목표를 이루고, 기획사는 후에 자신들의 색깔로 덧입힐 아이돌 멤버를 구하는 과정으로 끝날 여지가 바로 이곳에서 발생한다. 이래서는 또 다시 악순환의 반복이다.

그러므로 이번 출연자들에 대한 다변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과연 이 <슈퍼스타 K>가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만한 스타들을 배출해낼 것인가에 대한 예측은 지금으로선 성급한 판단이지만, 이 기획이 단순히 대형 미디어와 기획사간의 야합에 의해 굴러가는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 틈을 노리는 기획사들과 대중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아울러 M.net측도 이번 기회에 음원을 독점하려는 이익 집단으로서의 스스로를 부정하며 정부규제만을 탓할 것만이 아니라, 본인들 스스로 대형기획사에 묶여 있는 M.net 내부의 규제에 대해 돌이켜 봐야 한다. 오디션 지원자의 문은 열려 있으나, 자본 참여자의 문이 굳게 닫혀있으면 <슈퍼스타 K>를 통해 대한민국 음악계의 발전을 논하려 한다는 그들의 진정성이 퇴색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끝으로 세 번째는 지속적인 프로모션이다. M.net이 이번 <슈퍼스타 K> 최종 우승자에게 내건 약속은 가수 지원금 1억여 원과 연말 <MKMF 뮤직 페스티발> 출연이다. 이런 게 과연 최근과 같은 홍보 전쟁에서 슈퍼스타가 탄생될 충분한 요건이 되는지, 조금 더 체계적인 홍보방식은 마련되어 있는지, 장소만 제공할 뿐 나머지는 기획사에게 모조리 일임한다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현재로선 매우 걱정스럽다. 다시 말해, M.net측이 가진 미디어 시장에서의 장악력을 부정해선 곤란하다는 것이며, 이것을 십분 활용하여 이 기획이 성공사례로 남아야 그들이 원하는 시즌제에 대한 논의도 가능하지 않을까. 

<슈퍼스타 K>, 노래에만 목숨 걸게 해 달라!

▲ 가수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결국 개인의 실력이다. '슈퍼스타 K'는 그 이상적인 명제를 실현할 수 있을까? ⓒ 엠넷미디어


이처럼 슈퍼스타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특히나 넓고도 광활한 미국의 시장과는 달리 너무나도 좁은 한국 시장의 음악적 환경을 고려하면 그러한 길은 기획사에 의해 애초부터 만들어지지 않았던, 즉 노래실력 말고는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이들에겐 그저 먼 나라 얘기였다. 하지만 <슈퍼스타 K>는 목소리만 들고 우리에게 오라 말했고 그렇게 7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당신이 맨땅에 헤딩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 말했다.

과연 그 사람들은 슈퍼스타가 될 것인가 아니면 과거와 같이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 소품으로 묻힐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제 출연자, 미디어, 기획사,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 대중 모두의 손에 달렸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의 상황에서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눈이 아닌 가슴을 즐겁게 해줄 슈퍼스타의 탄생을 손을 빌려 기다릴 계획이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결국 출연진들의 진심어린 눈빛과 매력적인 목소리들이었으니까.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http://kells.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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