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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죽어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추도사] <후광 김대중 평전> 저자 김삼웅 "그는 고난의 화신이었다"

등록|2009.08.19 08:28 수정|2009.08.19 17:03

▲ ⓒ 남소연


김대중 대통령님, 김대중 선생님!

기어코 가셨습니다. 훨훨 털고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 가시고 말았습니다. 향년 85세이면 짧지 않는 생애인데, 왜 이토록 허전하고 애통합니까. 선생님은 질풍노도의 한국현대사의 중심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서민과 중산층, 남북화해와 민족통일을 추구하면서 고통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민주주의가 짓밟힌 엄혹했던 시절에 선생님은 가장 앞 줄에 서서 독재와 싸웠습니다. 그때마다 견디기 어려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다섯 차례의 죽을 고비와 5년의 감옥살이, 10년의 연금과 해외망명 생활을 견디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반세기 얼어붙었던 북쪽의 문을 열었습니다. 50년 부패와 권력남용으로 일관된 일당독재, 일당지배의 정치사에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몽매한 후진국가, 독재국가가 아닌 당당한 민주국가임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셨습니다.

2009년 8월 18일 오후 2시경, 저는<후광 김대중 평전>을 집필 중에 김대중 선생님의 서거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당신께서 1987년 9월 8일 광주 망월동 묘소를 찾아'아아, 망월동의 영령들이시여!'란 제목의 추도사를 몇 차례나 오열하며 읽었던 글을 옮기고 있을 때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신군부 쿠데타로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서 2년 복역 뒤에 미국에 망명하고 돌아와서, 6월민주항쟁을 주도하여 6·29항복선언을 받아낸 뒤 망월동 묘소를 찾았습니다. 5·17 사태 당시 신군부는 광주민주항쟁을 김대중이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내렸지만, 실제로 당신은 바로 전날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어서 귀신이 아닌 담에야 불가능한 일을 뒤짚어 씌웠었지요.

우연찮게도 추도사의 "여러분은 죽어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의거는 일월같이 빛나고, 여러분의 흘린 피는 역사적으로 영원할 것입니다"란 대목을 옮겨 적고 있을 때, 지인으로부터 선생님의 서거 소속을 듣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죽어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생애는 일월같이 빛나고, 당신께서 흘린 피는 역사적으로 영원할 것입니다."

이렇게 고쳐서 선생님의 영전에 헌사하면 어떨까요.

며칠 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이희호 여사님을 뵙고, 선생님의 상태가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혹시나 불길한 예측은 하면서도 너무나 갑작스런 부음 소식이라 마음이 정리되지 않고 글이 씌어지지가 않습니다.

당신은 격류에 도도히 흘러가는 황하 중턱에 버티고 선 바위 하나, '중류지주(中流砥柱)' 그것이었습니다. 한 시대를 뒤 덮은 격량에도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면서 새로운 시대의 물길을 이끌었던 분입니다.

고난이 필요한 시대 그는 고난의 화신이었다.

일본 수도의 한 호텔 안에서
토막져 죽어야 했다가 살아났다
현해탄 복판에 던져져

물귀신이 되어야 했다가 살아났다.
71년 대통령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졌다
그의 파도치는 웅변이
1백만 인파를 지진처럼 흔들어 댔다
그는 혼자서 1백만 인파였다

그로부터 박정희는 이를 갈았다. (후략)

▲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18일 밤 서울 시청광장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의 임시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분향하고 있다. ⓒ 유성호


시인 고은씨가<만인보>에서 쓴 '김대중'의 서두입니다. 그로부터 김대중 선생의 고난은 시작되었고, 이와 함께 명성도 시작되었습니다. '고난의 화신'은 역대 군사정권과 수구세력이 온갖 탄압과 왜곡보도로 상처를 입혔지만, 당신은 오뚝이처럼, 불사조처럼 살아남았고, 그리하여 수평적 정권교체, IMF극복, 남북화해 협력, 노벨평화상의 수상으로 이어진 영광을 차지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영광의 순간은 짧고 고난의 세월은 길었습니다. 5공 신군부는 당신의 목에 밧줄을 걸려 하고 수구세력의 대변지가 된 보수언론은 쉬임없이 왜곡의 필탄을 쏘아댔습니다. 그때마다 힘없고 끝발없는 이땅의 민초들이 당신을 지키고 살렸습니다.

캄캄한 먹구름 밀려와서 눈부신 태양을 가리울 때
하늘의 서기를 받아안고 인동초 피었다네
어둡고 침울한 이 강산에 희망에 찬 밝은 빛 주시려고
인동초 꽃으로 핀 님이여 임이시여-
은은한 그 향기 온 세상에 굽이굽이 펼치소서.

설순관님이 짓고 서승일님이 작곡하여 박우진님이 부르고자 했던 <인동초>의 1절입니다. 하지만 이 노래는 5공의 서슬에 곧 금지곡이 되어 민초들은 들을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저는 5공 시절 몇 차례 가택이 압수수색을 당했으면서도 이 노랫가사를 성경 갈피에 감추어 두어서 빼앗기지 않고 용케 간직할 수가 있었습니다.

"인동초 꽃으로 핀 님이여, 님이시여 -."

1993년 세 번째 대선에서 '민주화의 동지'에게 패하시고, "새로운 길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영국 캐임브리지대학에 유학하실 때, 런던 탬즈강변 한적한 어느 찾집에서 선생님은 <사인여천(事人如天)>이란 휘호 한 폭을 써 주시면서 말씀하셨지요. "김동지, 사람 섬기기를 하늘 같이 해야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봉건전제 시대에도 민본사상을 기본으로 하여 백성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상을 가져왔습니다." 그 말씀이 어제 이야기 처럼 들립니다. "사인여천", "행동하는 양심",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 이런 말씀과 실천을 이제 어디서 다시 듣고 볼 수 있을까요.

나는 민주주의를 위해 서럽고 캄캄하고
한 많은 세상을 후손에게 넘기지 않고
자유가 들꽃같이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통일에의 꿈이 무지개처럼 솟아오르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여러분이 중심이 되어 투쟁할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포악했던 그 시절에 선생님께서는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감옥으로 들어가면서 이런 말씀을 남겼지요.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이 가슴으로 새겼으면 합니다.

김대중 선생님! 박정희의 토막살해도, 전두환의 사형선고도 모두 용서하셨지요. 그밖에도 이제까지 당신에게 모질게 대했던 그 많은 이승의 악연을랑 모두 용서하시고 모두 접으시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십시오. 하늘나라에서도 당신께서 몽매에도 잊지 못하셨던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여러분"을 위해, 나라의 안녕과 평화, 발전을 위해 영력(靈力)을 보여주십시오.

김대중 선생님, 명복을 빕니다. 하늘 나라에 그리고 역사의 장에 당신의 자리가 예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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