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김민선씨를 위한 변론

일본은 없다! 광우병도 없다?

등록|2009.08.19 14:15 수정|2009.08.19 14:15
김민선씨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1년 전의 발언을 둘러싸고 최근 쇠고기 수입업자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일본은 없다"와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되라"의 그녀와 내가 보기에도 고매한 지적 수준의 소유자임이 분명한 그가 장관설을 펼쳤고, 정진영씨와 박중훈씨, 진중권 교수님 등의 반박이 있었다.

B급 변호사인 내가 볼 때 웃지 못 할 이 상황의 쟁점은 첫째, 과연 김민선씨에게 사실을 확인할 의무가 있는지 아니 사실을 확인할 수나 있었는지, 둘째, 김민선씨가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법적 책임을 부담하는지, 셋째, 정말 쇠고기 수입업자가 요구하는 거액의 손해배상액을 물어줘야 하는지 여부이다.

과연 김민선씨가 사실 확인을 할 수나 있었던가?

모든 국민은 헌법에 의하여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는다. 그러나 취재권을 가지고 있는 언론사를 제외한 일반 국민이 미국산 수입 쇠고기가 광우병이 우려되는지 여부에 대해 사실을 확인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취재권도 없고 그에 관한 전문지식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법원은 이렇게 판시한 바 있다.

"일반 독자들로서는 보도된 비위 혐의 사실의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별다른 방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론기관이 가지는 권위와 그에 대한 신뢰에 기하여 보도내용을 그대로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때 보도내용을 그대로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언론기관이 권위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하기에 우리 법원은 이렇게도 판시했다.

"인터넷에서 무료로 취득한 공개 정보는 누구나 손쉽게 복사·가공하여 게시·전송할 수 있는 것으로서, 그 내용의 진위가 불명확함은 물론 궁극적 출처도 특정하기 어려우므로, 특정한 사안에 관하여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접속하는 인터넷상의 가상공동체(cyber community)의 자료실이나 게시판 등에 게시·저장된 자료를 보고 그에 터 잡아 달리 사실관계의 조사나 확인이 없이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판을 저하시킬 만한 사실의 적시를 하였다면, 가사 행위자가 그 내용이 진실이라 믿었다 한들 그렇게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취재권이 없는 김민선씨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우려에 대한 사실 확인을 했는지 여부는 먼저 김민선씨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진위가 불명확한 정보를 토대로 발언을 한 것인지 아니면  언론기관의 보도를 토대로 발언을 한 것인지를 가려 낸 다음, 후자의 경우라면 김민선씨 발언의 토대가 된 보도를 한 언론기관이 언론기관으로서의 권위가 있고 우리 사회가 그 언론기관을 신뢰하고 있는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 질문에 대해 독자들을 비롯하여 그와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참고로 PD 수첩은 우리 사회에서 나름 먹어주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이 우려된다고 보도했던 건 소위 메이저 언론이었다).

사실 확인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와 그녀는 과연 우리 법원이 앞서 본 내용으로 판결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김민선씨에게 사실 확인을 안했다고 따지는 걸까? 그와 그녀의 논리대로라면 그랬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와 그녀가 우리 법원 판결을 확인하지 않은 채 김민선씨에게 따졌다고 해서 그와 그녀를 탓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법은 구체적 상황에 처한 특정한 인간에게 그 상황에 비추어 불가능한 것을 기대하지 않으므로, 그가 하루에 책 서너 권 정도를 읽어 지적 수준이 높고, 그녀가 법을 제․개정하는 국회의원이라고 하더라도 법조인이 아닌 이상 그들에게 우리 법원 판결의 내용을 숙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정말 김민선씨는 버르장머리가 없는 걸까? 없으면 뭐가 달라지나?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청산가리는 아니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길에서 어쩌면 청산가리는 광우병 보다는 차라리 자비로울 수도 있다. 왜냐하면 청산가리의 경우에는 먹는 즉시 짧고 극열한 고통 속에서 죽을 가능성이 높지만, 광우병에 걸릴 경우에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사자인 환자의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치료로 인한 정신적, 경제적 고통까지 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자로서는 김민선씨의 발언이 버르장머리 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해서 무조건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예전에 한 인터넷신문이 "대국민 경계령! 좌익세력 최후의 발악이 시작 됩니다"라는 광고에 대해 "분열적 정신상태"라고 했다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에게 정신병 환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죽어버린 미국산 쇠고기를 청산가리에 비유하는 것보다 버르장머리가 없으면 더 없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우리 법원은 "'분열적 정신상태'라는 표현이 일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비난의 대상이 된 이 사건 광고의 내용, 표현을 감안한다면 원고가 수인했어야 할 범위 내의 것이다"라고 판시하면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대국민 경계령! 좌익세력 최후의 발악이 시작 됩니다"라는 광고를 낸 자는 의학적으로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진단을 받은 적이 없으므로 사실적 측면에서 접근하자면 분열적 정신 상태라는 표현은 거짓이라고 판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분열적 정신 상태라는 표현을 구체적 사실에 대한 진술로 보지 않고 추상적 의견 진술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한편 위의 인터넷 신문은 자기를 "열린우리당이 만든 파시스트 언론 집단"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이에 대해 법원은 "열린 우리당이 만든 파시스트 언론 집단이라는 표현된 부분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의 의견을 주로 반영하고 이를 대변하면서 당파적이고 선동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는 취지의 수사적인 과장표현으로서 모멸적인 표현에 의한 인신공격에 해당하거나 의견표명으로서의 한계를 일탈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워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어 위법하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하였다.

버르장머리가 없는 누군가 때문에 기분이 나쁘더라도 그 정도의 버르장머리 없음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이므로 참으라는 얘기다.

모든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자면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되라"는 여성들에게 테러를 교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 그건 정말 아니잖아. 그치? "청산가리"도, "일본은 없다"도,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되라"도 모두 레토릭(rhetoric)일 뿐이다. 레토릭을 레토릭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팩트(fact)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에 작금과 같은 웃지 못 할 비극이 탄생하는 것이다.

참! 법률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일본은 없다"고 한 그녀는 이런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퍽이나 궁금하다). 만일 일본인들이 "일본의 없다"라는 제목을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뒤집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한국인인 나와 독자들, 그와 그녀가 일본인이 쓴 "대한민국은 없다"라는 제목의 책을 보게 된다면 분명히 기분 나쁠 것이고, 그 저자에 대해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가 저자에게 법적 책임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그에 대한 가장 올바르고 바람직한 대응 자세는 그에 반박하는 내용을 조리 있게 정리하여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다수로부터 공감을 얻는 것이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 승소할 수 있을까? 글쎄...

그래, 백번을 양보해서 그들의 주장대로 김민선씨가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채 극적인 표현을 쓴 것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치자. 그러면 거액의 손해배상액을 물어주어야 하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가 인용되기 위해서는 행위의 불법성은 물론이고, 불법행위와 손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 관계 및 발생한 손해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어야 한다. B급 변호사인 나로서는 인과 관계는 물론 손해액의 입증이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자료에 기초한 수입 쇠고기의 예상 판매량과 그로 인한 수입업자의 이익을 도출하고, 여기에서 실제 판매량으로 인한 이익을 제외하여 감축된 매출 수량 및 이익을 산정한 다음, 그 감축된 이익 중 다른 요인들로 인한 감축분을 제외하고 김민선씨의 발언으로 인한 부분만을 특정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수입업자의 김민선씨에 대한 손해액 : ① 예상 이익 - 실제 이익 = 손해, ② 손해 x 손해 발생의 원인 중 김민선씨 발언이 차지하는 비율

말이 쉽지 실제 소송을 해 보면 장래 발생할 이익을 현재화하여 구체적으로 주장․입증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더구나 매출 감소의 원인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으므로 김민선씨의 발언이 차지하는 비율을 산출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물론 그런 어려움을 회피하기 위해 김민선씨와 PD 수첩 제작진을 한꺼번에 피고로 삼았으리라(이런 걸 법학에서는 "부진정 연대 채무"라고 한다) 짐작되지만, 위와 같은 난점들이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에 수입업자측 소송대리인이 어떤 논리를 주장하고 어떤 증거로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지 여전히 궁금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혹시 수입업자측이 이 글을 본다면 소장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해 주었으면 좋겠다. 소장을 공개하면 소송대리인이 법률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한 수입업자의 억울한 입장을 널리 알릴 수 있으므로 수입업자 입장에게도 득이 될 테니까 말이다.

우리 시대의 광대들과 조선 시대 양반들의 아량

정진영씨가 연산군으로 분(扮)했던 왕의 남자에서 감우성씨와 이준길씨(아~ 공길 오빠!)는 남사당패의 광대로 열연한다. 신분 제도가 엄격한 봉건제 사회 조선에서 남사당패는 지배계층인 양반들의 부정부패와 위선을 해학적으로 꼬집어 비틀었다. 그 꼬집어 비틀기의 대상이었던 양반님 네들의 속이 결코 편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사당패들에게 국밥이라도 한 그릇 먹이고 노잣돈이라도 쥐어줬던 건 바로 양반 계층이었으니, 조선의 양반들은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최소한의 아량(tolerance)을 베풀 줄 알았던 것이다. 그 아량이 근대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왕정이라는 정치 제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을 5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지탱해 주었던 것은 아닐까?

광대들의 꼬집어 비틀기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 정치 풍자 코미디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사회, 레토릭을 팩트로 받아들이는 사회, 그래서 버르장머리를 고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사회... 표현의 자유라는 근대 민주주의의 원칙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조선시대 양반들 만큼만이라도 해 줬으면 좋겠다. 그것조차도 너무 큰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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