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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속물인 나, 카이스트 합격생을 인터뷰하다

통영고 3학년 이도유 군, 카이스트 최종 합격

등록|2009.08.21 16:32 수정|2009.08.21 16:32
통영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카이스트 합격생이 탄생했다. 통영고(교장 신진용) 3학년 6반(담임교사 박종국) 이도유 학생이 그 주인공으로 사교육 없이 학교에서 진행하는 수업만으로 이같은 성과를 거둬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지방 중에서도 땅 끝, 소도시 중에서도 소도시인 통영에서 카이스트 합격생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취재했다. [기자 주]

▲ 카이스트 2010년 신입생 이도유 군과 박종국 담임교사 ⓒ 정선화





주말이면 부모님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 간 사연

자식을 카이스트에 보낸다? 오매불망 자식만 바라보고 사는 이 땅의 많은 학부모들의 염원이며, 실제로 합격한 경우 어떤 학부모들은 너무 자랑스러운 나머지 수험성공기를 담은 책을 출판하기도 한다. 그런 책을 읽어보면 자녀들이 명문대에 들어가는 데 손 놓고 있었던 부모들은 드물다. 각각 방식이 다를 뿐이지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에 통영고에서 카이스트 합격생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생면부지인 그 학생의 부모들이 더 궁금했다. "자녀교육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이 길이 맞는 것도 같고, 저 길이 맞는 것도 같은 이 수수께끼 질문과 함께.

아니나 다를까. 도유군의 아버지 이용수(52)씨는 조선소 직원, 어머니 진미애(49)씨는 전업주부로 평범한 가정이지만 여느 집과는 차별화 되는 특별한 삶의 방식이 있었다. 도유 군은 "주말마다 가족끼리 도서관에 가서 책을 봤어요"라며 "어렸을 때부터 늘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도유 군은 통영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까지 도서부장을 도맡아 했고 3학년이 된 지금은 학급 반장을 맡고 있었다.

역시 범상치가 않다는 느낌을 뒤로 하고 그럼 혹시 다른 형제나 남매도 다들 책을 좋아하냐고 질문했다. 도유 군은 "누나가 한 명 있는데 책을 너무 좋아해서 경상대 국어교육과에 다녀요"라며 웃었다.

"친구들아, 고마워"

이도유군은 올해 처음 실시한 카이스트의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통해 지난 7일 최종합격했다. 1차 서류전형, 2차 입학사정관 면접, 3차 심층면접을 통과했다. 그보다 먼저 학교장 추천 학생으로 선정된 이유가 궁금했다. 학교 측은 "지원한 학생이 한 명이었기 때문에 추천한 것"이라고 밝혔다.

카이스트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한 명만 지원했다? 선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에 도유군이 놀라운 답변을 내놨다. "제가 옛날부터 과학을 좋아했고, 또 카이스트에 가고 싶어했기 때문에 친구들이 저를 밀어줬어요. 친구들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결국 친구들이 뜻을 모아 이도유군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왔다는 얘기다. 도유군은 그 기대에 멋지게 부응했으며, 이번 합격은 이들의 우정과 학생들을 믿고 선택을 맡긴 학교가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품이었다.

▲ 통영의 명문, 통영고등학교 ⓒ 정선화





카이스트가 왜 날 뽑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학교에 이어 카이스트는 왜 이도유 군을 선택했을까? 도유 군은 "제가 보기에 입학사정관은 준비된 학생 보다는 가능성이 있는 학생을 선별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질문이 인성에 관련된 내용으로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특히 '왜 카이스트가 널 뽑아야 되느냐'는 취지의 질문이 많아 과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는 제 생각을 자신있게 표현하는 데 주력했고요. 도서관에 가면 항상 보던 책이 '과학' 분야였기 때문에 그 부분도 큰 도움이 됐고, 무엇보다 저를 위해 모의면접을 도와주신 통영고등학교 3학년의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고 답했다.

"자기주도적 학습이 중요합니다"

제 2, 제 3의 이도유를 꿈꾸는 많은 학생들을 위해 학습방법에 대해 물어봤다. 도유 군은 스스로 "저는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 대답도 미심쩍었지만 설마하니 TV에 항상 나오던 "학교 수업에 충실했다"는 말을 직접 듣게 될 줄이야. 무슨 학원에 다니냐는 질문에 도유 군은 한참을 생각하다 "중학교까지 체육관에 다녔어요"라며 "합기도 2단"이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이럴수가)

그렇다고 해서 이도유 군의 성적이 그만그만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초·중·고 모두 반 3등 이내의 성적을 유지했으며, 지금도 자연계 전교 3등 이내의 성적 상위권자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청했다. 도유 군은 "내신이 중요한 중학교까지는 학원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다고 보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자기주도적 학습이 중요하거든요. 저는 주로 문제집이나 개념서를 풀면서 그 개념을 확실히 이해할 때까지 공부해요. 이때 시작은 큰 가지를 한 개 놓고 작은 가지를 뻗어가는 형식으로 외우고요. 머리 속으로 조직도를 그리는 거죠. 아마 아무거나 던져주고 외우라고 하면 못할 거예요. 그리고 이건 어려서부터 생긴 습관인데 그날 배운 건 무조건 그날 끝낸다는 철칙이 있어요. 완벽하게 수업시간 내에 해결한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수업시간에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습니다"

또 "저는 지난 1학년부터 통영시와 통영고등학교에서 운영하는 '통영시 영재학습반'에 참여하면서 수학, 영어, 논술 등을 배우고 있는데 이곳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영어도 그렇고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는 논술 덕분에 '말하기' 능력도 향상되고요. 영재학습반 1기 수강생이 올해 3학년들인데 아마 2010년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는 친구들이 많을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 통영시 영재학습반 수료식 ⓒ 통영고등학교




앞으로의 계획은 "과학자가 꿈"이라며 "풀리지 않는 난제도 풀고 물리를 더욱 발전시켜서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라는 당당한 포부를 드러냈다. 통영에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해도 되겠냐는 약간은 짓궂은 질문을 던졌더니 "기대해도 좋다"며 "항상 꿈꿔왔던 나의 꿈 '과학'을 열심히 연구할 것"이라는 열정이 넘치는 답변이 돌아왔다.

전국의 수재들이 몰리는 '카이스트'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하다며 눈을 반짝이는 그는 지금보다 더 빛나는 미래를 예고하고 있었다. 기본 위에 형성된 실력, 끈기와 노력,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이뤄 낼 그의 꿈이 그것이었다.

[취재를 마치며] 주변인들이 본 이도유군

- 정선화 기자

"카이스트 합격이라길래 당장 취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5년 동안 통영에 살면서 카이스트 합격은 처음 보기도 했고(7년 만이라고 한다) 제목에 썼다시피 다른 사람들보다 난 유난히 학벌이 좋은 사람에게 약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때는 막연히 서울대에 가고 싶다는 꿈도 있었지만 서울대는 게으른 내게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내가 아는 사람들을 모두 통틀어도 카이스트 출신은 없다. 서울대도 없다. (아참, 그러고 보니 대학교때 교수님이 카이스트 나오셨는데...친한 사이가 아니니 제외할께요. 죄송해요) 그래서일까? 난 공부를 잘하는 사람에게 왠지 모를 존경심과 동경심을 가진다.

각설하고 그 학생이 정말 궁금했다. 대체 그런 학생들은 뭘 먹고 살까? "이슬을 먹고 사니? 책을 뜯어먹고 사니?" (실제로 이런 질문을 하진 않았다. 단지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들었던 생각일 뿐 ^^) 직접 만나 본 도유 군은 예의 바르고,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들과도 끈끈한 우정을 나눴으며, 자신감과 겸손함(상반된 부분이긴 하지만 분명 그랬다)을 두루 갖춘 진정 멋진 소년(덩치는 산만 하지만 아직 고등학생이니 청년이 아니라 소년이라고 표현함)이었다.

그리고 '학원에서 습득한 주입식 지식이 아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답을 향해 나아가는 창의적 사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정진하는 태도 등 이런 부분들이 입학사정관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 아닌가'하고 판단했다.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차며 말한다. 요즘 아이들은 버릇도 없고 하루종일 학원에 보내야 남들을 따라간다고. 하지만 그건 전체를 보지 못하는 편협한 시각일 뿐이었다. 잘 자란 도유, 대도시의 특목고 학생들을 제치고 카이스트에 들어갔다. 학원이라고는 합기도 학원 한 군데 다니면서 말이다.(통영시 영재학습반은 공교육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버릇이 없는 거? 게으른 거? 모두 키운 어른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내가 도유 군 보다 도유 군의 부모님들 더 존경하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 박종국 담임교사(수학 담당)

"이도유 군은 교사의 설명에 대한 경청과 이해가 매우 뛰어난 학생으로 자신이 이해하고 정리될 때까지 질문을 쏟아내어 심화된 내용까지 연계, 수업의 질적 향상을 가져오기도 한다. 수학 수업시간이면 이미 공식화 되어 있는 내용에도 의구심을 가져 조건을 가감시켜보고, 정리를 새롭게 해석해 보는 등 고정된 풀이만을 고집하지 않는 유연하고 열린 사고를 지녔다.

- 탁원령 물리교사

"물리 분야에서 최근 몇 년간 지도한 학생 중에서 볼 수 없었던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특히 역학과 전자기학에 대한 사고력이 깊어 중력장, 전기장, 자기장의 개념을 복합적으로 응용한 고난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물리학에 대한 지각과 흥미를 바탕으로 자신의 열정적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한다."

- 신진용 교장

"KAIST에서 더욱 실력을 쌓고, 끝없는 도전을 통하여 꿈을 실현하는 인재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려투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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