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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석봉에서 그런 잔인한 짓을 저질렀을까

지리산 천왕봉과 제석봉 산행을 나서다

등록|2009.08.24 09:34 수정|2009.08.24 09:34

지리산 제석봉에서.  ⓒ 김연옥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움을 얻게 된다는 지리산(1915m, 智異山).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그리고 경상남도 산청, 하동, 함양군에 걸쳐 있는 산으로 백두산의 맥이 뻗어 내렸다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민족의 비극과 아픈 역사를 지울 수 없는 상처처럼 품고 있는 산. 그러면서도 가슴에 사무친 한과 피 끓는 노여움을 다 감싸 안은 채 언제나 넉넉한 품을 보여 주는 어머니 같은 산이 지리산이다. 적어도 오십 번은 가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지리산은 한반도의 큰 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끝이기도 하면서 우리와 함께해 온 민족의 영산(靈山)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5일 광복절에 나는 몇몇 친구들과 지리산 천왕봉 산행을 나섰다. 아침 5시 50분에 마산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 도착한 시간이 7시 20분께. 거목산장이란 식당에 들어가 아침을 먹고 중산리탐방지원센터서 8시 30분께 우리는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천왕봉 산행 길에 초등학생들이 왜 이리 많아?

천왕봉 정상에서. 초등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 김연옥


단도처럼 생긴 칼바위에 오전 9시께 도착했다. 거기서부터 가파른 돌계단이 계속 이어져 힘이 꽤 든다. 천왕봉(1915m)은 지리산의 최고봉으로 남한에서 한라산(1950m) 다음으로 높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오르고 싶어 한다. 중산리서 출발하는 것이 천왕봉을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라서 그럴까, 그날 가족끼리 산행하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들이 많아 깜짝 놀랐다. 사실 몸이 가벼워서 어른들보다 산을 더 잘 탄다. 그런데 초등학생 자녀들을 천왕봉 정상에 발을 디디게 하고 싶은 부모들의 속뜻은 무엇일까.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천왕봉을 올라갔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하고 가족 사랑, 더 나아가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의 숨결을 느끼게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늘 아래 첫 산사, 법계사에서.  ⓒ 김연옥


망바위(1068m)를 거쳐 로타리대피소(1335m)에 이른 시간은 10시 30분께. 많은 등산객들이 그곳에서 쉬고 있었다. 나는 목이 말라 약수터로 곧장 가서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또 페트병에도 물을 받았다. 생각지 못한 즐거움이 그런 것일까. 산 위에서 가슴속까지 시원한 팥빙수를 맛본 일이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 덕분에 일행 모두의 몸과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로타리대피소 바로 위쪽으로 법계사(法界寺,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가 있다.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법계사는 해발 1450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절이다. 산신각 앞에는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보물 제473호)이 서 있다. 높이가 2.5m인 그 석탑은 거대한 자연 암반을 기단으로 삼아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았다.

법계사삼층석탑(보물 제473호)  ⓒ 김연옥


하늘 아래 첫 산사인 법계사는 인심 또한 후하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누구든 그곳에 가면 공짜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지난 2005년 5월 첫 토요일부터 해 온 무료 급식이라고 한다. 그날 메뉴는 소박한 비빔밥과 미역국이었다. 절집 음식은 정갈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맛있다. 우리는 천왕봉 정상에서 도시락을 먹을 예정이라서 비빔밥 한 그릇만 가져와 나누어 먹었다.

개선문  ⓒ 김연옥


천왕샘에서.  ⓒ 김연옥


낮 12시 40분께 개선문에 도착했다. 거기서 천왕봉 정상까지는 0.8km 정도 남았다. 개선문에서 30분 남짓 올라가면 남강 발원지인 천왕샘이 나온다. 천왕봉 정상에서 300m 아래 위치해 있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천왕샘은 수량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샘물을 한번 맛보기 위해 등산객들은 줄을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것 같았다.

천왕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  ⓒ 김연옥


천왕봉 정상  ⓒ 김연옥


드디어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 도착했다. 핸드폰을 보니 오후 1시 35분이었다. 정상 표지석을 잡고 사진을 찍는데도 줄을 서야 했다. 게다가 표지석 앞뒤에서 사진을 찍어 대니 정신도 없고 우습기도 했다. 표지석 앞면에는 한자로 '지리산 천왕봉(智異山 天王峰) 1915m'라 새겨져 있고, 뒷면은 '한국인(韓國人)의 기상(氣像) 여기서 발원(發源)되다'라고 새겨져 있다.

제석봉에서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단면을 보다

우리는 천왕봉 정상에서 맛있는 점심을 하고 제석봉(1808m)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통천문(1814m)을 지나 제석봉의 고사목지대에 이른 시간은 3시께였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미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그곳은 알고 보면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단면을 보여 주는 수난의 현장이다.

제석봉 고사목지대.  ⓒ 김연옥


한국전쟁 이후조차도 아름드리나무가 울창했다는 그곳이 지금과 같이 고사목지대로 변해 버린 이유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자유당 말에 제석봉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려 놓고 거목들을 베기 시작하였고, 그 도벌 사건이 여론화되자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을 질렀다는 거다. 대체 누가 권력을 등에 업고 그런 잔인한 짓을 뻔뻔스럽게 저질렀을까.

가슴 아픈 고사목들을 뒤로하고 오후 3시 20분께 장터목대피소(1653m)에 도착했다. 거기서 중산리까지는 5.3km이다. 중산리에서 천왕봉 정상까지가 5.4km였으니 비슷한 거리이다. 다행스럽게도 장터목대피소에서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 내내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않으면 참으로 지루한 길이다.

장터목대피소  ⓒ 김연옥


나는 이따금 계곡으로 내려가 잠시 쉬었다. 일행보다 빠른 걸음으로 혼자 하산하다 보니 맑은 계곡물을 바라보며 지친 몸을 내려놓는 여유를 부렸다. 유암폭포 앞에서는 경쾌하게 흘러내리는 폭포수에 일상으로 팍팍해진 마음마저 씻어 버렸다. 칼바위를 거쳐 중산리탐방지원센터로 다시 돌아왔다. 저녁 6시 30분이었다. 산행 길에 만난 초등학생들의 웃음 머금은 얼굴도 언뜻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지리산에 요즘 댐을 만들고 케이블카를 설치한다고 야단들이니 기막힐 노릇이다. 자유당 말에 도벌로 수난을 겪은 제석봉만 해도 그렇다. 이제는 경남 산청군과 함양군, 두 지자체에서 그곳에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한다. 너무 기막혀서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 내친김에 이렇게 고함이라도 질러야겠다. 우리의 영산(靈山) 지리산을 그대로 놔두라고.
덧붙이는 글 <찾아가는 길>
* 서울→ 중부고속도로→ 통영대전고속도로→ 단성 I.C→ 중산리 방면(20번 도로)
* 대구→ 88올림픽고속도로(함양 방면)→ 함양 I.C→ 통영대전고속도로→ 단성 I.C→ 중산리 방면(20번 도로)
* 광주→ 호남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 진주 I.C→ 지리산(시천) 방면(3번 도로)→ 단성 I.C→ 중산리 방면(20번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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