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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상류의 걸작, 병산서원

봉화, 영양, 청송, 안동(풍천) 1박2일 여행(3)

등록|2009.08.24 09:44 수정|2009.08.24 10:26
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이 있듯 '하안동(夏安東), 추청송(秋靑松)'이라는 말이 생겨날지 모르겠다. 청송에 접어들자 지역라디오방송에서 '여름 휴가객이 너무 많아 안동 하회마을 주차장이 비좁다'라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한여름인데도 약간 찬 기운이 느껴지는 날씨 때문인지 청송은 더 한산하게 느껴졌다. 청송은 역시 가을이 제일인가 보다. 

청송은 안동, 영양, 봉화에 비해 문화 깊이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조물주는 청송에 주왕산을 주어 편애하지 않았다. 가을에 다시 오기로 마음먹고 이번엔 주산지와 주왕산 아랫도리를 아침산책 삼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하안동(夏安東), 추청송(秋靑松)'

주산지 정경 산속에 있는 저수지라 한 번, 물이 거울 같아서 또 한 번, 물 속에 뿌리내린 왕버들에 다시 한 번 놀란다. ⓒ 김정봉


해 뜰 무렵 주산지로 향했다. 주산지 하면 물 안개가 낀 주산지라 부지런을 떤 것이다. 그 많던 안개는 다 어디 갔는지 부지런은 늦부지런이 되어 버렸다. 그냥 맑은 주산지를 보았다. 주산지를 보고 세 번 놀란다. 산속 저수지의 신비감에 한 번, 물 속에 뿌리내리고 사는 왕버들에 또 한 번 놀란다. 마지막으로 물 속에 비친 풍경으로 다시 한 번 놀란다. 주산지는 수경(水鏡)같다. 산 봉우리들을 그대로 물 속에 담고 있다. 거울처럼 사물을 거짓 없이 그대로 비치고 있다. 사물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곧잘 수경에 비유하는데 주산지는 사람에 비유하며 성인(聖人)에 가깝다.  

주산지에서 두 번 주왕산 산등성이를 넘어오면 주왕산국립공원이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기암이다. 한자로 기암(奇巖)이 아니라 기암(旗巖)이니, 길 안내라도 하듯 산봉우리에서 손짓하는 기암(旗巖)을 향해 가다 보면 대전사에 닿는다.

대전사와 기암 맞배지붕집 보광전과 기암이 함께하는 대전사는 호젓하여 아침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 김정봉


대전사는 조선 중기에 불타 그리 볼만한 건물은 없다. 아담한 맞배지붕집 보광전과 함께 기암을 보거나, 몇 십 년 전쯤 객사한 사람의 뼈 조각을 꿰맞추듯 정성 들여 석탑부재를 엉기성기 맞추어 놓은 가슴저린 석탑을 보는 맛이 있다. 주변에 벌개미취꽃이 피어 있는 소박한 부도 밭도 볼거리다. 호젓하여 아침산책하기에 좋다.

삼남 4대 길지 중의 하나인 내앞마을

청송에서 안동으로 들어가기 전에 들르고 싶은 마을이 있다. 의성 김씨 동족마을인 내앞마을이다. 봉화에 닭실마을이 있다면 안동에는 내앞마을이 있다. 모두 삼남 길지 중에 하나다. 먼저 천전(川前)슈퍼가 이 곳이 내앞(천전)마을임을 알려 준다. 임하댐으로 예전 내(川)는 알 길없는 물 속에 묻혀 버렸고 마을 앞에도 큰길이 나는 바람에 주변이 어수선해졌다.

내앞마을 정경닭실, 하회, 양동마을과 함께 삼남의 4대 길지 중에 하나다. 임하댐과 큰길로 내앞마을은 아늑한 맛은 없다 ⓒ 김정봉


내앞의 유서 깊은 의성 김씨 종가는 규모가 대단하며 관리 또한 잘돼 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화려하게 지어지지 않았다. 사당으로 나가는 샛담은 막돌과 기와로 검소하게 쌓았고 안채에 딸린 토방, 사랑채에 딸린 툇마루와 문 모두 소박하게 꾸몄다. 내가 본 고택 중 제일이다. 사람이 실제로 거주하기 때문에 부석부석하지 않고 윤이 나는데다가 안채가 다른 공간하고 구분되어있어 마음놓고 구경할 수 있어 좋다.

55칸이나 되는 저택이어서 처음 들어가면 복잡해 보인다. 일단 행랑채가 일직선으로 자리잡고 그 가운데 대문이 나있는 것이 특이하다. 집안에는 동쪽에 □자형 안채가 있고 대문과 마주보는 쪽문 서쪽에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가 집 안쪽에 있는 것도 색다르다. 이 사랑채는 안채에서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쪽마루가 딸려 있고 사랑채에서 남쪽으로 길게 서고가 만들어져 행랑채의 누 다락과 연결되어 있다.   

의성김씨 종가 집안 집 규모에 비해 마당, 토방, 툇마루, 샛담, 문살 등은 모두 검소하게 꾸며졌다 ⓒ 김정봉


사랑채 서쪽은 정원이고 그 위에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집안은 사랑채와 안채가 있고 마당은 안채가 들어앉고 남은 공간으로 되어있어 아늑하다 못해 좀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채 밖 정원은 시원하게 조성되어 있다. 사당에 올라 내앞을 보면 시원하다.

천변걸작(川邊傑作) 끝에 탄생한 병산서원

정자(亭子)중에 제일인 청암정, 민간정원의 백미 서석지, 모전탑의 최고봉인 봉암모전탑, 고택의 걸작,  의성김씨 종가 등 지금까지 최고의 작품만 보고 왔다. 낙동강으로 이름 붙이기엔 멋쩍은 내성천, 반변천가에 오롯이 남아 그 지역을 빛낸 걸작들이다. 이제 우리나라 최고의 서원인 병산서원을 보러 갈 차례다.

낙동강변에 서 있는 소나무한 그루 소나무가 낙동강을 지키려 하듯 외로이 서있다. 멀리 보이는 산이 하회마을 주산인 화산(꽃뫼)이다. 여기에 오면 강폭도 제법 커져 이에 어울리는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이 있다 ⓒ 김정봉


태백물과 반변천이 몸을 섞은 뒤 안동과 풍산들을 적신 낙동강은 제법 몸에 살이 붙어 큰물이 된다. 물이 커지면 마을과 건축물의 스케일도 커진다. 이전 마을과 스케일이 다른 하회가 여기에 있고 우리나라 최고의 서원, 내가 뽑은 최고의 여행지인 병산서원이 이 낙동강 변에 자리잡고 있다. 낙동강은 옹골지고 암팡진 천변걸작(川邊傑作)들을 빚은 뒤 이 곳에 이르러 화룡점정하듯 하회와 병산을 마지막으로 빚고 하류로 향한다.     

낙동강은 풍산들 끄트머리에 오면 우뚝 솟은 화산(꽃뫼)를 만나게 된다. 꽃뫼따라 크게 휘돌아 흘러가는데 그 모양이 바닥에 축 늘어진 문어 머리모양 같다. 꽃뫼 동쪽에 병산서원이 있고 물길따라 쭉 내려가면 10리 정도 떨어진 곳에 하회마을이 있다.

병산서원 가는 길은 아직도 흙길이다. 걸어서 오라는 메시지인 것 같은 데 차로 오더라도 천천히 오라는 뜻일 게다. 차가 달리면 뽀얀 먼지가 나부낀다. 그래도 걸어서 가는 사람이 없어 미안한 감이 덜하다. 학창시절 목놓아 부르던 노래 <천릿길> 을 흥얼거려 본다.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

병산서원 앞에 섰다. 남도의 꽃, 배롱나무가 빨갛게 피었다. 서원 전체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병산서원은 입학하는 날처럼 마음을 설레게 하고 약간의 긴장감을 준다. 복례문 앞에도 배롱나무가 양쪽으로 줄지어 서있다. 설렘과 긴장감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유지시켜준다. 아무런 여유없이 불쑥 문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면 허망할 일 아닌가?   

병산서원 복례문과 배롱나무 병산서원 앞에 줄지어 심어져 있는 배롱나무 꽃은 설렘과 긴장감을 그대로 유지시켜 준다. ⓒ 김정봉


복례문에서 보면 만대루에 오르는 계단길이 마치 입교당까지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누마루 밑에 이르면 자세를 곧 낮추게 되고 겸허한 마음으로 서원앞마당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때가 설렘과 긴장감이 최고조로 유지된다. 누마루 계단을 올라서면 서원의 마당이다. 일순간 조였던 몸과 마음이 풀린다. 그대로 만대루에 오르기라도 하면 풀썩 주저앉게 된다. 복례문 앞 배롱나무 길에서 만대루까지의 이 짧은 길은 극적변화가 일어나는 최고의 길이다.  

복례문, 만대루까지 이어진 계단길 이 계단길은 밑에서 보면 입교당까지 이어진 것같이 보인다. 좁고 낮은 길은 설렘과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게 한다 ⓒ 김정봉


정면에 서원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 입교당이 있고 양 옆으로 기숙사인 동재·서재가 있다. 서책과 목판을 보관하는 장판각과 사당인 존덕사가 뒤편에 있다. 존덕사 오른쪽에 제수를 마련하는 전사청이 쪽문으로 드나들게 되어있고 별채로 서원을 관리하는 고직사가 서원 오른쪽에 있다.

학교의 교화처럼 병산서원의 원화(院花)는 배롱나무 꽃인가 보다. 복례문, 장판각, 사당 주변은 배롱나무가 많이 심어져 눈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없다. 특히 배롱나무 꽃 그늘과 단아한 건물이 잘 어울리는 장판각 주변은 한가히 거닐며 주변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사당은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그 곳에서 내려다보는 맛도 아주 좋아 내가 마음속으로 뽑은 병산서원의 감상존(zone)의 하나다.

만대루에서 본 정경 가까이 배롱나무 꽃이, 멀리 낙동강이 눈에 들어온다. 병산서원의 원화(院花)는 배롱나무인가 보다. 배롱나무가 눈에서 사라지는 때가 없다 ⓒ 김정봉


병산서원은 붐비고 있다. 명문학교가 된 것 같다. 만대루에 오르는 계단 앞에는 신발이 가득하다. 이래서 마당이나 만대루에 오르는 나무계단, 누마루 등 어디든 윤기가 흐르지 않은 곳이 없다. 만대루 기둥 옆을 차지하여 책을 보는 사람, 백일홍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낙동강을 하염없이 바라다보며 뭔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 가족끼리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는 사람들로 가득하여 만대루는 비어있을 때가 없다. 병산서원은 최고의 답사처로 뽑힐 정도로 인기가 좋다. 그러나 흙길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보기 좋게 한다 하여 낙동강 물길에 손을 댄다면 금세 사람들은 이 곳을 외면할 것이다.

만대루 나무계단 신발만대루는 항상 만원이다. 그래서 만대루 계단이나 누마루는 윤기가 흐른다 ⓒ 김정봉


병산서원은 열려 있다. 사람에게도, 자연에게도 열려 있다. 서원에 둘러쳐 있는 담은 서원과 외부를 나누는 역할을 하지만 만대루에 오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만대루에서는 담은 더 이상 외부와의 영역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낙동강 강물은 담을 넘어 만대루로 그대로 들어온다.

병산서원은 자연에게만 열려 있는 게 아니다. 사람에게도 열려 있다. 어느 누구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다. 만대루에 올라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오늘은 사당까지 열려 있다. 단지 만대루 밑을 통과하려면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처럼 겸허한 자세만 가지면 된다. 만대루에 누워도 좋다. 그러나 신발 수만큼 올라와 있는 사람들의 눈이 앉아 있게 한다. 병산서원이 열린 만큼 우리의 마음도 열린다.

이제 여행을 갈무리할 때가 되었다. 낙동강이 제일 잘 보이는 곳을 찾았다. 낙동강에 인접해 있고 하회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겸암정사, 화천서당, 옥연정사와 부용대다. 바위절벽인 부용대를 중심으로 서쪽 아래에 겸암정사가, 동쪽에 화천서당과 옥연정사가 있다.

겸앙정사는 하회마을 마을숲과 마주하고 있고 화천서당과 옥연정사는 하회마을과 연결되는 나룻터가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모두 하회마을을 다른 면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옥연정사에서 부용대로 가는 길목 중 소나무 한 그루가 멋지게 서있는 곳은 한적하고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여 주변 풍광을 감상하기 좋다. 밑으로 곧장 내려가면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 있고 한켠에 나루터가 있다.

부용대은 옥천서당 뒤쪽으로도 갈 수 있는데 약 10여 분 걸어 오르면 된다. 부용대에서 보면 하회마을이 항공사진으로 보듯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원진정사, 북촌댁, 양진당 등이 육안으로 보인다. 낙동강이 휘돌아 가는 모양이 그대로 보여 이 곳이 왜 물돌이동(하회)인지를 알 만하다.

부용대에서 본 하회마을과 낙동강하회마을 앞 낙동강은 낙동강 전체로 보면 목에 해당된다. 이 마을 사람들에겐 이 곳을 건드리는 것은 목을 건드리는 기분이 들것이다. ⓒ 김정봉


하회에 이르면 낙동강은 제법 큰 물이 되지만 낙동강 전체로 보면 상류에 해당하는 곳이다. 사람으로 치면 목에 해당한다. 얼마 전 철회는 되었지만 하회마을 앞에 보를 설치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다. 하회는 배모양이라 하여 돌담도 쌓지 않고 우물도 파지 않는다 한다. 이런 마음을 갖는 마을사람들에게 보를 쌓겠다고 하는 것은 목에 무거운 통나무를 얻는 것 같은 기분이었을 게다. 다행히 철회는 되었지만 무슨 일을 벌일 때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하회는 큰일없이 몇 백 년을 견뎌 온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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