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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는 소방공무원까지 투표소에 동원령 "제복 입은 근무자 배치, 투표 감시 역할"

[제주지사 소환투표 D-1] 막판까지 기승 부리는 공무원들의 투표방해 의혹

등록|2009.08.25 19:04 수정|2009.08.25 22:27

▲ 주민소환 투표를 하루 앞둔 25일 김태환 제주지사 소환대상자의 홈페이지는 아예 "투표장에 가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참정권 포기 선동 팝업창이 떴다. 만평까지 동원한 이 팝업의 하단엔 "투표율이 1/3에 미달되면 개표 자체가 무산된다"는 설명까지 해두었다. ⓒ 김태환 소환대상자 홈페이지




김태환 제주지사 주민소환 투표를 하루 앞두고, 제주특별자치도가 26일 공무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해 투표를 방해할 계획을 세웠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5일 김태환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소방공무원을 대거 동원한 투표방해 의혹이 제기되었다"며 한 소방공무원의 제보를 공개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투표 당일인 26일, 제주특별자치도 소방본부가 당일 근무자를 제외한 모든 소방공무원을 투표소별로 고정배치할 것을 명령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소환운동본부측은 소방본부 명의의 '2009년 8월 26일 주민소환투표 소방안전종합대책'이라는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투표 당일 '투개표소 소방안전점검 실시 및 화재위험요소 사전제거' 등을 명분으로 소방서별 점검반을 편성해 투개표소 '유동 순찰' 등에 나서기로 했다는 것이다. 특히 서귀포시 소방대는 이를 확대하여 비번직원까지 동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방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일 근무자를 제외하고 비번 근무자까지 총동원하는 일은 전례 없는 일이다. 특히 소방공무원근무규정(훈령-내부규칙)에 따르면 '대화재가 발생한 때', '화재위험경보가 발표된 때', '한해, 풍·수·설해 등 긴급재해가 발생하여 소방관서의 장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도 최대 비번자의 1/2까지 동원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소방관계자는 주민소환운동본부에 "비상상황도 아니고 비번자까지 전원 동원할 만큼 재난 경보가 발령된 것도 아닌데 투표소에 소방공무원을 배치한다는 것은 명백한 재량권 일탈"이라고 밝혔다.

이를 제보한 소방공무원 역시 "24시간 근무를 끝낸 비번자가 동원되는 것은 착취근로"라며 "제복근무자가 투표소에 고정배치되는 것만으로도 자율적인 투표분위기가 침해될 수밖에 없다"고 주민소환운동본부측에 밝혀왔다.

또한 이 제보자는 "나도 공무원이지만 이건 정말 아니"라며 "착취당하면서 투표도 방해받고 도민들 투표하는 것도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소방공무원 신세가 너무 불쌍하다"고 개탄했다.

하지만 제주도소방본부는 25일 주민소환운동본부의 '소방공무원 투표방해 의혹'과 관련해 "투개표소에 대한 소방순찰 실시 및 점검 등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실시되어 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소방본부는 "이번 주민투표와 관련해 소방안전대책 추진에 있어 서귀포소방서가 투표소별 1인 2개조 편성 고정배치 안전대책을 추진할 계획이었다"며 비번자 근무계획을 사실상 인정하고 "투표소 안전대책 계획대로 근무자를 중심으로 유동순찰토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예비군 훈련장과 시청 을지훈련실에서 투표방해 발언하는 동장과 통장

일부 공무원들의 투표방해 의혹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8일엔 현직 동장이 예비군훈련장을 찾아 빵과 우유를 나눠주며 주민소환투표에 반대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선관위는 이 동장의 발언이 부적절했음을 지적하고 지난 20일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또 지난 19일엔 한 통장이 제주시청 별관 을지연습 상황실에서 을지연습에 참가한 공무원 30여 명과 통장 100여 명을 대상으로 주민소환의 불필요성을 언급하고 투표불참을 권유하는 발언을 한 혐의로 24일 검찰에 고발됐다.

제주도 선관위는 "법률에 의해 통·리·반장은 투표운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고, 이들의 행위는 지역 유권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투표일이 임박한 시기에 주민소환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중대한 공무원과 통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주민소환에 대한 발언을 한 행위는 그 위법 정도가 중대하다고 판단해 고발조치했다"고 밝혔다.

일부 공무원들의 투표방해 행위가 갈수록 심해지자 전국민주공문원노동조합(민공노) 제주지역본부가 주민소환 투표를 하루 앞둔 25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공무원의 엄중중립"을 촉구했다. 

민공노 제주본부는 "누구를 탓하고 비난하기 전에 전국민주공무원노조 제주지역본부는 도민 여러분에게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주민소환과 관련해 공무원의 어떠한 위법행위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밝혔다.

민공노 "죄송합니다, 끝까지 책임 묻고 고발조치할 것"

특히 민공노 제주본부는 제주시청 을지훈련 상황실에서 공무원에 의해 주민소환투표 반대발언이 횡행한 점을 지적하며 "그곳은 단지 주민소환투표 부정개입의 범죄현장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무참히 유린당한 곳"이라고 비통해 했다.

민공노 제주본부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데 대해 도정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누구의 지시로 이러한 일을 했는지 반드시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민공노 제주본부는 "더 이상 공무원이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지속적인 내부감시를 통해 주민소환투표 위법사실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묻고 고발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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