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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대연합 얘기하기 전에 민주파 10년 반성해야"

민주당 "민주대연합이 DJ 유언"... "포스트 DJ의 대안인지 의문" 시각도

등록|2009.08.25 17:35 수정|2009.08.27 10:20

▲ 김원 정치학 박사는 "이명박 정권에서 과거 권위주의정책으로 회귀하는 정책이 상당수 있지만, 그런 공권력 작동은 DJ-노무현 정권에서도 있었다. 다만 피부에 와 닿는 정도가 이명박 정권에서 커서 판단을 흐리게 하는 측면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23일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헌화, 분향한 뒤 걸어 나오고 있는 장면. ⓒ 남소연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던 지난 7월 22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비서실장이던 박지원 현 민주당 정책위의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야4당과 단합하라. 모든 민주 시민사회와 연합해서 반드시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남북문제 등 (3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승리하라."

박지원 의장은 지난 24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같은 발언을 전하면서 "이게 최후의 말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야 4당-시민사회의 민주대연합이 DJ의 마지막 유언이었다는 얘기다.

DJ의 '민주대연합론'('민주세력연대론')은 이미 지난해 11월에도 나왔다. 당시 DJ는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국민을 믿고 단결해야 한다"며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민주연합을 이뤄야 한다"고 당부했다.    

"낡은 담론으로 치부하는 것은 비생산적"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은 DJ의 서거를 계기로 다시 등장한 '민주대연합론'이 아주 새로운 담론은 아니다. 멀게는 지난 1987년과 1992년, 1997년 대선에서도 등장했고, 가깝게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감세정책, 용산철거민 참사, 미디어법 강행 등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면서 '반MB연대'라는 이름으로 제기돼왔다.

1980년∼1990대에 등장했던 민주대연합론은 사실상 'DJ 당선'을 위해 야권과 재야운동권이 개발한 논리였다. 수많은 재야인사들이 '참여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DJ세력에 수혈됐음은 물론이다. 특히 민주대연합론은 '진보정당 시기상조론'으로 이어져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억압하는 효과를 낳았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민주대연합론은 '반MB전선 구축'을 내걸고 있다. 지난해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민생민주국민회의'(국민회의)가 출범한 것도 반MB연대의 일환이었다. 여기에는 100여개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당·민주노동당 등 5개 정당이 참여했다. 형식상으로만 보면 DJ가 주문한 '야당 4당-시민사회 대연합'이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반MB연대기구는 '유명무실'했다. 국민회의가 용산철거민참사, 쌍용차 사태 등의 국면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DJ의 적자'라는 민주당은 미디어법 장외투쟁에 '다걸기'를 하면서 노무현 정부가 남겨놓은 쌍용차 사태 대응에 무기력했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반MB연대를 '정권퇴진'이라는 극한으로 끌고갔다.

현재의 민주대연합론(혹은 '반MB연대론')이 '이명박 정권=독재정권=악'의 프레임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1980년대 군부권위주의정권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제기됐던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낡은 담론"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하지만 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교수는 "정당연합은 유럽에서 분명한 추세이고 오바마 선거가 보여주듯 정당과 시민사회의 연계도 세련되게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며 "연대정치를 80년대 구버전이라고 보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고 '낡은 담론' 주장을 반박했다.

정 교수는 "지금 시대에 맞는 민주대연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며 "내년 지방선거 등을 중심에 놓고 범민주개혁진영의 연대기구 구성을 논의하면 구체적인 역할분담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창현 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은 "'비판적 지지'를 할 때는 진보정당이 없어서 연대를 하고 나면 성과 자체가 유실됐다"며 "하지만 지금은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할 정도로 내부역량이 강화됐기 때문에 발전되고 성숙한 연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누가 민주대연합 구도를 원하고 즐기는지 살펴봐야 "

▲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 오마이뉴스 구영식


이러한 '민주대연합 긍정론'에도 불구하고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제기되고 있는 '민주대연합론'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다. 특정 정치세력이 민주대연합론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만들어진 현실>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망국론'을 정면으로 반박한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DJ의 유언이라면서 민주대연합을 얘기하는 것은 아주 곤란하다"며 "무슨 김일성의 유훈통치도 아니고 그런 발상 자체가 민주주의에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주의는 DJ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왔다. 그런데 정치가들이 그것을 민주적 영웅의 역사로 기술하고 있다. DJ의 이름으로 왕조적 사관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 같다. '영웅이 역사적 판단을 제시했으니 따르라'는 식으로 얘기해서는 곤란하다. 특히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그 어떤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

박 대표는 "DJ와 노무현 밑에서 정치를 한 사람들이 지난 10년을 책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안 지는 방법으로 DJ 등을 신격화한다"며 "먼저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지난 민주파정부 10년의 잘못을 반성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민주당은 민주대연합을 얘기하기에 앞서 경제문제나 노동문제, 복지문제, 남북문제 등을 어떻게 풀 것인지를 말하는 게 필요하다. 민주대연합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자신들을 지지하라는 언어에 부과하다. 본인의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누가 민주대연합 구도를 원하고 즐기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최근 <87년 6월항쟁>(책세상)을 펴낸 김원 정치학 박사는 "공권력이나 억압적 국가기구가 과거와 같이 작동한다는 것을 '독재'라고 규정하는 데서 민주대연합이라는 발상이 나오는 것 같다"며 "하지만 과거와 같이 상층 단위에서 그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지만 시민사회에서 그런 담론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에도 독재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담론이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80년대나 90년대 초반처럼 영웅이나 걸출한 정치인이 사회변화를 추동하기에는 한국사회가 많이 분화됐다. 이명박 정권에서 과거 권위주의정책으로 회귀하는 정책이 상당수 있지만, 그런 공권력 작동은 DJ-노무현 정권에서도 있었다. 다만 피부에 와 닿는 정도가 이명박 정권에서 커서 판단을 흐리게 하는 측면이 있다."

평등의 문제 해결할 '사회경제적 민주화 연합' 나와야

김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 등에서 남긴 업적은 뚜렷하다. 그의 민주화투쟁은 직선제 쟁취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로 이어졌고, 일관된 대북정책인 햇볕정책을 통해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이라는 큰 성과를 얻어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집권한 이후 IMF 극복을 명분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수용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그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사회적 양극화 심화'라는 심각한 문제를 남겨놓았다. 누구의 지적처럼 "해방 이후 가장 나은 정부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양극화가 벌어지는 역설"이 나타난 셈이다.  

김 전 대통령이 쟁취한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가치는 이어가되, 제4의 가치라고 할 '평등의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시대에 개혁진보진영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이명박 정부의 탄생으로 민주파 정부의 10년이 끝난 지금 필요한 것은 '민주 대 독재'의 구도에 갇힌 '민주대연합'이 아니라 '평등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연합의 출현이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사회경제적 민주화 연합'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한겨레21>(제775호)에 기고한 글에서 "3김 없는 3김시대의 막을 내리고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까지 꽃피울 수 있는 정치구도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이명박 정부는 반대함으로써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전을 이룰 대안을 현실화함으로써 비로소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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