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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굴레 벗은 삼성이 반드시 해야 할 세 가지

[전망] 불법 경영권 승계 논란 마무리된 삼성, 어디로 가는가

등록|2009.08.26 11:48 수정|2009.08.26 11:48

▲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 아들 이재용 삼성 전무가 21일 밤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1일 밤 9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위 아래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들어섰다. 두세 걸음 뒤로 이 전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따랐다. 곧이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에 국화꽃 한 송이씩을 올리고 머리를 숙였다.

이건희 전 회장 부자가 이처럼 나란히 외부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최근 몇 년 새 처음이다. 지난 2007년 11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이후 특검수사, 이 회장의 퇴진과 재판 등이 진행됐지만, 이들 부자가 함께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물론 삼성재판이 진행되는 사이에 이재용 전무도 법원에 나오긴 했지만, 이 전 회장과 함께 움직이지는 않았다. 또 전직 국가원수의 분향을 위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온 것 자체가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재계 주변에선 다른 이야기도 나왔다. 재계 한 인사는 "이들 부자를 둘러싼 경영권 세습 논란이 완전히 해소됐던 날에 대외적인 공개 행사에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을 유의깊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 경영권 승계 논란 마무리된 날, 이건희 부자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분향

이날(21일) 오후 삼성은 이 전 회장이 삼성SDS 주식 헐값발행 사건 파기환송심 결과에 대해 재상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전날(20일) 조준웅 삼성 특검쪽에서도 이미 이번 판결을 받아들이기로 발표했다.

따라서 '법원의 삼성 면죄부' 논란 속에 이 전 회장은 회사 배임 등의 유죄가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이 확정됐다. 이에 앞서 삼성그룹 불법 경영권 승계의 핵심 사건인 에버랜드 전환사채(CD) 편법 증여에 대해 대법원은 이 전 회장의 무죄를 확정했다.

결국 지난 1994년 이 전 회장이 이재용 전무에게 60억8000만원을 증여하면서 시작된 경영권 승계 작업과 이를 둘러싼 각종 불법 논란이 15년 만에 법적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날 이건희 전 회장과 아들인 재용씨가 공개석상에 함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 변호인단이 (SDS 사건에) 재상고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과 이 전 회장 등의 김 전 대통령 분향과는 관련이 없다"면서 확대 해석을 경계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삼성계열사 임원은 "이 전무 입장에선 그동안 자신에게 낙인처럼 찍혔던 편법 승계 논란에서 벗어나서 홀가분한 점도 있을 것"이라며 "이 전 회장도 집행유예로 끝난 상황에서 후계자인 아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나선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이 스스로 내놓은 2508억원 처리 여부 관심

▲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 남소연


그렇다면 이제 삼성은 무엇을 해야할까. 불법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법적 공방은 마무리 됐지만, 이 전 회장 등이 풀어야 할 숙제들은 여전하다.

우선 이 전 회장이 작년 7월 1심 판결을 앞두고, 삼성에버랜드와 SDS에 지급한 2508억원에 달하는 돈의 처리 여부다. 당시 이 전 회장은 재판부에 양형 참고자료를 제출하면서, 특검이 공소장에 제시한 피해금액(에버랜드 970억, SDS 1539억) 모두를 지급했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에선 2500억원이 넘는 돈이 오갔는데도, 회계처리가 전혀되지 않은 점을 들면서 과연 제대로 돈이 지급됐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삼성 쪽에서 에버랜드 사건의 경우 무죄로 확정됐고, SDS 사건의 경우도 배임액이 227억원으로 결정됐기 때문에 나머지 돈을 이 전 회장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럴 경우 이 전 회장에게 2283억원을 되돌려 줘야 한다.

삼성 관계자는 "어떻게 할지 최종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면서 "원칙적으론 각각의 사건 결과에 따라 나머지 돈을 (이 전 회장에게) 돌려줄 수밖에 없다. 만약에 그렇지 않을 경우 증여가 돼서 세금을 다시 내야 하는 등 복잡해 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상조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이 전 회장의 집행유예 결정의 참작 사유로 이들 회사에 돈을 지급한 사실을 언급했다"면서 "하지만 에버랜드와 SDS 회계장부 어디에도, 실제 돈이 입금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돈을 지불했다고 치더라도, 삼성 쪽이 이제와서 법원의 판결에 따라 돈을 (이 전 회장에게) 되돌려 준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재판부의 유무죄와 처벌 수위에 영향을 미칠 양형자료를 낼 때와 판결 이후 말을 바꾸는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삼성의 또 다른 인사는 "당시 (이 전 회장은) 법원에 회사 손해 여부를 떠나, 사회적 물의를 빚은 데 대한 깊은 책임감 때문에 돈을 지급한 것"이라며 "해당 회사들이 돈을 다시 되돌려 준다고 하더라도 이 전 회장이 다시 받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잃어버린 2년"이라던 삼성, 한국사회와 어떻게 소통할까

▲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 유성호


또 한 가지 숙제는 작년 4월에 내놓은 삼성의 경영쇄신안에 대한 성실한 이행 여부다. 경영쇄신안은 이건희 회장 퇴진을 비롯해 전략기획실 해체, 차명계좌 실명전환과 사회환원, 금융사업 투명화 등 모두 10개 항목으로 돼 있다.

삼성쪽은 이들 쇄신안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미 완료됐으며, 일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룹 한 관계자는 "지난 대법원 판결과 함께 이번 파기환송심 결과로 법적인 부분이 마무리된 만큼 앞으로 사회환원 등의 조치를 검토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이 이미 실행을 완료했다고 밝힌 쇄신안에 대해선 논란이 여전하다. 이건희 회장이 퇴진했다고 하지만, 삼성 인사 등 주요 의사 결정에서는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른바 '커튼 뒤 경영'이라는 것이다.

또 형식상 해체된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도 여전히 일부 기능을 유지한 채 과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퇴진한 이학수 전 실장(부회장)의 그룹내 영향력 역시 여전하다는 의견도 많다.


특히 이 전 회장이 가지고 있던 차명계좌의 실명전환과 함께 사회환원이 어떻게 이뤄질지도 관심거리다. 이 전 회장은 삼성 특검 직후, 자신의 차명재산 4조5373억원 가운데, 삼성생명 주식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밝혔다.

삼성쪽은 차명 주식에 대한 실명 전환은 마무리가 됐으며, 향후 각종 세금과 벌금 등을 납부한 이후 최종적으로 남은 돈의 규모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숙제는 이제 삼성 스스로 근본적인 지배구조 해법을 내놔야 한다. 이재용 전무로의 경영권을 둘러싼 법적 논쟁은 일단락됐지만, 경영권 승계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따라서 향후 '이재용의 삼성' 시대를 위해서라도 좀더 성숙된 모습으로 시민사회 등과 소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영희 변호사는 "삼성SDS 사건에 대해 법원은 이 전 회장의 배임책임을 묻는 것과 동시에 이재용씨로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불법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며 "이재용씨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지난 2년 동안 삼성에선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다"면서 "지난 경영쇄신안에서도 지주회사 및 순환출자 해소 등도 검토하고 있으니, 시간을 두고 지켜봐 줬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김상조 교수는 "삼성은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를 통해 현재의 조직체계를 그대로 지주회사체제로 가기를 희망하는것 같다"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금융규제 감독을 강화하는 등 변화된 환경을 냉정히 평가하고, (삼성) 스스로 전략을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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