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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신종플루에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

신종플루를 통해 드러난 공공의료체계의 허점과 위험천만한 의료민영화

등록|2009.08.27 09:54 수정|2009.08.27 09:54

▲ 지난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보건소 앞마당에 설치된 컨테이너에서 간호사가 감기증상으로 찾아온 환자의 체온을 재고 있다. ⓒ 권우성


지난 8월 21일  마거릿 챈(Margaret Chan) WHO 사무총장이 신종플루 대유행 2차 파고(swine flu pandemic's second wave)를 경고하고 나섰고, 21일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1800명이 넘는 사망자가 확인되었다. 미대륙을 중심으로 한 북반구의 유행은 멈춘 것으로 보이나 국내에서도 2명이 사망했으며 일본에서도 3명이 목숨을 잃는 등 아시아 지역의 대유행은 계속되고 있다(27일 현재 일본에서는 4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현재 신종플루는 아메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한 북반구에서의 유행이 마무리되고 겨울을 맞이한 남반구로 번지고 있다. 현재 계절적으로 여름인 아시아 지역에서의 유행은 특이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북반구에 겨울이 닥치면 2차 대유행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WHO에서는 2009년 7월 31일 현재 신종 플루는 전세계 각국에 퍼져 있다고 결론내리고, 더 이상 국가별로 감염자 수를 보고받지 않고 있다. 다만 새롭게 감염이 확인된 국가는 추가로 발표하고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감염성은 높다(하지만 1차대전 시기의 스페인독감 수준은 아니다). 치사율은 낮다(정확한 통계치가 없으나 계절성 독감 수준보다는 높으나 기존의 치명적 독감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바이러스 변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유행이 한바퀴를 돈 시점에서도 변이가 일어나지 않은 상황은 독성 변이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잠복기는 계절 인플루엔자와 비슷한 1~7일로 추정되며, 대부분은 감염자와 접촉 후 1~4일 이내에 증상이 시작된다. 신종인플루엔자의 증상은 발열(94%), 기침(92%), 인후통(66%), 콧물/코막힘, 피로감 및 두통 등으로 급성 열성 호흡기질환의 양상으로 나타나므로 계절 인플루엔자와 구별이 어렵다.

단지 신종 인플루엔자에서는 계절 인플루엔자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설사와 구토 등 위장관 증상이 환자의 10~25%에서 발생하여 구별된다.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의 대부분은 경증 질환의 경과를 밟아 합병증 없이 자연 치유된다. 치료는 계절 인플루엔자 환자에서와 마찬가지로 증상 시작 48시간 이내에 뉴라미니다제 억제제를 투여하면 증상 기간을 단축하고 합병증과 중증 경과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몇가지 관련 쟁점들을 짚어보기로 하자.

1. 치료제인 타미플루가 충분히 공급되고 있지 못하다

현재 로슈사의 이윤추구적 특허권 행사로 세계적으로 타미플루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WHO 권고안인 전체 인구 대비 20~30% 분량의 항바이러스제를 보유하려면 약 480만 명분이 더 필요하다. 정부가 이번에 1250억원을 더 투입해 연말까지 500만 명분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으나 현재 공급량의 절대부족으로 목표수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현재 모든 국가나 단체를 막론하고 적극적 예산 확보, 강제 실시 등을 통해 타미플루 및 백신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로 꼽히는 상황이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타미플루 확보수준은 선진국 기준으로도, WHO기준으로도 한참 부족하다. 게다가 로슈 등 다국적 제약회사의 특허권 발동으로 사람들의 생명과 관련된 위급상황에서 충분한 생산기술을 갖추고도 자체생산을 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따라서 타미플루 강제실시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은, 보건 관련 예산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인 집행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실제 국민보건과 관련된 예산 전부를 이곳에 집중투자하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존재한다.

또한 타미플루의 경우 내성 문제가 존재한다. 외국에서는 내성이 있는 바이러스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감염되지 않는 사람이나 감염 증세가 없는 사람, 경미한 증세의 환자가 복용하는 상황이 증가하면 신종 플루가 타미플루 내성을 가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게다가 이제 타미플루는 발열 등의 증상이 없는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초기에는 소수의 의심환자에게 타미플루를 처방하여 감염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일괄적으로 처방했지만 이미 지역사회 대유행으로 번진 상황에서는 중증환자에 대한 치료가 중요하다. 오히려 감염위험을 줄이기 위한 개인위생 차원의 노력과 공공위생의 확보가 중요한 과제다. 또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 필요한 경우에만 투약할 수 있어야 한다.

2. 예방접종인 백신의 문제

▲ 지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약제실에서 직원들이 신종 인플루엔자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응급환자에게 처방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 유성호


국내 백신 준비량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외국 제약회사의 백신 생산회사는 노바티스와 GSK로 각국에서는 국내용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녹십자가 생산가능하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아직 준비 공정에 머물러 있다. 백신에 관련된 쟁점은 예방효과가 어느 정도 있는지, 부작용은 어느 범위인지, 필요량을 필요한 시기까지 생산할 수 있는지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전 세계적으로 백신 생산이 가능한 나라는 11개 국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도 앞으로 녹십자가 생산역량을 풀가동해도 필요한 생산량을 채우기는 역부족이다. 더 큰 문제는 백신은 유행 한 달 전에 접종해야 항체가 생기고 유행 전에 접종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유행이 시작되는 시기를 10월 정도로 예상하고 있으나 현재 국내 생산속도를 감안하면 11월은 지나야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임에 따라 백신 생산이 실효가 있을 것인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또한 각국에서 백신개발과 확보에 속도를 내면서 백신 생산, 임상시험, 원료 안전성 등에 관한 기준들을 완화하고 있다. 백신에 필요한 유정란에 항생제가 포함되어 있는지, 면역억제제를 투여했는지에 대한 고려 없이 백신 생산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1976년 미국에서 돼지독감의 대유행 가능성이 제기된 상황에서 1억5000만 달러를 들 9개월 동안 4500만 명의 미국국민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한 사례가 있다. 문제는 이 독감은 유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백신접종을 한 국민에게 길렝-바레 증후군이라는 질환 발생율이 7배나 높아져 질환 치료에 9000만 달러 이상이 소요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후 30년이 지났고 백신개발의 수준도 많이 높아졌다. 하지만 위급상황이라는 이유로 생산과정의 엄격함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의학적으로도 효과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은 백신 개발을 서두를 경우에는 최대한 안전한 과정과 철저한 임상실험을 통해 생산 공급해야 한다. 또한 백신, 약물 위주의 예방법보다는 취약자 위주의 접종과 일반적인 예방체계를 확립하는 것을 병행해야 한다. 미국에서 스페인독감이 유행했을 때도 집단장소를 폐쇄하고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등 공공보건 정책을 취한 주와 그렇지 않은 주 사이의 감염률 및 사망률에 현격히 차이가 나타났다. 실제 의약품 위주의 예방법에 대한 과신보다는 합리적인 질병 차단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미국 등 일부 나라에서는 조기에 충분한 백신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아예 임상실험 등의 절차를 생략하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실제 대부분 국가에서 보통 백신 개발시 준수하도록 규정된 복잡한 절차들을 대폭 단축하고 있다. 문제는 변종 바이러스가 나올 경우 애써 마련한 백신의 효과가 반감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WHO의 한 전문가는 "남반구에서 변형된 바이러스가 북반구로 올라와 기존에 개발해 비축해 둔 백신이 제대로 듣지 않을 가능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3. 신종플루의 위험성은 어느 정도인가?

현재 신종플루의 유행에서는 최악의 대유행으로 기억되고 있는 1918년 스페인 독감 대유행과 유사한 특징이 관찰되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로는 신종 인플루엔자가 남반구에서 계절 인플루엔자와 동시에 퍼지면서 높은 독성으로 변이, 가을철에 북반구에서 유행할 가능성이다.

또한 최근 덴마크 등에서 산발적으로 오셀타미비르(oseltamivir) 내성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발견됨으로써 현 치료제인 항바이러스제에 내성이 강해진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류인플루엔자 A/H5N1 바이러스와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동시 유행하면서 상호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독성이 높은 신종 인플루엔자가 출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는 가능성은 낮지만 전염력과 치사율이 높아 엄청난 피해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 20세기 3번의 대유행 플루와 조류독감

첫째, 1918년 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번지기 시작하여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플루)'. 이 플루의 유전형과 현재 신종 플루의 유전자형이 H1N1으로 같다. 당시 전세계 인구의 약 30%가 감염되었고 사망률은 2.5%로 2500만~50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1957년 아시안독감(H2N2)으로 200만 명이 사망. 사망률은 1%였다. 셋째, 1968년 홍콩독감(H3N2)으로 100만 명이 사망. 사망률은 1%였다. 조류독감(H5N1)은 과거 10년간 1000명도 안되는 사망자를 낳았을 뿐이지만, 사망률이 60%로 인간에 대한 감염력이 높은 변종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하지만 현재의 신종 플루 독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각종 국제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현재 유행하는 신종 플루의 사망률은 최저 0.2%에서 최고 0.6%까지 보고되고 있다. 사망률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서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등에서는 1~1.5%로 사망률이 높고, 미국 등에서는 0.2% 이하로 사망률이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5일 기준으로 0.06%의 사망률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사망률은 과거 큰 문제를 일으킨 사스(SARS)의 10%와 조류인플루엔자(AI)의 60%보다 훨씬 낮고, 1918년 스페인 독감의 2.5%보다는 다소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전체 환자 수는 사스의 8096명과 AI의 258명에 비해 훨씬 많다. 즉 감염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나 현 상황에서의 사망률은 계절성 독감의 0.1%에 비해 약간 높은 정도다.

4. 위기론의 확산으로 이득을 보는 곳은 어디인가?

일각에서는 신종 플루에 관한 우려가 과장되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몇 년 동안 조류독감의 대유행을 예고해온 곳은 WHO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며 그 권고를 받아들여 백신 및 치료제를 독점해 온 곳은 선진국들이다. 이번 신종플루의 대유행으로 떼돈을 벌고 있는 곳은 로슈를 비롯한 다국적 제약회사들이고 위상을 상실해 가던 WHO 또한 주가가 상승하고 있다.

반면 사망자는 주로 저소득층 국가와 소외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물론 신약을 사용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지만 대체적으로 높은 사망률의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미흡한 보건의료체계다. 신종플루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 방안이 치료제 등의 확보와 활용인지, 의료체계의 효율성인지에 대한 연구들은 아직 부족하다. 또한 세계적 규모의 전염병은 전지구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저소득국가에서 신종플루가 양산되고 예방 및 대응체계가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선진국만 치료제와 백신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신종플루의 진정한 위험성은 아직 가능성으로 남아 있다. 다시 말해 전세계적 차원의 범유행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응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범유행을 야기할 유전자 변이를 우려하는 지역은 중국, 인도, 아프리카 등 건강수준이 낮고 보건의료체계가 미흡한 국가들이다.

따라서 저소득국가의 보건의료체계를 세우고 그 지역민들의 건강수준을 높이는 것이 전세계적 규모의 범유행을 막는 지름길이다. 또한 발생한 환자에 대한 적극적 치료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치료제 및 예방백신의 확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전세계적 규모의 전염병이 염려되는 상황에서도 제약회사의 주머니만 불리는 방식으로 국가의 보건정책이 집중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현재도 예방차원에서 타미플루를 비급여처방 받고 있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나 각계에서 요구하는 내용도 치료제 및 백신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위생을 지키기 어렵고 건강수준이 낮은 취약계층에 대한 적극적 대책과 질병관리체계에 대한 정비, 일선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볼 수 있는 지원체계 마련 등이다.

5. 사전예방의 원칙

"어떤 행동 혹은 기술의 사용이 환경과 인간에게 끼치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성의 발생 가능성에 대하여 과학적 불확실성이 존재할 때, 그러한 행동이나 기술의 사용을 찬성하는 쪽에 입증의 의무가 있다."

'사전예방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라고 부르는 행동규범이다. 이 원칙은 1970년대 독일에서 환경 정책의 수립 원칙으로 도입된 이래, 1992년 리우 환경회의 선언문에서 '사전예방적 접근(precautionary approach)'이라는 명칭으로 채택된 바 있다. 즉, 위험성을 주장하는 쪽이 아니라 안전성을 주장하는 측에 입증의 의무가 있다는 것으로 어떤 위험에 대한 과학적, 임상적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하더라도 광범위한 사전 예방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원칙이다.

사전예방의 원칙의 전제 조건:
1) 어떤 현상, 제품 혹은 과정에서 야기되는 잠재적으로 부정적 결과들을 확인
2) 불충분하고 비결정적이며 부정확한 자료로 인해 충분한 확실성을 갖고 결정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한 과학적 평가

여기에 EU의 일반식품법 규정(the General Food Law Regulation)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추가되어 있다.

3) 사전예방의 원칙에 호소하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확보할 수 있는 과학적 자료 및 다른 정보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사전예방의 원칙은 정당화되지 않은 조치를 위한 핑계로서, 아무 때나 꺼내 들 수 있는 조커나 와일드카드가 아니다.

사실 신종플루는 이러한 사전예방의 원칙에 의해서 대책이 수립되고 있다. 국민의 건강과 관련한 부분에는 사전예방의 원칙에 입각해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 대책의 방향은 가장 효과적이고 필요한 곳에 집중되어야 한다. 새로운 전염병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고, 그 대책에 재정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지만 그 대책은 가장 합리적이어야 한다.

6. 신종 플루의 한국적 의미

▲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들이 신종 플루 감염에 대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근무를 하고 있다. ⓒ 유성호


신종 플루의 전세계적 상황을 보면 공공의료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나라에서 사망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사전예방의 원칙에서도 현재까지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고된(입증되지는 않음) 치료제 및 백신의 확보와 위험군에게의 우선적 사용이 실시되어야 한다. 따라서 보다 많은 타미플루와 백신확보에 힘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한정된 국가보건예산에서 어느 쪽에 방점을 찍을 것이고 얼마나 효율적인 관리를 할 수 있느냐를 논의해야 한다. 약품의 확보가 끝이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적 차원의 질병관리체계가 부재하다. 이는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민간의료기관인 현실에서 당연한 결과다. 현재도 보건소와 민간의료기관이 서로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고 그 속에서 국민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대표적 국립대병원인 서울대학교병원마저도 신종플루 거점병원 참여를 거부하고 나선 상황이다. 물론 많은 비판 속에서 결국 참여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이는 위기상황에 따른 국가 정책이 일선 의료기관과 의료인에게 전혀 실효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지금껏 영리민간의료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던 의협에서도 국가의 책임론을 지적하고 나온 상황이다.

- 국가적인 재난상태로 지정하고 조속히 국가재난대책본부와 같은 범정부적 조직을 출범하여 거국적인 대책을 수립해 주실 것을 강력히 건의드립니다.(경만호/대한의사협회 회장)
- 의사포털 닥플닷컴은 지난 20일 개원의사 6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신종플루가 의심되는 환자가 내원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전체의 93%(588명)가 '직접 진료를 포기하고 보건소로 전원할 것'이라고 답했다. 6%(40명)은 '거점병원으로 전원할 것'이라고 응답했으며 '직접 진단하고 치료하겠다'고 답한 의사는 1%가 채 안 되는 4명에 불과했다.

현재 신종 플루 환자가 지역사회에서 폭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중증 또는 고위험군 환자가 의료기관에 몰리고 있다. 각 의료기관은 기존의 진료체계를 유지하면서 추가적으로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를 진료해야 되는 상황이다. 의료기관에 내원 또는 입원중인 환자의 다수는 만성 내과 질환을 갖고 있어 신종 인플루엔자에 취약하며, 교차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또한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의 입원치료시 음압유지격리병상 또는 일반격리병상이 필요한데 이 역시 의료기관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환자관리를 하라고 강제할 수만도 없는 것이다.

일선에서 신종 플루의 대처에 가장 어려운 점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9%(308명)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험적용 여부를 확정발표를 하지 않아 삭감에 대한 염려 때문에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시행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또한 전체 응답자의 92%(415명)가 '진료 도중 의사 자신이 신종 플루의 감염될 것이 우려된다'고 하였으며, '의료인이 신종 플루의 감염에 대해 무방비 상태'라고 답한 의사가 98%(440명)에 달했다. 더우기 신종 플루에 의사가 감염될 경우 병의원을 최소 7일간 휴진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어 일선 의사들의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고 닥플닷컴은 밝혔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국가 간 사망률 차이는 공중보건 및 의료체계의 수준에 따른 것으로 생각되는데,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높은 사망률은 환자들이 적절한 진단 및 치료를 받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사망자를 낸 멕시코와 인접해 있는 미국의 사망률이 높지 않다는 사실은 미국 의료체계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질병관리체계는 아직 건재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우리나라의 질병관리체계는 많은 문제가 있다. 질병관리체계는 몇 개의 질병관리센터나 보건소로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일반 의료기관과 의료인이 공동 참여해서 통일적인 행동지침과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대부분이 민간의료기관으로 이루어져 있어 사실상 국가의 질병관리에 동참할 통제기제가 없다. 그 결과 국민들의 불안심리가 높아져 가는데도 책임있는 관리체계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정 비율의 공공의료기관 확충과 일선 민간의료기관에 대한 적절한 정책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민간의료기관에 대한 적절한 수가책정과 인센티브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것으로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의료민영화정책과 상반되는 내용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의료민영화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인가? 만일 신종 플루의 위험성이 현실화 된 상황에서 의료민영화가 추진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종 플루에 대한 안전한 대책 마련과 함께 의료민영화에 대한 전면적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새사연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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