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의 도시에 누드로 서는 이유
갤러리현대강남에서 '나도(裸都)의 우수(憂愁)전' 2009년 9월13일까지
▲ 김용옥선생의 지인들이 많이 참가했다. 배우 안성기, 강수연, 감독 임권택, 이준익 문학평론가 김우창교수 연극배우 박정자 재즈연주자, 연출가 등등 두루 다방면 인사들이 보인다 ⓒ 김형순
갤러리현대강남에서 김미루(1981~)의 '나도(裸都)의 우수(憂愁)'전이 2009년 9월13일까지 열린다. 2005년부터 각고의 노력으로 완성한 작품 50점을 선보인다. 사진 속에 누드가 바로 작가자신이라는 것도 놀랐지만 도올선생의 막내딸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이 높다.
김미루는 현재 뉴욕을 근거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컬럼비아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 같은 대학 의대에서 해부학을 공부하려다 돌연 사회적 의사가 되고 싶었는지 예술로 전향하여 2004년 플랫 인스티튜트미대에서 회화를 마쳤다.
2007년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그의 작품들이 대서특필됐고 같은 해 에스콰이어잡지에서 '미국의 최고유망주'로 선정되었다. 올 2월에는 미국 테드탓컴에서 소개된 그의 작품해설이 큰 화제를 모았다. 갤러리현대에서 이런 신진작가를 중견작가로 대접받은 일은 없었다. 이번 전이 끝나면 9월에 네덜란드와 터키를 답사할 예정이다.
헐벗은 도시(Naked city)를 예술로 승화
▲ 사진작가이기도 한 한대수선생과 김미루작가가 함께 포즈를 취하다 ⓒ 김형순
김미루는 2005년부터 베를린, 파리, 런던의 하수구 서울의 철거촌 그리고 뉴욕 등 미국도시의 버려진 병원과 역전, 조선소와 공장, 지하묘지나 심지어 살해된 마피아시체가 버려진 곳 등을 탐방하고 거기서 옷을 다 벗은 채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위키백과에선 그를 '헐벗은 도시를 예술로 바꾸는 창시자(Kim is also the founder of Naked City Arts)'라고 평한다.
그의 손에는 카메라만이 아니라 로프, 손전등, 촬영을 도와주는 동료 그리고 목숨을 건 위협이 뒤따라 다닌다. 그가 '도시탐험가(Urban explorer)'로 불리는 건 너무 당연하다. 그의 소재와 표현방식은 전례가 없어 누구도 모방할 수 없다.
그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두루 섭렵, 자신의 작품해설에서 명쾌한 논리를 편다. 이성과 감성의 균형감이 빚은 또 하나의 하모니를 이룬다. 약관 28살에 서울강남에 혜성처럼 나타나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작가로서 독립선언을 하고 있다.
그의 미학을 표현하는 도구는 사진
▲ 타이번강, 킹즈 스칼러즈 폰드 하수도(런던) C-프린트 76×115cm 2008 ⓒ 김형순
그는 도시의 '폐허미'라는 새로운 영역을 발굴한 셈이다. 도시에서 새것보다 오래된 것이 더 정겹다는 생각이 또한 기발하다. 이런 상상력은 확실히 역발상적이고 무의식적이다. 그리고 작가의 말대로 사진을 잘 찍고 못 찍는 것은 부차의 문제다
다양한 공부를 했는데 왜 사진이냐고 물으니 적성에 맞고 현대적 감각을 한데 담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가려진 곳, 후미진 곳, 버려진 곳에서 누드화를 찍는다. 그런 면에서는 지옥의 심연으로 내려가 악의 미학을 탐구했던 보들레르를 닮았고 신이 아들이 땅의 자식으로 내려왔다는 성서의 성육신을 연상케 한다.
폐허의 도시에 생명의 에너지를 불어넣다
▲ '미시건 중앙역(디트로이트)' C-프린트 152×102cm 2009 ⓒ Miru Kim
요약하면 그의 작업은 폐허의 도시에 기와 에너지를 불어넣고 때 묻은 문명을 씻어내어 그 본래적인 생명력과 힘을 되찾아보자는 욕구가 아닌가싶다. 이런 정신은 에코페미니즘이나 죽임의 반대개념인 여성의 살림('살린다'의 명사)정신과도 통한다.
이번 전의 부제는 '나도(裸都 naked city)의 우수(spleen)'다. 우울(spleen)과 권태는 19세기후반 서구에서 일어난 모더니티를 상징하는 키워드다. 이런 도시적 감정이 사진이라는 장치를 통해 도시의 상처를 치유하려 한 의도를 작가의 다음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뉴욕에 살며 소외와 불안감을 경험하면서 특히 모든 것이 감시되고 상품화 되어가는 이곳에서 나는 수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이 심각한 수준의 고독, 우울증, 무기력증 즉 'spleen'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는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감정의 늪에서 벗어나는 나만의 한 방법은 도시의 어둡고 감춰진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를 사랑하고 도시에서 노는 세대
▲ '맨해튼다리(뉴욕)' C-프린트 102×152cm 2009 ⓒ Miru Kim
그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를 사랑하고 도시에서 놀 줄 아는 세대다. 그에게 부모세대의 식민과 분단시대가 낳은 앙금이나 피해의식은 전혀 없다. 유연하고 변통적이고 창조적이다. 그런 작가가 미국 뉴욕에 가서 맨해튼과 브룩클린을 잇는 '맨해튼 다리'에서 자신이 누드가 되어 사진을 찍겠다고 한 건 너무 자연스럽다.
그는 새벽 3시까지 촬영을 끝내고 내려올 때는 머리 위에 경찰헬기가 뜬다. 누드인 채 다리를 오르는 것을 보고 누구 신고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잽싸게 이동해 한번도 잡히지는 않고 출입금지구역을 천연덕스럽게 오르내렸다.
씻김굿의 치유적 관점을 현대적으로 해석
▲ '금호동 철거촌(서울)' C-프린트 102×152cm 2008. 도시도 생명체로 생로병사가 있는지 모른다 ⓒ Miru Kim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듯 그의 작품은 도시를 진단한다. 도시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이 죽어가고 있음을 예감한다. 그리고 도시의 정신건강이 나쁘다고 진단한다. 그는 도시의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이 말하며 도시와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한다.
위 작품은 작두 위에서 원과 한을 씻어주고 풀어주는 넋 놓고 춤추는 무녀처럼 철거촌 같은 황폐한 곳에 알몸을 던져 이를 사진으로 영원히 간직하려는 것인가. 마치 전통적 의미의 씻김굿으로 죽은 자의 넋을 달래며 산 자와 소통하게 하듯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쓰러져가는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기록하고 해부하는 것인가.
작품 속에 자신을 투신하고 참여하는 독창적 발상
▲ '모래내 철거지역(서울)' C-프린트 102×152cm 2009. 그의 누드는 미색보다는 미학에 초점을 둔다 ⓒ Miru Kim
그에게 작가와 모델은 구별이 없다. 내가 대상이 아니고 나 중심으로 세상을 보기에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렇게 그의 누드는 몸의 매력이나 에로틱한 분위기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삭막하게 버려진 폐허의 도시공간을 훈훈하고 따뜻하게 살려내는 도구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누드개념은 기존의 것과 많이 다르다.
그의 끝없는 도전정신은 10시간씩 추위에 벌벌 떨며 열악한 곳에서 열락을 느낄 수 있고 참혹한 고문 같은 일이 즐거움이 되는 원동력이 된다. 그것이 창조적이고 자발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물적 생명력을 도심에서 불어넣으며 스스로 포효하는 맹수가 된다.
도심에서 원시세계로 돌아가면 마음 편해져
▲ 'Y 격낙고 샬레(뫼동, 프랑스)' C-프린트 76×115cm 2006 ⓒ Miru Kim
그 작품 속에 누드모델이 되면서 저돌적으로 자신의 체모까지 다 보여준다. 그는 다 버려진 폐허지에서 옷을 벗으면 원시의 세계로 돌아가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한다. 그는 역시 시대를 앞선 작가답게 금기를 하나씩 깨가고 있다.
세계적 작가 한 사람이 태어나면 그 국가브랜드를 그만큼 높아진다. 그의 앞날이 밝은 것은 그가 단지 사진을 찍은 작가로서가 아니라 시적인 상상력과 문명을 병리학적으로 해부하는 능력, 도심을 무의식적인 세계로 꿰뚫어보는 혜안과 몸을 던지는 과감성 때문이다.
누구나 작가가 되려하니 문화전성시대가 오려나
▲ '지하무덤 카타콤(파리)' C-프린트 76×115cm 2008. 작가는 시간이 갈수록 더 가감해진다. 신체위에 눕는 것도 예사롭다 ⓒ Miru Kim
경제난에도 사람들은 문화에 관심이 높다. 요즘 최상류층이나 스타급연예인은 작가를 가장 부러워한다. CEO들이 미술 강좌를 듣는 건 상식이다. 일발인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인간은 창조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즐겁기 때문이리라.
2천년대를 기준으로 그 이전은 문학이 문화를 주도했다면 지금은 미술이다. 문자시대에서 영상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한중일 문화전쟁시대에 김미루와 같은 작가의 출현은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이다. 이건 한국의 위상과 문명사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제 글을 맺자. 그에게 언어나 국경의 장벽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사진은 번역이 필요 없다. 이제 사진을 예술로 여기지 않는 사람은 없다. 프로작가로서 그의 표정에 담긴 여유와 자신감은 보기 좋다. 이번 전 판매수익금의 일부를 도시개발로 밀려난 이들에게도 전달된다니 반갑다. 이에 큰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강남갤러리현대 강남 02)-519-0800 www.galleryhyunda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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