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유방상피내암으로 두달 동안 방사선치료가 끝난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그가 식당을 나서더니 "어머나 저 하늘좀 봐. 너무 예쁘다. 우리 하늘 보러 어디 좀 가자" 한다.
"어디로 갈까?"
"거기 가보자 갯골. 넓은 곳이 속이 시원하게."
"그러자. 드라이브도 할겸."
친구가 조금은 야윈 모습이지만 건강을 되찾은 것이 무척 고마웠다. 하늘 보러 가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나도 하늘을 보니 어디론가 가고 싶었는데. 자동차 창문을 열어 놓고 시원스럽게 달렸다.
그가 참 많이 밝아졌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새삼스럽다고 한다. 그의 외모에서도 달라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액세서리를 안하던 친구의 팔목에는 팔찌. 목걸이, (귀는 뚫지 않아 귀걸이는 하지 않았고)들이 주렁 주렁 걸려 있었다. 그가 팔찌를 가리키더니 남편이"수술하고 치료받느라고 고생했다고 사줬어" 하면서 아주 좋아한다. 마치 신혼부부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했다. 그 친구 남편도 마음 고생이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와 내가 작년에 봤던 이 코스모스를 다시 볼 수있다는 것이 정말 믿겨지지 않는다. 수술하러 들어갈 때 의사들이 어찌나 겁을 주던지. 그때 생각만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려와. 사실은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병원가기도 귀찮을 때도 있었는데 막상 병원에 가면 배부른 투정이다 싶어. 아직 퇴원도 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방사선 치료도 더 받아야 하는사람들도 있으니 말이야."
"그러게 자기가 이렇게 건강해진 것을 보니깐 정말 좋다."
친구는 한동안 말이 없이 하늘을 보면서 걷는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발걸음을 떼면서. 주변의 모든 풍경을 음미하면서. 하늘이 정말 깨끗했다. 파란 하늘 위로 하얀 구름이 멋진 그림을 그리면서 지나간다. 그가 "참 자기 요즘 뭐 배우러 다니니? 나도 자기 처럼 피아노 배우려고 그래" "그럼 망설이지 말고 얼른 등록 해" 하니 그가 그런다고 한다.
그의 그런 말에 며칠 전 남편과 나누었던 말이 생각났다. 저녁을 먹고 난 후 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남편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내 옆에 앉아 한참 쳐다보더니 "재료비 꽤 비싸지?"하기에 "그래도 병원에 다니는 것보다 훨씬 낫지"하니 남편도 두말도 하지 않고 "그럼 말이라고" 했었다.
난 그림을 그리고 난 후부터는 마음 속에 있던 작은 찌꺼기들이 하나둘씩 없어진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에 색깔을 입히는 작업에서 무언지 모를 쾌감을 느끼고, 완성이 되고 나면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기분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고 나면 힘들었던 일, 속상했던 일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없어지곤 한다.
요즘은 문화센터에 다니지 않고 혼자 그려 완성을 하고나면 그런 기분은 몇 배가 되곤 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허탈하고 맥이 풀리는 것도 알 수있다. 하여 내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친구에게 하고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라도 배우라고 적극적으로 권했다.
낮잠을 자는 사람들이 아주 평안해 보인다.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목이지만 그들은 깊은 단잠에 빠진 듯했다. 친구가 그들이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한다. 그의 그런 말에 나도 공감이 되었다. 벌개미취, 나비, 아이들의 나들이, 친구는 만나는 모든 것을 손으로 만져 보고, 향을 맡아보며, 느끼는 듯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친구에게는 새삼스러운가 보다.
▲ 시계꽃 열매사이로 보이는 하늘.. ⓒ 정현순
연꽃마을에서의 짧은 휴식도 가졌다. 꽃은 지고 남은 연잎도 그날따라 더 아름답고 소중하게 보였다. 시계꽃이 지고 큰 열매가 자리를 잡았다. 친구가 묻는다.
"저건 뭐지? 감도 아니고."
"그거 내가 가르쳐 줄까? 저게 바로 시계꽃이 지고 열린 시계 열매라는 거야?"
"시계꽃 열매?"
"응, 한약재로 많이 쓰인다고 해."
그가 말없이 열매가 열린 곳을 올려다 본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아마도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와 난 연꽃을 보고 난 후 9월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헤어지면서 피아노 꼭 배우라고 다짐을 받기도 했다.
자동차 창문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눈이 시립다. 문득 조금 전에 헤어진 친구 얼굴이 생각났다. 나도 그날 본 하늘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날 따라 많이 웃고, 농담도 많이 했던 환한 그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나도 하늘을 보고 살며시 미소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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