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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교과부 대책에 '교육'이 없다

신종플루와 노시보 효과

등록|2009.08.29 14:25 수정|2009.08.29 14:25
실제로는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약인데도, 단지 환자가 도움이 될 것으로 믿으면, 증상이 호전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데, 이것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플라시보 효과다. 반면 노시보 효과도 있다.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실제로 몸으로 나쁜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KBS 이영돈 PD가 쓴 <마음>에 아주 좋은 예가 소개되어 있다. 몇 해 전 로스엔젤레스 이스턴 LA 고등학교에서 인근 학교와 미식 축구 시합이 있었는데, 응원하던 학생이 자판기에서 콜라를 사서 마신 후 복통이 생겨 선생님께 알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학교는 즉시 자판기에 있는 음료수에 문제가 있으니 마시지 말라고 교내 방송을 했다. 이 방송을 들은 100여 명의 학생이 갑자기 속이 이상하다며 흥분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입원치료까지 받았다.

전혀 상관없는 데도, 공포로 인해 실제 무슨 병이라도 생긴 것처럼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정확한 정보를 아는 것이다.

신종 플루 관련 뉴스가 연일 쏟아지고, 인터넷에서  자료만 찾아봐도 심각한 소식이 전해지니,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걱정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단편적인 지식들로 이루어지다보니, 공포와 불안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까지 보인다. 개인적인 생각인지는 몰라도 신종 플루 자체보다, 신종 플루를 대하는 공포가 더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환자를 빨리 파악하고, 적극적인 예방을 통해 확산을 방지하려면, 대상자가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알고 있어야 효율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엊그제 교육과학기술부는 등교 전 전교생의 체온을 측정하도록 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런데, 교육과학기술부 대책에 "교육"이 없다. 눈을 씻고 봐도 보건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없는 것이다. 다른 때는, 계기 교육이라고 해서,  일제히 시간을 정해 전국 학교에서 동시 교육도 실시하는데,  그 흔한 계기 교육 지침조차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이 의아하다.

학교보건법이 개정되어 2009년부터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보건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는데도, 일부 학교에서는 여전히 서류상으로만 보건교육이 존재하고 있다.
초중고 보건교육의 실태부터 점검하고, 법으로 정해진 보건교육 시간에 집중적으로 신종 플루 교육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지침부터 내리는 게 우선 아닐까. 그런데도 연일 체온계와 손소독제 지원만 되풀이되고 있는 실정이다.

손씻기, 기침 할 때 휴지나 손으로 가리기, 자주 환기하기가 왜 신종 플루 예방에 도움이 되는지, 바이러스와 세균의 차이가 무엇인지, 바이러스 질환의 백신 개발이 왜 어려운지, 신종 플루로 사망한 분도 있지만, 잘 치료받아 완치된 분들은 얼마나 되는지, 갑자기 대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신종 플루로 의심되는 증상은 무엇인지, 어떤 사람들이 위험군이 될 수 있는지,  정확한 지식을 이해해야 불안감이 줄어들 수 있고, 예방법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전 국민의 1/4이  학교에 있는데, 학교에서 보건교육만 아이들이 제대로 받아, 각 가정에 전달만 잘 해도, 침착한 대응이 가능할 텐데 보건교육은 뒷전이다.

지난 주  개학과 동시에 학생들이 보건실에 들끓었다. 열이 나는 것 같다, 목이 아프다, 기침을 한다. 콧물이 난다며 찾아왔다. 그러다가 교직원 회의에서 선생님들과 신종 플루 대응을 공유한 후 아이들이 많이 차분해졌다. 선생님들께서 적극적으로 지도해주시면서, 학생들의 불안감이 많이 누그러진 까닭. 특히 1학년은 학교보건법과 보건교육과정고시에 따라 정해진 보건 수업 시간에, 보건교사인 나에게,  전문가들이 직접 작성한 질병관리본부 자료를 바탕으로 신종 플루에 대해 배우고 있다.

이미 전염병 시간에 바이러스와 세균의 차이점, 바이러스 대유행의 원인, 바이러스 백신 개발의 어려움을 이미 배운 터라, 현재 환자 발생 보고 자료가 보여주는 의미,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왜 중요한지,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신종 플루 환자 진료 자료에 따른 주요 증상이 무엇인지 생각보다 잘 이해한다.

보건실을 찾는 학생들에게 농담을 했다. "당분간 꼭 보건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증상이 아니라면,  보건실 방문을 자제해라" 그랬더니, 일부 2,3학년 학생들의 안색이  바뀐다. 선생님이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느냐고. 그래서 설명했다. '지금 우리 학교에서 열나고, 기침하고, 콧물 나는 아이들은 모두 어디에 올까? 면역력이 약한 학생들은 보건실에 오면서, 오히려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 그제서야 이해한다.

보건 수업을 받은 1학년 학생들의 반응은 다르다. '우리 학교 신종 플루 바로미터는 나야. 매일 열나고, 기침하고 콧물 나는 아이들은 나한테 오는데, 그런데도 여전히 내가 건강하면, 일단은 안심해라. 배운 대로 열심히 손씻고, 환기하고' 했더니, '선생님, 장렬하게 전사하시면 안돼요' 목소리가 커진다.

앞으로 매번 전염병이 대유행할 때마다 단편적인 지식들만 붙들고, 전국이 공포로 들썩여야 할까. 상황이 혼란스러울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파악된 명백한 정보를 정확하고 빠르게 공유해, 가급적 노시보 효과를 줄이는 것 일테다. 그 첩경이 바로 보건교육이라면, 내 주장이 너무 황망한 것일까.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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